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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배 Jun 09. 2021

유쾌한 신중년 대비를 위한 서막

40세가 되면서부터 신중년을 대비해야 한다는 막연한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일에 빠져 지내면서 그 일상이 최소 10년 이상은 지속될 거라 믿었기에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시간적 여유는 분명 있었고 나이 먹음을 체감하며 살았으나 어떠한 실행도 못 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현장취재가 줄고 재택근무가 이어지다 보니 다른 일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워커홀릭 생활을 지속하면서 11월 말부터 12월까지 연차를 몰아서 소진했기에 연말에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급기야 ‘일이 무척 좋지만 기자를 그만 해도 아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현실적인 다양한 여건상 이 직업의 수명이 길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5년 가까이 기자 일을 하면서 직업적 만족도가 컸던 이유는 ‘내가 좋아서’ 단 하나였다. 메이저 언론사에 소속된 것도 아니고, 돈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좇다 보니 박봉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나이가 드니 조금씩 현실이 보였다. 1인가구지만 평생을 책임져야 할 반려묘가 있고, 초라하지 않은 말년을 보내려면 일보다 돈 욕심을 내야 한다. 그제서야 재테크와 창업, 부동산 관련 유튜브 영상들과 책들을 찾아보며 현실감각을 키웠다.


그 시점 그럴 수 있었던 건 근본적인 마인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 속에 살면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일로만 만족감을 채워오다가 문득 잘 살고 싶어졌다. 여러 가지 영향이 있겠지만 어쨌든 긍정적이고 의욕적으로 인생 2막을 열기로 결심했다. 즐거운 내 일과 함께 차근차근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이런 결심이 무너질까봐 하늘이 기회를 주려고 한 건지 12월 마지막 날 뜬 인사 공지는 기자에 대한 미련까지 버리게 만들었다. 편집국장이 바뀌면서 기존의 데스크들이 부국장이란 직급은 유지한 채 선임기자로 밀려나고, 차장급 기자들이 데스크 자리로 올라섰다. 대표와 이전 데스크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다분히 감정적인 인사였다. 마주치는 기자들마다 “여태껏 봐 온 인사 중에 가장 충격적”이라고 말할 만큼 유치하고 무모했다.


무엇보다 그 여파로 비매출 부서인 사회문화부를 폐지하면서 내가 공들여 가꿔온 팀이 사라졌다. 기사 트래픽 창출을 위한 뉴스공장 같은 부서를 신설해 우리 모두를 그곳에 보내버린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국장과 여러 번 면담도 하고 팀장으로서 그동안 해온 일들과 앞으로의 비전을 열심히 설명했다. 국장은 소통이 되지 않는 분이었다. 광고를 2억원 해올 수 있다면 팀을 유지하겠다는 억지스러운 얘기에 더 이상의 설득은 불필요했다.


잠시 한 달 정도 일을 하면서 이직 준비를 하려고 새 부서에 적응해보려고도 했으나, 데스크가 내 바이라인으로 팩트체크도 되지 않은 기사를 올린 것에 기겁하고 당장 사표를 쓰기로 했다.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부장에게 마음 약해지지 않았다. 아닌 건 아닌 거다. 지금까지 훌륭한 기자라고 자신하며 업을 유지해온 건 아니지만, 기자로서 바이라인에 책임질 수 있는 기사들을 써왔다. 기자에게 바이라인은 개인의 브랜드다. 어느 매체에서 일하든 내 기사의 퀄리티가 내 브랜드의 품격을 결정한다.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정말 좋아하는 일이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이 직업과 이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체감해왔다. 정치질에 가담하거나 희생되는 것도 징글징글하게 싫은데, 차장급부터는 현장취재보다 광고영업의 비중이 높아진다. 그래서 전문기자로서 자리를 잡으려고 지난 2년간 그렇게 일에 몰두했건만...... 이게 현실이다. 자연스레 ‘이제 남 좋은 일 말고 나 좋은 일 하자’ 싶었고, 그동안 조직 안에서 한 만큼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직 젊으니까 이직을 고려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주변의 조언도 있고 생각보다 업계가 좁아서 추천도 들어오지만, 온전히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참 좋다. 쉬지 않고 달려온 만큼 한번쯤은 필요했던 시간이고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요즘이다. 할 일이 많다. 학창시절 별명인 ‘스케줄 박’을 새삼 떠올리며 매일매일 생활계획표와 독서일지, 가계부, 일기 등을 작성해본다. 심신의 평화를 느낀다. 머지않아 뭔가를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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