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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Mar 29. 2024

제목이 길어서

https://groro.co.kr/story/9008



 다시 씁니다. 

‘그로로라는 문을 열고 들어 간 식집사라는 세상’



 처음으로 식물을 키운 게 언제인지를 생각해 보면 특별한 시점이 기억나진 않는다. 그저 어린 시절에 흔히 한 두어 번 키워 본다는 양파나 고구마 등을 유리병에 꽂아 본 정도? 적당한 크기의 유리병에 물만 채워서 대충 꽂아 놓으면 정말 잘 자랐던 양파나 고구마가 기억을 할 수 있는 그나마 식물을 ‘키웠다’에 근접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외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식물을 키운 적은 얼마 전까지 없다고 보면 더 정확할 것이다.(결혼 후 집들이 선물로 받은 신산세베리아가 있긴 있었네요.) 오히려 식물이 아닌 동물을 강아지를 12년 정도 키우다 하늘로 보낸 적은 있다. 식물은 딱히...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물론 강아지도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 키웠다기보다는 이러저러한 상황에 의해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강아지를 안고 들어 와 키우게 된 경우이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식물 그리고 동물 그러니까 생물 자체에 무관심한 성격은 아니다. 악마 같은 순수함을 가졌던 어린 시절에 악랄하게 곤충이나 지렁이 그리고 개구리 정도까지 이유도 없이 괴롭히거나 죽여 본 적은 있다. 다행인 건 그런 순수한 악마성은 초등 저학년 이후로 사라졌다. 그리곤 오히려 작은 곤충 한 마리도 잘 죽이지 않았다. 모기나 파리 등이 집에 들어오면 때려잡긴 하지만 이외의 곤충들이 집에 간혹 들어오면 잘 들어서 밖으로 풀어주면(?) 줬지 죽이진 않았다.



 무생물인 물건도 험하게 다루는 편이 아니라 생물은 나름 생명 자체로서 존중하며 소중하게(?) 다루는 편인 성격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생물을 보면 안타까워하고 안쓰러워 내가 어떻게 해야지 하고 매번 행동에 옮길 정도는 아니다. 아! 한 때 나중에 돈을 정말 많이 벌면 유기견/묘를 위한 시설을 한 번 만들어 보자 하는 생각을 생각만 해 본 적은 있다. 지금도 유효하긴 한데 그만한 돈을 벌 수 있을지...



 그런 내가 재작년에 그로로라는 플랫폼을 만났다. 글을 쓰겠다고 나대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플랫폼이었다. 단순하게 글을 써 올려 공유하는 플랫폼은 아닌 조금은 묘한 플랫폼이었다. 가장 묘했던 점은 글을 쓰라는 건지 풀을 키우라는 건지 애매했다는 것이다. 글을 써 올려 공유하는 공간은 분명한데 뭐 이리 초록초록한 지... 처음엔 적응이 안 됐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적극적으로 식물을 키워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서식하기엔 다소 부담 아닌 부담이 있는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잿밥에(약간의 원고료) 눈이 멀어 꾸역꾸역 버텨 가며 글을 써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로로팟’이라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다른 게 아니고 그로로 측에서 보내주는 식물을 키울 수 있는 키트를 통해 그야말로 식물을 키우고 그 과정 자체를 소재 삼아 글을 써 올리는 이벤트였다. 아하! 이렇게 사람을 말이야 응, 식물에 별 관심도 없고 식집사는 내가 쓰는 단어가 아니라는 사람도 식물을 키우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오호라~ 이것 봐라~ 하면서 키우기로 했다. 생명에 대한 대단한 사명이나 식물에 대한 특별한 관심보다는 그저 글을 쓸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재로 활용하기 위해 키우기로 했다. 더불어 대부분 식물 키우는 글을 써 올리는 공간에서 독야청청 다른 글만 써 올리기도 약간 답답한 시점이기도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로로팟 1기(처음엔 1기란 표현을 쓰지도 않았다. 단발성 이벤트인 줄 알았다.)를 통해 이전에 듣도 보도 못한 ‘임파첸스 데즐러’라는 식물을 키웠고 지금도 베란다에서 자라고 있다. 이벤트 정식 대상자가 되진 않았지만 그로로팟 2기를 통해선 다 죽여 버렸지만 그래서 살식마라는 칭호도 얻었지만 ‘라벤더’를 키웠다. 그리고 지금 그로로팟 3기를 통해 ‘네모필라’를 키우고 있다. 돌아보니 베란다에 작은 화분과 식물을 키우기 위한 약간의 집기(그로로에서 보내 준 집기들)를 갖고 있는 어엿한(?) 식집사가 돼 있었다.



 1기라는 표현도 없었던 처음의 그로로팟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식물을 직접적으로 키우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더 나아가 이번에 다시 그로로팟 4기를 통해 뿌리채소 중에 하나인 ‘적환무’를 키워 볼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식물을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은 정확하게 ‘신기함’이었다. 상황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걸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신기했다.



 작은 부스러기 같은 몰랐으면 그저 먼지 정도로(실제 먼지라고 하기엔 크지만) 이해하고 훅 불어 버렸을 크기의 작은 씨앗을 그냥 흙에만 심어 놓으면 어떻게 저렇게 싹이 나오는지, 싹이 나오는 건(어차피 처음 빼꼼하고 나오는 싹은 그리 크지 않으니) 그렇다 치지만 점점 줄기를 굵게 위로 뻗어 올리면서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생명의 신비로움’이란 상투적인 표현을 실감하게 됐다.



 지금은 다소 식물 키우는 부분이 소강상태긴 하다. 그저 베란다에 살아 있으니 잊을 만하면 왔다 갔다 하면서 한 두어 번 물을 주는 정도가 전부다. 당장 키우고 있는 녀석들도 있고 또 키우겠다고 그로로팟 4기를 신청해 둔 상태이긴 하지만 그 적극성이 그로로팟 1기 때 와는 차이가 있다. 물론 기회가 주어지면 나름 열심히 키우긴 할 것이다. 아! 식물을 키우는 그런 상황이 이제 약간 적응이 돼서 내가 원래 식물을 키우던 사람이구나 하는 착각을 바탕으로 삶의 일부가 돼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게 아마 정확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글을 쓰기 위한 꽤 괜찮은 소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식물을 키울 거 같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늘 식물을 키울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식물 키우기 이전에 글을 쓰는 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언제 내가 글을 쓰고 식물을 키웠었나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외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지금 당장은 다소 시큰둥해지긴 했지만(글이나 식물 모두) 글을 쓰거나 식물에 물을 주며 피어난 꽃을 보다 보면 슬쩍슬쩍 설레는 순간이 아직은 스칠 때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 3rd 그로로팟, 봄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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