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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Apr 05. 2024

아빠

https://groro.co.kr/story/9162



 2020년 12월 21일.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었다. 빠르면 일주일 전, 늦으면 일주일 후에 나오기도 한다는데(그 폭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르다.) 우리 아이는 정확하게 출산 예정일에 태어났다. 예정일 전날부터 준비를 했다. 언제든지 배가 많이 아파오면 바로 산부인과로 달려갈 참이었다. 기억에 의하면 예정일 새벽 3~4시부터 준비를 한 거 같다. 아픈 배의 상황과 정도를 보면서 언제 갈지를 가늠하느라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오지도 않았다.



 산부인과에 전화를 해 미리 가 있으면 안 되냐 하고 물으니 아프면 오라는 대답만 반복됐다. 어차피 미리 와 봐야 기다리는 건 같다고 편안한 집에서 기다리다 오라는 답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하는 건지, 자는 건지, 조는 건지 모르게 몇 시간을 보내다 아침 9시가 다 돼서 병원엘 간 거 같다.



 병원에 가자마자 일사천리로 조치가 취해졌다. 남편인 나는 딱히 할 게 없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간호사들이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걸리적거리지 않게 옆에 있는 게 전부였다. 우선 자연분만을 시도하기로 했다. 기본적인 조치를 취하고 얼마 뒤 본격적인 통증이 시작됐다. 나는 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저 통증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다면 뭐라도 할 텐데 손을 잡아 주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통증이 심해 어쩔 줄 몰라하는 아내를 보며 ‘괜찮아, 괜찮아. 조금만 참아.’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였는지 괜찮다는 말 좀 그만하라는 아내의 타박을 듣기도 했다. 왜 그런 타박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아니 그럼 어떻게 할 수 있는 행동과 말이 그거밖에 없어 그거라도 해야지 통증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는 괜한 볼멘소리를 했다. 아내도 나도 서로 마음에도 없는 타박과 볼멘소리였다. 그만큼 아픈 통증이었다는 방증이다.



 무통 주사도 두 번 정도 맞은 거 같다. 그때마다 아내는 되물었다. 무통 주사 놓은 거 맞냐고, 통증이 전혀 가시질 않는다고... 몇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간호사 그리고 의사 선생님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두세 번의 확인을 거친 의사 선생님이 안 되겠다고 수술을 해야 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아침 9시경에 와서 자연분만을 위해 통증을 버텼는데 조금 이른 저녁인 5시쯤에 결국 수술을 결정했다. 그냥 수술을 할 걸 하는 말이 아내와 내 입에서 그냥 튀어나왔다.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결국 수술을...



 남편인 나는 역시 할 수 있는 게 더더욱 없었다. 아내는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갔고 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수술실 밖을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수술을 한 다른 부부가 나왔다. 그쪽 아내는 아직 마취가 덜 풀렸는지 비몽사몽 침대에 누워 침대 째 실려 가고 있었고 남편은 죄지은 보릿자루처럼 어쩔 줄 몰라하며 끌려가고 있었다. 조금 뒤의 내 모습이겠지...



 다소 늦은 시간이라 병원이 조용한 편이었다. 이제나 저제나 수술이 언제 끝나나, 들어 간지 꽤 된 거 같은데 왜 아무 연락이 없지? 혹시 잘못된 건 아니겠지? 조금씩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의식하지 못한 순간 저 멀리 아이의 울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다른 임산부가 출산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래 산부인과니까 다소 늦은 시간이라고 해도 우리 부부 말고 다른 부부도 있겠지 했다.



 그리고 얼마 뒤 간호사가 딸이라며 아이를 안고 나왔다. 아득하게 들렸던 아이의 울음소리는 바로 내 딸아이의 울음소리였다. 시간은 저녁 6시 33분이었다. 그야말로 내 팔뚝만 한 아이였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하는 아이였다. 얼굴은 약간 들뜬 듯이 발갰다. 예쁜 건지 못난 건지 도통 가늠이 안 갔다. 좋은 건지 기쁜 건지 설레는 건지 두려운 건지 먹먹한 건지 감동이 가슴에 꽉 들어차 뭐가 뭔지 모르겠는 건지 여하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의해 그래서 오히려 덤덤해 보이는 모습으로 아이를 안았다.



 정말 내 팔뚝만 한 아이가 자기 아빠 팔뚝 위에 안겨 있는 건지 어딘지도 모른 채 꼬물락꾸물락 거렸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어서 이 녀석이 건강한 건지 어떤 건지도 몰랐다. 다만 전문가인 간호사가 밝게 웃으며 나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통해 뭐가 잘못된 건 아니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안도할 뿐이었다.



 내 아이지만 아직은 내가 온전히 안을 수 없는 해야 될 조치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기에 간호사에게 넘겨주고 아내를 기다렸다. 앞서 먼저 나간 다른 부부의 모습이 재방송하듯이 반복됐다. 마취가 풀리지 않아 정신을 못 차린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를 보며 고생했다는 말도 못 한 채 그저 죄인처럼 어디 줄도 없는데 정말 묶인 것처럼 졸졸 따라 3층 입원실로 올라갔다.



 자연분만을 하면 아이를 낳고 몇 시간 되지도 않아 걸어 다닐 수도 있다고 하는데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퉁퉁 부은 모습으로 아내가 깨어났다. 온몸이 퉁퉁 부었다. 화장실을 가겠다고 몸을 일으켜 앉았는데 다리를 보니 이게 정상적인 사람의 다리인가 싶을 정도로 퉁퉁 부어 있었다. 주물러 주며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내를 부축해서 화장실에 겨우 보냈다.



 그렇게 입원실에서 2박 3일 그리고 바로 조리원에서 2주를 보냈다. 조리원을 나오는 날 얼마나 두렵던지... 조리원 선생님 한 명을 할 수만 있다면 납치해서 집에 감금해 두고 아이를 보게 하고 싶었다. 다 지난 일이지만 당시엔 그 작은 엉덩이하고 다리가 어떻게 될까 싶어 덜덜덜 떨면서 기저귀를 갈았다. 지금은 기저귀도 떼고 알록달록 귀여운 팬티를 입는 어엿한 유아가 됐지만...



 아이를 갖고 태어나고 키우는 과정 속에서 드는 감정 중에 최고는 신기함이었다. 전에 다른 글에도 상황을 보고 신기해하는 걸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여하튼 신기했다. 조리원 퇴소를 하고 집에 오니 아이는 태어난 지 벌써 햇수로 두 해가 되는 아이가 돼 버렸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 아이는 이 생명은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작년만 하더라도 이 집에 없던 존재였는데...



 분명히 내 눈앞에 딸이라는 존재로 옹알거리고 있지만 10년 전도 5년 전도 3년 전도 1년 전도 아닌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존재 자체가 없던 아이였는데 이게 뭐지? 이 상황이 뭐지 싶었다. 내가 아빠고 이 아이를 낳은 사람이 엄마고 그 엄마가 내 아내고 모든 것이 명확했지만 명확하지 않았고 꿈만 같았다. 똥 기저귀를 갈아 주고 똥이 새서 묻은 옷을 손빨래를 하면서도 그야말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아내와 내가 사랑을 해서 만들어 낸 아이이고 태어나는 모든 과정을 다 지켜보고 이름도 지어 주고 출생신고도 하고 할 거 다 했음에도 여전히 신기했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생명을 만드는 건 자연이라는 이름의 어마무시한 조물주인데 순간 그 조물주의 대리인이 된 거 같기도 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명을 조물주의 대리인이라는 자격으로 잠시 신에 버금가는 능력을 부여받아 생명을 만들어 낸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해서 아빠의 세포 하나인 정자와 엄마의 세포 하나인 난자가 만나 사람이 만들어지고 태어난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다. ‘생명의 위대함’이라는 표현이 특별한 부연 설명 없이 그냥 100%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더 무섭고 신기한 건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이 나와 아내를 닮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의 세포와 아내의 세포가 만나 만들어진 생명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눈에 보이는 생명이 만들어진다는 게 아무리 과학적으로 다 설명이 된다고 해도 신기한 건 매한가지였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신기하게 생각하는 엄마아빠를 닮기도 했다니... 무서울 정도로 대단한 DNA다.



 어느덧 태어난 지 39개월이 지났지만 신기한 건 여전하다. 이제 자기는 다 컸다고 언니 됐다고 그래서 유치원에도 간다고 날이 갈수록 까부는 수위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신기한 건 여전하다. 이 신기한 마음이 딸아이가 고등학생 정도 되면 조금은 무뎌질라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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