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

Since: 2018, 집에서

by 하이유월

페르 라셰즈 묘지

Since: 2018, 집에서

To:2022,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게


나도 저렇게 여행하는 어른이 되기를

내가 고등학생일 때 매우 좋아했던 프로그램이 있다. 한창 인기를 끌었던 알쓸O잡.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그들을 보며 나중에 여행을 하더라도, 저렇게 여행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꿈꿨다.

그 중에 나는 특히 김영하 작가의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그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여행지 중 하나는 바로 묘지였다. 내가 본 수많은 여행 책에서도 묘지를 여행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는데 묘지 여행이라는 말을 그때 처음 접했다. 심지어 유럽의 묘지에는 일반인과 내가 사랑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함께 있다 하니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없었다.




파리에서의 첫 행선지

숙소에서 꽤나 가까운 곳에는 페르 라셰즈 묘지가 있었다. 파리에서 가장 큰 공원 묘지이자, 정원식 묘지라는 개념 자체를 처음 도입한 무덤이 바로 이곳이라는 이유…때문은 아니었고, 제일 가까운 묘지였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였다. 그런데 우연히도 이곳이 김영하 작가가 파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로 언급한 곳이었고, 묻혀져 있는 예술가들 또한 상당한 라인업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첫 날, 첫 여행지로 나는 묘지로 향했다.


사실 묘지로 향한 이유는 왠지 모를 나의 치기 때문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파리에서의 첫날, 그것도 혼자, 묘지에 갔다 왔다 하면 왠지 멋있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하하. 남들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마레 지구에서 버스를 타고 묘지에 가는 버스에서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처음 혼자 하는 유럽여행에서, 누군가에게 소매치기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묘지라는 새로운 곳에 대한 떨림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영국에 살며 이제 조금 영어 안내 방송에 익숙해지려 했는데, 이제는 프랑스어가 나왔다. 나는 버스에서 낯설게 들려오는 프랑스어 안내 방송을 꾸역 꾸역 들었다. 페흐 라셰즈라고 R발음을 강조하는 낯선 언어 속에서 나는 하차벨을 누르고 발을 디뎠다.





내가 사랑하는 예술가들


묘지는 제 이름값을 했다. 공원묘지라는 이름에 맞게 사람들은 그곳을 공원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묘지 의자에 앉아 밥을 먹는 프랑스 소녀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아줌마의 모습. 정말로 이곳은 공원이었다.

한국에서만 살아왔던 나에게 묘지는 멀리 떨어진, 시간을 내야만 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길게 나열되어 있는 납골당, 고속도로를 타면 지나치는 공동묘지의 모습은 약간은 우울하고 조금은 무서워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심심하면 찾아올 수 있는 곳, 그게 묘지였다.

유럽에서는 거주지 가까이에 위치한 공동 묘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을 가깝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죽음관을 반영해주듯 이곳은 묘지가 아닌 또 하나의 작은 주택가처럼 보인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고 싶은 예술가들의 묘지를 찾았다. 쇼팽, 에디트 피아프, 쇠라, 거트루드 슈타인. 하지만 제일 좋았던 곳은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묘지였다. 나는 한번도 그의 책을 읽어본 적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유명한 마들렌 이야기를 너무 좋아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첫번째 책의 첫 부분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 속 주인공은 마들렌과 홍차를 마시며 자신의 어린시절의 기억을 소환한다. 기계적으로 짜낸 기억이 아닌, 감각-미각과 후각-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에게 기억이 돌아온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묘지

그 이야기 하나에 홀려 마르셀 프루스트의 무덤으로 향했다. 무덤은 생각보다 너무 볼품 없었다. 조각이 화려한 고풍스러운 무덤을 기대했는데, 그의 무덤은 현대적인 대리석 한 조각이었다. 그래도 왔으니 조금 서서 조용히 무덤을 구경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시끌벅적한 프랑스어가 들렸다. 프랑스 단체 관광객이었다. 코팅된 낡은 책자와 막대를 든 프랑스 가이드는 프루스트의 무덤 앞에 서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심심했던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랑스 설명을 귀동냥했다. 내용은 알아듣지 못해도 설명을 느낄 수 있었다. 언어는 다르지만 한국의 단체 관광과 똑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교과서 같은 책자를 들고 다니는 것도,

팀에 어린아이가 있으면 꼭 질문을 한다는 것도,

심지어 아이에게 퀴즈를 내고 맞추면 칭찬해주는 것까지.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신기해 마치 아는 사람처럼 마음이 따뜻해졌다.




묘지와 까르네

페르 라셰즈 묘지를 나오는 길에 본 한 무덤에는 기차표가 잔뜩 쌓여 있었다. 유명한 사람인가 자세히 가서 살펴보니 그는 쇼팽이나 프루스트처럼 유명인사는 아닌듯 했다. 기차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지, 묘비석에는 기차와 그의 초상화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유럽의 묘지는 정말 시민의 삶의 일부라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추모와 기쁨이 함께 하는, 죽음과 낭만이 함께하는 곳. 나도 까르네가 있었다면 하나 남겨놓고 왔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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