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당현경 Jun 30. 2021

너는 입을 굳게 닫았다.

너와 나의 성장 이야기 1


"우리 애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말이 어눌해요. 하하하"



마치 자랑하듯,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한다. 5세인 여자 아이는 입을 앙~하고 다문채 엄마 뒤를 졸졸 따라온다. 자기 아이를 낮추어 이야기하는 것이 겸손이라 생각한 여자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딱 일 년 뒤에 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했다.



몰랐다.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부끄러움이 많은 줄 알았다. 첫째, 둘째도 밖에서 소극적인 성격이어서 셋째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 셋째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집에서 5살이나 많은 언니와 3살이나 많은 오빠한테도 소리를 꽥 지르면 대장 중에서도 이런 대장이 없었으니 말이다.

혀 짧은 소리를 내도 마냥 귀엽기만 한 아이가 셋째였다. 그래서 '우리 애는 말을 더듬어'라고 말하는 것이 마치 '우리 집에서 귀여움만 받아'로 착각을 했나 보다.


그 무렵 내가 운영하고 있는 논술 교실도 어느새 자리를 잡아가는지 학생 문의가 많이 오기 시작했다. 아이가 5세면 몸이 편해질 거라 들은 것 같다. 진짜 셋째가 5세이니 나도 본격적인 일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셋째가 유치원에 가야 할 나이가 되었어도 픽업이 어렵고, 근처 어린이집이 더 안전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어린이집 친구들은 유치원으로 옮길 때 셋째는 어린이집을 일 년 더 다니기로 했다.


그리고 6세가 되어 진짜 유치원에 가야 할 때가 되었다. 친구와 함께 가야 할 유치원은 대기자 50번. 이런... 큰일이다. 그래서 생각하지 못한 다른 유치원도 감지덕지로 입학을 했다.


곧 적응을 하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논술교실 새 학기 적응에 나 역시 바빴다. 그런데 3시에 집에 돌아온 아이는 급하게 화장실을 간다.


"화장실 안 갔어? "


셋째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 일이 매일, 매일, 매일이 되었다.

그때도 몰랐다. 곧 적응하겠지. 부끄러워서 그렇겠지.


그리고 5월. 첫 공개수업 날. 

그날도 엄청 바쁜 하루를 내주는 냥 유치원으로 향했다.  선생님과 놀이 시간, 체육 시간, 영어 시간을 공개수업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막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아~엄마"

" @@아~너도 해 봐"


그런데도 입을 굳게 닫고 있을 뿐이었다. 집에서는 보지 못한 낯선 표정이었다. 엄마인 나를 보는 눈빛도 낯설었다. 친구들과 단체로 노래를 부르는데도 배시시 웃고 있는데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영어 시간에 선생님이 영어로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신다. 아이들은 나와서 발표를 하고, 따라도 한다. 그런데 셋째 차례가 되었는데 선생님은 셋째에게 질문을 하자마자 바로 아무렇지 않게 패스하신다. 그때 가슴에서 쿵 소리가 났다. 그리고 가슴이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되었구나.




3월에 유치원을 입학하고 5월이 된 그날까지 막내는 유치원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몰랐을까. 무엇이 중요하다고 아이의 마음을 놓쳤을까. 그래서 화장실을 간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 집에 오는 동안 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조금이라도 막내가 늦게 왔으면 하는 마음에 방과 후를 신청하려는 엄마가 나였다.


몰랐다니. 몰랐다니. 몰랐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몰려온다. 걱정에 눈물이 나온다. 그리고 억울함도 함께 달려든다. '내가 뭘 잘못했어? 얼마나 사랑해 줬는데.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남의 자녀에게는 좋은 선생님인 내가,  내 아이에게는 바보엄마였다.



작가의 이전글 셋째가 만삭인 나는 교자상을 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