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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Nov 19. 2021

한시 읽기

히유! 금요일에 진도 빠른 반에서 '한시 읽기' 3과 끝났습니다. 교과서 한시가 왠지 아쉬워 다른 곳에서 세 편 뽑았는데 아이들에게는 어떠했을지. 원격수업 때 한 단원이라 등교수업 시간에는 학습활동지 쓸 시간 주고 복습하고 검사하면서 마무리했습니다. 4교시에 든 반은 열체크, 손씻기도 같이 해야 해서 번갯불에 콩 볶듯 후다닥 넘어간 듯해 미안하고 아쉬웠습니다.


중 2 어느 날 한시를 처음 만났습니다. 1주일에 한 번 배운 구절과 교과서 장면들이 드문드문 떠오릅니다.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 언사채약거(言師採藥去)", "화개작야우(花開昨夜雨) 화락금조풍(花落今朝風)"... 뜻도 깊이도 몰랐지만 어린 마음에 오래 남은 말. 나중에 한문 전공하고 가르치면서 그 시가 가도의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 송한필의 <우음(偶吟)>임을 알았습니다.


한시의 맛을 본격적으로 느낀 건 두보의 <강촌(江村)> 덕분입니다. 고 1 한문 시간에 배운 구절이 좋아 쓰고 외우다 저도 모르게 젖어들었습니다. 그해 작문 선생님께 곽말약이 쓴 이백과 두보 빌려 읽으면서 한시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스무 살 여름 한시 미학 산책, 그리고 여러 책으로 읽고 배우는 한시의 세계는 깊고 넓었습니다. 아주 오랜 사람들의 글이 지금 이 순간 힘이 될 수 있다니!


선생이 되면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한시를 풀어낼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달랐고, 같은 중학교라도 해마다 결이 달랐습니다. 재작년에 복직하고 정지상의 <송인(送人)> 수업하는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참 괜찮은 학생들인데 시에 대해 공감하기 어려워한단 느낌? 한자가 어렵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잘 안 맞는 듯했습니다. 역사 시간 '묘청의 난'과 연결해서 어찌어찌 끝냈지만 못내 찜찜했습니다.


작년 2월에 한시 수업 준비하면서 교과서를 덜어냈습니다. 좋은 시가 있었으나 재작년 경험상 우리 아이들에게는 잘 안 맞겠다 싶었습니다. 고민고민하다 고른 시가 가도의 <심은자불우>, 장계향의 <소소음(蕭蕭吟)>, 김삿갓의 <상경(賞景)>. 가도와 김삿갓 시는 다른 출판사 교과서에 실려 참고하기 좋았지만 <소소음>은 어느 책에도 없어 나름 모험이었습니다. 내 생애 첫 번째 시에 실린 <소소음> 붙들고 장계향 관련 책과 자료 찾으며 숨가쁘게 달렸습니다.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으로 담아낸 한시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평가' 때문에 조급하게 달려가 자칫 짐스럽지 않았을까 마음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학습활동지에 한 자 한 자 옮겨 쓰던 진지한 눈빛과 아주 가끔 깔깔거리던 얼굴들, 원격수업 과제에 따뜻하게 달아 주던 댓글들을 돌아보니 그 시간이 마냥 헛되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아이들이 지금 배운 구절들이 한시의 멋과 깊이를 알아가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은 수업이 삶을 더 따스하고 평온하게 가꾸는 자양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참 바삐 달린 날 쉬는 시간에 찰칵.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쓰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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