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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Apr 12. 2024

미우의 『똥구슬과 여의주』(2024)

나의 똥구슬은

읽은 날 : 2024.4.12(금) 오전 6:12

면수 : 48쪽


"쇠똥구리는 자신의 소똥 구슬을 사랑하여 흑룡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흑룡 또한 자신의 여의주가 귀하다고 해서 쇠똥구리의 소똥 구슬(蜋丸)을 부러워하지 않는다."(이덕무, 『선귤당농소』)

7년 전 만난 글을 아껴 읽습니다. 20대 중반에 읽은 글이 세월의 흐름 앞에서 봄빛 닮은 위로로 찾아왔습니다. 그 글이 좋아 공책에 옮겨 쓰고, 꽤 긴 글에 마음 담아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미우 작가님의 『똥구슬과 여의주』는 바로 그 글을 그림으로 담은 책입니다. 낭환(蜋丸)과 똥구슬. 같은 말인데 왜 그리 다른지요. 표지 보면 흑룡은 여의주를, 쇠똥구리는 똥구슬을 품습니다. 자세히 보니 두 구슬의 크기가 같습니다. 아는 이야긴데 어떻게 흘러갈지 두근두근합니다. 이른 아침 차분하게 책장을 넘겼습니다.


아이들이 그려 준 제 얼굴이 있습니다. "이 똥은 딱딱하게 굳어 버렸어."(4쪽) 고민하는 쇠똥구리 그림이 저와 닮아 웃습니다. "둥글둥글 매끈매끈, 내 똥구슬 완성!"(7쪽)이라며 뿌듯해하다가도 "휴, 나는 어쩌다 똥을 굴리며 먹고살게 됐을까?"(12쪽) 한숨 푹푹 쉬는 쇠똥구리는 저의 또 다른 모습이겠습니다. '낮에는 해를 따라'(10쪽) '밤에는 별을 따라'(11쪽) 똥 굴리며 '집으로, 집으로'(11쪽) 가는 길이 낯설지 않습니다.


지렁이처럼 홀가분하고(14쪽) 거미처럼 근사한 집을 짓고 싶으며(16쪽) 개미들처럼 힘을 모은다면(18쪽) 덜 힘들 것 같던 쇠똥구리가 우연히 여의주를 얻습니다. 바라는 건 다 이루어진다는(28쪽) 여의주 앞에서 "내가 바라는 건 뭐지?"(31쪽) 진지하게 묻던 쇠똥구리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답을 찾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는 여의주가 아니라 똥구슬만 있으면 되는데!"(34쪽) 그 다음, 그 그 다음... 오래오래 품고 싶은 순간......


"자, 다시 굴려 보자. 어여쁜 내 똥구슬."(42쪽) 상황은 같지만 쇠똥구리는 훌쩍 자랐습니다. 팔다리엔 힘이 들어가고 배경은 동글동글 빛납니다. 동트는 아침 마주보며 하루를 여는 쇠똥구리와 흑룡은 자기만의 구슬을 품고 있습니다(44~45쪽). '나의 똥구슬은 무엇일까?' 저도 그들 앞에서 고운 구슬 품으며 새날을 엽니다.


<마음에 남은 글>


자패(유금)가 이 말을 듣고는 기뻐하며 '내 시집의 이름으로 불릴 만하다.' 하고는, 시집 이름을 낭환집(蜋丸集)이라 붙이고 내게 서문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46쪽, 박지원, <낭환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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