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작은 싸인회

by 스마일한문샘

코로나 없던 시절 해마다 '내가 보는 친구의 장점 쓰기'를 했습니다. 가로 4칸, 세로 9줄 표에 반 학생들 이름을 번호 순서대로 넣은 활동지를 나누어 주면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자기 장점을 써 달라고 합니다. 너무 시끄럽지 않게 조심시키고 종이가 한쪽에 몰리거나 겉도는 친구가 있는지 잘 봐야 하지만,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하는 맛에 모든 번거로움을 잊었습니다.


​8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 첫 시간에 장점 쓰기 롤링페이퍼를 했습니다. 그 수업이 기억나는 건 ㄱ 덕분입니다. 몸이 아파 글씨를 매우 천천히 쓰는 아이. ㄱ 종이를 들고 다니는데 한문부장 ㄴ이 "선생님! ㄱ이 담임선생님 종이에 '예쁘다'고 썼어요!"

"진짜야?"

늘 모든 종이에 자기 이름만 쓰는 ㄱ에게는 대단한 사건입니다.

"네. ㄷ에게는 '착하다'고 썼어요. ^^"


그때부터 "우와!" "나도!" ㄱ에게 장점 받겠다고 줄을 섰습니다. 워낙 글씨를 천천히 써서 종 치고 나서도 10여 명 남았지만,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예쁘고 진지했습니다. 물론 ㄱ도 반듯반듯 또박또박 빈칸을 채워 주었습니다.

"쌤, 0반에 뭔 일 있어요?"

다른 반 아이들도 복도에 우르르.

2교시 시작종 칠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던 저도 마음 한켠이 뜨끈했습니다.


학교 옮기고 18과 "天下無無一能之人(천하무무일능지인 : 천하에 재능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 가르치면서 그때 그 수업을 짧게 줄여 이야기하니 "드라마다!" 그 다음 시간, 또 다른 아이들과 장점 주고받으며 달달한 기억을 나누면서 2014년 12월 24일 1교시를 생각했습니다. 하얀 눈이 소담소담 내려 더 따스했던, 그 겨울의 작은 싸인회를.

저도 오래 아끼는 말입니다. (2020.10.28)

* '내가 보는 친구의 장점 쓰기' 수업 흐름입니다.

https://blog.naver.com/hanmunlove/220223760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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