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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Dec 07. 2024

첫눈

https://groro.co.kr/story/12902



 첫눈이 왔다. 일부 지역은 폭설이 내렸다. 첫인사치 곤 아주 격한 인사였다. 물론 내가 사는 청주도 첫 눈치고 꽤 많은 눈이 내렸다. 다행히(?) 쌓이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예년에 비해 계절이 한 달 정도 늦게 간다고 11월 말인데 10월 말의 날씨를 보이고 있다고 했는데 느닷없이 첫눈이 내렸다. 그것도 많이. 그야말로 쏟아졌다.



 날씨 변화에 대한 반응이 둔한 편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겨울옷을 입고 다닐 즈음 겨울옷을 꺼내 입고 역시 모든 사람들이 반팔을 다 입을 때 비로소 입고 다니는 긴팔 셔츠의 소매를 걷기 시작하는 편이다. 하지만 날씨 변화 자체에 대한 인식은 의외로 빠른 편이다. 그저 반응을 늦게 할 뿐이다. 무의식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잡으려 하는 건지 흘러가는 시간에 대드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다.



 최근 들어 날씨 변화에 조금 더 민감해졌다.(반응이 더딘 건 아직 그대로 긴 하지만...) 나이가 조금 들어차면서 소위 면역력이라는 게 아무래도 떨어지다 보니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겨울옷을 늦게 꺼내 입고 뒤늦게 소매 셔츠를 걷는 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지만 비염이 심해진다거나 이런 건 의지로 어떻게 막을 수가 없다. 아니 비염이라는 것도 없다가 30대 중반 이후부터 생겼다. 삶의 질이 무진장 떨어진다.(이런 젠장)



 그리고 또 하나 들어가는 나이와 별개로 식물을 키우다 보니 보다 더 날씨 변화를 예민하게 느꼈다. 사람이나 동물은 이게 움직일 수 있으니 춥거나 더우면 그 반대의 곳으로 일단 피할 수 있는데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그런 행위 자체를 할 수가 없다. 해서 키우는 사람이 온도 변화와 일조량 등을 보고 위치를 옮겨 줄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얼어 죽거나 더워 죽는 모습을 바로 보여 준다. 실제로 너무 더워서 그리고 추워서 죽인 경험이 두 번이나 있다...



 지난 8월에 씨앗부터 키우기 시작한 몬스테라가 있다. 이제 잎도 4장이나 펼쳐 냈다. 특이하게도 찢어진 모양의 잎을 보여 주는 식물인데 아직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진 않지만 펼쳐진 잎이 탐스럽게 잘 자라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 놈이 원산지가 열대 아메리카다. 그렇다. 추운 겨울엔 쥐약이란 소리다. 그래도 영상 10도 정도까지는 괜찮다고 한 글을 어디에선가 봤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밤낮 상관없이 베란다에 두고 키웠고 잘 자라 왔다.



 하지만 첫눈이 온 그야말로 겨울인 지금 계속해서 베란다에 둘 수는 없었다. 물론 낮에는 상관이 없다. 아직 엄청나게 추운 한 겨울이 아니라 낮에는 바람이 없고 날이 좋으면 따뜻하기 때문에 창문을 닫은 베란다는 더 따뜻했다. 문제는 해가 진 밤이다. 아무리 창문을 닫은 베란다라곤 하지만 열대와는 사뭇 다른 온도라 분명히 문제가 될 수 있다. 해서 얼마 전부터 이 녀석을 밤에 어디 둬야 하나 고민했다.



 마땅한 곳이 없었다. 거실 어딘가에 적당히 들여놓으면 되지만 나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깨발랄하게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딸아이가 실수로 발로 차기에 너무 좋아서 그럴 수는 없다. 물론 아이가 직접 이름을 지어 준 몬스테라이기 때문에(이름은 꺼뭉이다.) 일부러 발로 차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스스로도 통제가 잘 되지 않는 다섯 살 아이이기 때문에 마음 편히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툭 던지듯이 한 마디 했다. 그냥 책상에 올려 둬. 내가 주로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보는 방이 있는데 그 방의 책상에 올리라는 것이다. 아하! 그러고 보니 지금은 안 쓰고 있지만 식물 키우는 전자제품인 ‘틔운’도 예전에 책상에 올려두고 썼었다. 다만 그 생각이 바로 나지 않은 건 이전의 식물들보다 화분이 조금 커서 그랬던 거 같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책상에 올릴 수 없을 정도로 큰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자기 전에 책상에 올려 두고 자기로 했다.



 드디어 찾았다. 올 겨울 몬스테라 꺼뭉이가 밤을 보낼 곳을.

 춥지 않게 잘 자. 꺼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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