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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워실의바보 Mar 03. 2023

스물한살 영천공단 청년은 대학에 가고 싶었다

지역 전문계고 졸업생의 고립감

진량공단, 영천공단, 오창산업단지 내의 하청 노동자들을 많이 봤다. 그들은 일하는 시간이 길었다. 잔업까지 하고 퇴근을 하면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꼭 회사에서 여러 동료들이 단체로 밥과 술을 먹고, 2차로 모던바, 노래방, 주점 등을 갔다. 힘들게 벌어서, 과로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술과 여자로 풀었다.


그 날도 익숙한 장면이었다. 50대 남성이 아들뻘 되는 청년을 데려왔다. 둘은 영천공단에 다닌다고 했다. 그 청년은 이곳에 처음 온 것처럼 보였다. 쭈뻣쭈뻣했고 말이 없었다. 중년 선배가 데려 왔으니 당연했다. 몇 살이냐고 묻자 스물 한살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나보다 어린 친구를 보았다. 그 친구는 원치 않게 내던져진 삶을 살아왔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으니 중학교 때 성적이 바닥이었고, 읍면 단위의 공업고등학교를 진학했다. 학업능력 부족에 취업 위주의 전문계고 분위기가 더해져 대학에 가지는 못했다. 영천공단에 있는 하청업체에 취업했다.


말 한마디 없이 묻는 말에만 답했던 그는 나에게 “누나는 대학생이에요?”라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머뭇거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울먹이면서 말을 천천히 더듬었다. “대학에..가고 싶어요” 그는 대학교에 어떤 학과가 있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가고 싶은 학과나 원하는 직업은 없었다.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듯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공단에 계속 있으면 고립된다는 것을 말이다.  회사와 집 이외에 다른 삶은 없었다. 일상화된 잔업으로 노동시간이 길었고, 영천에서 마땅히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또래는 없고 중장년층 선배들이 가득했다. 퇴근하면 아빠뻘 되는 선배들은 스물 한살인 그에게 노름과 유흥을 가르쳤다. 그런 문화에 익숙해질 성격도 못됐다. 공단 밖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미래가 너무 빤히 그려지는데, 남은 날들이 너무 길었다. 그 고립감 때문에 그는 대학을 가고 싶어했다.


혼자 준비해 대학을 갔던 나는 그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대학 진학률이 70%에 이르는 세상에서 대학에 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돈이 없다는 말에 부자들만 대학에 가는 건 아니라고, 소득이 낮으면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생활비는 일을 해서 벌면 된다고 했다. 대학생활 이야기도 했다. 대학을 나오면 선택지가 더 늘어난다는 말도 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제가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그는 다시 슬픔에 잠겼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5~60대로 보이는 선배는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저 “꼴통 니가 대학을 어떻게 가?ㅋㅋㅋ” 라고 비웃을 뿐이었다.


늦지 않았다고, 가보면 재수 삼수한 사람이 많다고 그에게 말했다. “두려워요” 그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가 영천공단을 나올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된 후, 내가 한 말을 후회했다. 그에게 수능이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기초학업능력은 매우 낮았고,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돈 들여서 입시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영천에 그런 학원이 있을리 없고 있다고 해도 잔업이 일상인 삶에서 그러기란 불가능했다. 삶에 공백을 두는 건 ‘도박’이었다. 아무도 그와 그의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수험생활은 절대적인 공부시간이 중요한데, 퇴근하고 잠깐 책을 본다고 해서 4년제 대학을 갈 만한 등급이 나오기는 어려웠다. 다 차치하고라도, 이미 그에게 대학교라는 곳은 낯설었다. 인문계고에 다닌 학생들은 3년 내내 대입 준비를 하고 맨날 교사나 부모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대학교와 심리적 거리가 멀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계고를 나온 그에게는 먼 세상이었다.


그 친구는 지금 26살일 것이다. 지금쯤 그는 뭐하며 지내고 있을까. 영화 다음 소희를 보고 그 친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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