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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Nov 12. 2021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2학년 18과 "天下無無一能之人(천하무무일능지인)." 천하에 재능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 해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말입니다. 7년 전부터 아껴 가르치는데, 올해는 글의 배경인 서얼허통법을 짧게 나누면서 차별과 편견을 뛰어넘는 따뜻한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첫 시간. "졸음방지 출석퀴즈입니다. 채팅창에 비밀댓글로 자신의 장점을 3가지 이상 써 보세요. 시간 3분 드립니다. 다 쓴 사람은 학습지 '마음 열기'에 그대로 옮겨 쓰세요. 더 쓰셔도 좋습니다."

밀려오는 장점들에 언뜻언뜻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다고 쓴 친구는 제가 보낸 댓글 보고 학습지에 옮겨 쓰시면 됩니다."


다음 시간. 본문 공부하고 쭉 훑습니다.

"天下無無一能之人(천하무무일능지인)이니. 천하에 재능 하나 없는 사람은 없으니. 若聚十百人而(약취십백인이). 만약 사람 열 명 백 명을 모아. 우리 반 담임선생님까지 몇 명이죠?"

"32명이요."

"첫 시간에 자기 장점을 3개 이상 썼죠. 32 곱하기 3은 96이고 다들 장점이 3개 이상 있으니 우리 반 모두의 장점을 합치면 100개가 넘겠습니다."


"各用其長(각용기장)하여. 각각 그 장점을 써서. 길 장(長) 자를 장점으로 풀이하는 데 주의하세요. 便爲通才(변위통재)면. 곧 (서로) 재능을 통용하게 한다면. 통용이란 말이 어렵죠. 요즘 음악 시간에 뭐 하세요?"

"리코더랑 가창, 컵타 연습이요."

"미술 시간에는 뭐 하세요?"

"만화 그리기요. 네 컷 이상."

"체육 시간은요?"

"등교수업 때는 플라잉디스크, 원격수업 때는 타바타 연습이요."

"여기 음미체만 봐도 여러 가지를 다 잘하는 친구가 있고 한두 가지 잘하거나 음미체 못해도 다른 걸 잘하는 친구가 있을 거예요. 통용이란 잘하는 친구가 잘 못하는 친구에게 잘할 수 있게 가르치거나 도와 주는 거고, 잘 못하는 친구는 잘하는 친구에게 배우거나 도움을 받는 거예요."


"如此則世無棄人(여차즉세무기인)이요. 이와 같이 한다면 세상은 사람을 버릴 일이 없고. 『홍길동전』 보면 길동이 아빠는 양반, 엄마는 노비예요. 그럼 길동이는 양반일까요, 노비일까요?"

"노비일 것 같아요."

"맞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종모법(從母法)이라고 엄마의 신분을 따르는 법이 있었어요. 따를 종, 어머니 모, 법 법. 길동이가 아무리 공부 잘하고 무술 잘하고 지도력이 있어도 국방부 장관이 될 수 없어요. 길동이는 결국 율도국이라고 자기 나라를 따로 세워요. 조선 입장에선 아주 훌륭한 장군을 잃은 거죠. 人無棄才矣(인무기재의)리라. 사람은 재능을 버릴 일이 없을 것이다. 길동이야 자기 나라라도 세웠지만 옛날에 신분 때문에 능력이 있어도 쓸 수 없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신분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자기 재능을 쓸 수 있게 한다면 재능을 버릴 일이 없겠습니다."


이쯤 하고 영상 두 편을 같이 봅니다. <조선시대 서얼 차별의 시작과 이유> 보고 줌 비밀댓글로 졸음방지 출석퀴즈 받았더니 "서얼이 불쌍하다" "부모 신분 때문에 차별하는 건 잘못이다"가 많습니다. 한참 읽다 "서얼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하는 건 나쁜 것 같다. 하지만 서얼 평민들을 차별하는 것도 똑같이 나쁜 것 같다."에 띠잉! 누가 썼는지 비밀로 하고 아낌없이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일곱 명의 홍길동>. 서자들의 반란과 서얼허통법을 잘 요약한 영상입니다. 시간이 조금 더 있는 반에선 신분, 남녀, 지역, 흑백 차별 등 다양한 차별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옛날에는 여자면 한문선생님이 될 수 없고 투표도 못했으며 미국에선 50년 전까지 흑인 백인 버스 좌석이 따로 있었다는 일. 로자 파크스 아주머니가 백인 좌석에 앉았다 경찰에 체포되면서 흑인 인권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지요.


"과제입니다. 조선시대 서얼 차별과 서얼허통법에 대한 생각을 위두랑 댓글 기준으로 세 줄 이상 쓰세요. 다 한 사람은 과제 확인하고 이름 부르면 나오셔도 됩니다." 틈틈이 과제 읽다 한 학생의 말을 오래 담습니다.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모두 특별하기 때문이다."


* 본문은 정조의 어록인  『일득록』에 실린 글입니다. 1789년에 김조순이 옮겨 썼습니다.

독서공책에 옮겨 쓰고 오래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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