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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배 Jun 23. 2021

결핍도 감기처럼

“자기연출 하나 못 하는 사람이 어떻게 방송 연출을 할 수가 있나? 쯧쯧.”


대학 졸업 후 MBC방송아카데미에서 연출 과정을 수료하고 추천을 통해 처음으로 면접을 본 EBS 외주제작사에서 들은 말이다. 당시 면접관인 PD는 내 왼쪽 눈을 문제 삼으며 “눈이 왜 그러냐, 성형을 하든지 해야지”라고 꼬투리를 잡았다. 내가 “종양 제거수술을 해서 왼쪽 눈이 함몰돼 계속 재건 수술을 받고 있다”며 “가벼운 감기 정도로 생각한다”고 답하자 돌아온 말이 자기연출 못 한다는 소리였다.


나에겐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왼쪽 이마에 생긴 혹이 계속 자라서 병원에 갔더니 희귀병이라 당장 손을 댈 수가 없다고 했다. 일종의 섬유육종으로, 내가 성장을 하면 따라 자라기 때문에 성인이 되기 전까진 지켜봐야했다. 6학년 때 돌출된 부분만 한차례 제거하고 스무 살까지 기다렸다.


드디어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손꼽아오던 수술을 받게 됐다. 초등학교 때보다 의술도 발달했고 더 이상 희귀병이 아니었기에 기대를 하고 수술대에 올랐다. 대학병원 신경외과·성형외과 의사들이 15시간 동안 내 종양제거 수술에 매달렸다. 부모님은 이미 알고 계셨지만 생각보다 쉬운 수술이 아니었다. 이마에서 눈 뒤쪽으로까지 번진 종양은 매우 컸다. 종양을 제거한 자리에 갈비뼈 2개와 골반뼈를 이식해 넣어도 다 채울 수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눈을 뜬 내게 엄마는 수술 상황을 다 설명해줬다. 일단 종양을 모두 제거해 잘된 수술이지만, 매년 조금씩 인공뼈를 채우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 힘든 수술은 다 끝났으니 방학 때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오면 된다고. 엄마의 얘기를 다 듣고 거울을 보니 절망적이지 않았다. 이마 한쪽이 움푹 패고 왼쪽 눈이 깊숙이 함몰됐지만 계속 수술을 해가면 온전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또 대수술이다 보니 수술 중 시신경이 다칠 수 있어 비교적 덜 중요한 후각신경을 모두 제거했다. 이 사실을 잊은 채 처음 맛본 포도주스가 시고 써서 깜짝 놀랐다. 당황해하는 내게 아빠는 “20년 동안 먹은 음식들의 맛을 뇌가 기억하고 있다”며 이 상황이 불행의 요소가 아니란 걸 인식시켜 주셨다.


추가적인 수술들을 계속 받았지만 장시간 수술로 다친 왼쪽 눈이 오른쪽 눈과 같아지진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안경을 쓰면 거의 티가 나지 않는다고 나를 위로했지만, 거울이나 카메라로 더 왜곡된 모습을 보는 나로선 콤플렉스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관하진 않았다.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해주고 나를 믿어주는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좀 못나도 늘 희망을 품고 살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잘 하는 일로 인정받으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게 삶의 낙이었다. 첫 취업 면접에서 막말을 듣고도 상처받지 않았다. 당당하게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사람 밑에선 배울 것도 없을 것 같으니 나를 뽑지 말라”고 말하고 나왔을 만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여러 개의 결핍이 있어도 내 현실을 인정하면 그 안에서 노력하고 성취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 현재 내 옆에 믿고 의지하는 가족 또는 내 편인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부자다. 자신의 부족함을 원망하는 데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는 건 쓸데없다. 그것을 뺀 나머지는 다 내 장점이 될 수 있다. ‘가능한 것에 투자하자.’ 여전히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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