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하는 늑대 Feb 23. 2024

# 3rd 그로로팟, 식집사?

https://groro.co.kr/story/8485



 뭐랄까? 정체성을 잃은 느낌이다. 2020년 8월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를 밝힌 글도 여럿 썼는데 지금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글을 쓰기 시작한 나름 명확한 이유는 분명히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엔 정말 그랬는데 그게 정말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지금은 그냥 써 왔던 거니까 쓰고 있는 정도가 아마 정확할 것이다. 이런 글을 써서 뭘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쓰고 있는...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한다고 했을 때 꼭 무언 갈 해 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지금 내 글은 아니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일정 부분 길을 잃은 거 같다.



 더 가슴이 아픈 건 현실의 삶도 어느 정도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점이다. 4년 정도 전에 조금은 답답했지만 명확했던 현실의 삶이 싫어서 도피처로 삼은 글이었는데 그 글에서 다시 길을 잃었다. 처음 현실의 삶에서 글로 도망쳐 올 때는 그냥 그랬다. 뭐 어떻게 되겠지, 어쩌면 잘 될 수도 있어! 아, 복잡한 건 모르겠고 당장의 삶은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 30대 초반에 그랬던 거처럼 다시 한번 일탈이라면 일탈일 수 있는 짓거리 한 번 해 보지. 뭐! 이랬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숭고한 의미를 담아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잘 모르겠다.



 그런 도피처로서의 글에서 다시 길을 잃었으니 어디로 또 도망을 가야 할지, 도망은 갈 수 있는 건지, 도망을 또 가도 되는 건지... 그런데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던 현실은 또 의외로 녹록지 않은 이 상황이 그야말로 참 난감한 지경인 거 같다.



 그런데 정말 웃기지도 않게 진짜 생각지도 않게 식집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식물을 키우며 식물 관련 글을 올리고 그에 따라 원고료 비스무리한 소정의 금액까지 받고 있다. 처음엔 글을 이리저리 쓰며 알게 된 플랫폼을 통해 식물을 키웠다. 식물을 키운 계기도 식물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애정 등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글을 쓰기 위한 소재로 혹은 이벤트로 진행되는 부분을 통해 약간의 상품이나 받아볼까 하는 심산으로 시작했을 뿐이다.



 돌아보니 앞에서 내가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있었다는 그 이유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나를 찾자.’였는데 이게 어쩌다 보니 나를 찾고 있는 건지, 식물을 키우려고 하는 건지, 글을 쓰려고 식물을 키우는 건지, 현실의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이러면 되는 건지... 문득문득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나이도 적잖은데 어디서 그런 개구라 같은 말도 안 되는 미혹이나 유혹이 없다는 불혹을 넘어 선지도 5년이 다 돼 가는데 이리 흔들려서야... 갈대나 억새가 친구 하자고 할까 봐 겁날 지경이다. 그나마 갈대나 억새는 그들 삶의 원래 목적이 부는 바람에 따라 한없이 흔들리는 거니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몸무게도 무거운 사람이 그들처럼 흔들려도 되나 싶고 갑갑하다.



 식물 키우는 걸 글과 사진 등으로 공유하는 플랫폼에 한참 빠져들어 처음부터 글이 아니라 식물을 키우려고 한 사람처럼 근 1년은 지내왔더니 초록초록한 식물을 바라보는 마음과 눈빛도 심드렁하고 그런 심드렁한 상황을 애초에 바라마지 않았던 글로 쓰는 것 자체도 지루할 정도다.



 그러면서도 함께 글을 쓰는 분들과 가끔 소통할 때는 글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글로 뭐 대단한 걸 할 것처럼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모습이나 식물 키우는 글과 사진 등을 공유하는 플랫폼에서도 식물 키우는 게 그야말로 세상 힐링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꼴이 가끔 사나운 지경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고 식물을 키우고 하긴 할 텐데 정말 언제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런 부분을 내 성향을 돌아보면 무언가에 빠져 심취하다가도 순식간에 돌아서서 다시는 처다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점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바다.


       


매거진의 이전글 # 3rd 그로로팟, 같은 실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