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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Mar 01. 2024

양육감정 - 불꽃

https://groro.co.kr/story/8592



 역시 사람일은 모르는 거 같다. 포기한 결혼을 결국 했다. 남들 보통 결혼할 시기에 백수가 됐고 6개월 정도 한량처럼 세월 좋게 보내다 찾은 일이 커피 일이라 이거 뭐 결혼은 그만 됐다 싶었는데 커피 일을 정리하고 다른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사람과 결혼을 했다. 이 흐름은 상당히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물론 백수로 지내던 시절부터 커피 일을 정리하기까지 근 5년 정도 상당히 외롭긴 했다. 외롭다고 외로움이 사무쳐 쌓이고 쌓여 다 차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희한하게 만나게 됐다.



 우연, 인연, 운명... 어떤 단어를 가져다 써도 다 말이 됐다. 우연이 반복된 인연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애초에 만날 인연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사랑은 역시 운명적으로 결국엔 만나게 되는 거야 하고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여하튼 만났다. 그리고 지나고 나서 이야기지만 아내는 이 이야기를 싫어하지만 아내를 처음 만날 때 여느 여자를 만날 때와는 다르게 편했다. 그렇다고 아내를 무시해서 편하게 대한 건 아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아내도 그렇겠지만 서로 한눈에 반하고 그랬던 건 아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 동료로 친하게 지내면서 차츰차츰 서로에게 녹아들었는데 그 과정이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야 되나?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 잘 보이려고 애를 쓰다 보면 의도적으로 내 모습을 조금 과장되게 보이려 힘을 주게 마련인데 그런 게 없었다. 남녀의 관점 차이에 의해 이런 부분을 여자인 아내는 내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편했나?라고 하면서 다소간에 서운함을 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게 그게 그런 게 아닌데... 딱 꼬집어 뭐라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아내의 부모님께서 한 번 보자고 한 이후로 눈 한 번 깜빡이니 결혼식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내 나이 한국나이로 마흔, 만으로 서른여덟이 되던 2018년이었다. 예전에 비해 결혼 시기가 조금 늦어지긴 했음에도 불구하고 늦은 나이의 결혼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내와 아이를 갖는 건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어? 나이가 차서 한 결혼이니 아내의 노산 등을 생각하면 ‘천천히’가 아니라 빠르게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의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내가 생각하는 순리란 그런 게 아니었다. 일반적인 누가 정했는지 모를 사회적 통념에 맞춰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가는 게 나에겐 순리였고 그 부분은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다. 나이가 차서 한 결혼이지만 노산 등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아이는 우리가 원할 때 갖자. 일단 소위 신혼을 즐기자. 뭐 이랬던 거 같다. 우리 부부가 생각하는 순리라면 노산이 정 걱정되면 아이를 안 갖는 것도 분명히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는 ‘딩크 족’은 아니었다. 딩크 족이란 단어가 나온 김에 잠시 옆으로 새 보면 난 이런 사회적으로 무언 갈 규정짓는 단어가 싫다. 독신주의, 요즘은 비혼 뭐 이런 단어 말이다. 결혼을 안 하면 안 하는 거지 굳이 독신주의나 비혼이란 표현을 쓰는 게 뭔가 조금 안쓰럽다. 왜 그런 단어를 쓰는지 충분히(?) 이해는 한다. 오지랖이 넓은 인간들이 옆에서 엔간히 귀찮게 했으면 그럴까 싶다. 그때마다 설명하는 것보다 ‘나 독신주의야!’ 혹은 ‘나 비혼이야!’ 이러면 오지랖이 넓으신 상대는 더 이상 말을 잇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좋은 방편인 건 알겠는데 그럼에도 뭔가 조금 안쓰러운 건 어쩔 수 없다.



 뭐뭐 주의 그러면 어찌 됐든 가급적이면 지켜야 하는 그것도 웬만하면 변치 않고 지켜야 하는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외쳤던 분들 중에 일부가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변하면 또 아무렇지 않게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아니 뭐 정치적으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인간들도 비일비재한데 결혼을 안 하겠다고 했다가 하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별스럽지 않은 대수롭지 않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오히려 독신주의니 비혼이니 하는 단어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별 의미도 없는 언제 뒤집힐지도 모르는 주의도 아닌 뭐도 아닌 그저 도피성 표현이지 않나 싶은 거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결혼이라는 단어도 똑같은 맥락에서 필요 없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맞다. 같은 맥락에서 결혼이란 단어도 필요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결혼은 미우나 고우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어떤 기준점 같은 표현이다. 사랑해서 뭐 이딴 걸 따지기 이전에 인간도 하나의 동물로서 종족번식이라는 근원적인 목적에 의해 결혼은 기준점이 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독신주의나 비혼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음에도 결혼이란 표현은 없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결혼을 꼭 하라는 의미로 결혼이란 단어는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개념이 아님을 분명히 해 둔다.



 이런 맥락에서 딩크 족이란 표현도 웃기다는 거다. 아니 결혼해 살면서 신혼 생활을 즐기다 상황과 마음이 맞으면 아이를 낳을 수도 안 낳을 수도 있는 거지, 안 낳으면 딩크 족이고 낳으면 또 뭐 단어를 만들어 뭐라고 불러야 되는 건가? 이 역시 전통적인 가족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앞 세대 그러니까 부모님들이 애를 좀 낳아라, 언제 낳을 거니? 늦으면 노산이라 힘들다, 대는 이어야 될 거 아니냐... 등등등. 오죽 잔소리를 했으면 이런 단어로 선언 아닌 선언을 했겠냐 만은 그냥 당당하게 신혼을 더 즐길랍니다! 그냥 우리 둘이 알콩달콩 사랑하게 해 주세요! 하고 왜 말을 못 하는지... 그렇게 두면 알아서 사랑하다 그 사랑이 물리적으로 결합하는 그리고 하늘이 정해주는 어느 날 아이도 생길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역시 딩크 족이란 단어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즐거운 신혼생활을 보냈다. 딩크 족이고 나발이고 그딴 건 모르겠고 같은 일 같이 열심히 잘하면서 쉬는 시간에 영화도 즐겁게 잘 보고 맛있는 것도 잘 먹고 아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많이 말렸지만 너무나도 시원한 맥주도 마셔가며 재미있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하고 2년이 다 돼 가던 어느 날, 코로나가 터진 2020년 봄 4월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 쓰고 있는 휴대폰을 2020년 4월에 샀는데 휴대폰을 사고 나서 알게 됐는지 알고 난 뒤에 휴대폰을 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여하튼 어! 임신이다! 어라! 우리 부부가 이제 부모가 된다고 이러면서 양가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아이 문제로 부담을 주지 않으셨던 하지만 손주는 보고 싶어 하셨던 그게 티가 났던 양가 부모님은 참 기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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