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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Sep 05. 2023

렉스턴 차장의 비극

회사가 인생의 전부였던 남자

  01.


  분명히 <렉스턴>이었다.


  점심시간에 회사 주변을 산책하던 제 눈에 들어온 그 승합차 말이다. 식당 건물 주차장의 강인해보이는 외관의 남색 SUV 차량. 눈썰미 없고 차에 관심없는 나조차도 그 차종 만큼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 maksym_tymchyk, 출처 Unsplash


  별 생각없이 산책을 나온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오랜 기억 속에 숨어있던 한 남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02.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다.


  처음 입사했을 당시 거래처에서 일하던 차장님 한 분이 있었다. 그는 굉장히 꼼꼼하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꼭 그런 성격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비쩍 마른 체형의 그는 수시로 우리 회사 사무실을 누비고 다니곤 했다. 서류가방에 지퍼가 닫히지 않을만큼 많은 A4지 뭉치를 한가득 쑤셔넣고서 말이다. 회사 상호 간에 납품 진행과정을 크로스 체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게 그의 임무였.


프린트 해서 보여줄 수 있나요?


  그의 단골 멘트였다. PC화면을 통해 이메일이나 자료를 보여줘도 늘 하드카피로 출력해달라고 했다. 그래야 잘못된 데이터가 있을 때 제대로 보인다고.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자료에 있는 사소한 오탈자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모두 다시 수정해서 프린트해드려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었다. 중요한 자료든 아니든 말이다.




  03.


  따지고보면 그는 <을>이었다. 


  우리 회사 차원에서 봤을 때에는 그랬다. 아주 오래 전부터 거래해왔기 때문에 갑을 간에 계약이 깨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업무처리를 함에 있어서 본인의 성격을 고집했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너무하잖아.
자기한테 결재라도 받으라는 거야, 뭐야.

  나이로는 20살은 족히 어린 직원들조차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곤 했지만 어림없었다. 그는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영업의 고수였기 때문이다. 갓 입사한 애송이의 칭얼거림 따위는 그에게 조금의 타격도 줄 수 없었다. 최소한 겉보기에는 그래보였다. 그는 다른 직원들의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결코 뜻을 굽히지 않으셨고, 햇병아리들은 삐약삐약 불평하면서도 그의 입맛대로 데이터를 가공하여 갖다 바쳐야 했다. '하드카피'로 말이다.


  나 역시 그 햇병아리들 중 하나로써 차장님의 주요한 업무 파트너였다. 가끔 업무 현장 방문을 할 일이 있을 때면 그의 차를 얻어탈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가 몰던 차가 바로 <렉스턴>이다.




  04.


차장님,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면피만 할려고 하시지 말고
일이 좀 되게 도와주세요.


© siavashghanbari, 출처 Unsplash


  그런 하소연 같은 부탁을 얼마나 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가장 거슬리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이  별 것 아닌 대화내용까지도 모조리 메모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전부' 말이다. 업무처리가 미숙하던 입사 초기 신입시절의 나는 마치 거래처로부터 감시를 받고, 치부책이라도 작성되고 있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했었다.


  - 꼭 이렇게까지 체크 하셔야겠어요? 업무적으로 아무 의미 없는 일이잖아요. 저 지금 정말 바쁘다구요!


  - 에이, 그래도 한 번 확인해주세요. 혹시나 해서 그러는 거예요. 잠깐이면 되잖아요. 헤헤.


  참다 못해 감정표현을 해도 타격감은 없었다. 그는 능글거리며 나를 달랠 줄 알았으니까. 집요하게 체크하고, 확인했다. 그렇게 이미 잠겨지지 않는 서류가방에는 A4지 한 뭉치가 또 추가 되는 것이다.




  05.


  내가 다른 부서로 옮기고 나서야 그 시달림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차장님이 퇴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악취미에 가까운 강박으로 점철된 그의 서류가방도 A4지 더미로부터 해방 되었겠지?



© jameshosejr, 출처 Unsplash


  그의 퇴직은 자신의 정신건강에도, 그의 업무 파트너들에게도, 서류가방에게도 잘된 일이라 믿었다. 2년쯤 뒤, 갑작스런 비보를 전해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인은,

자살

  나는 약 2달이 지나서야 그 소식을 전해 듣게 됐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잔인하지만 매우 현실적인 고민.


© good_funeral_guide, 출처 Unsplash
이제 와서 부조금을 보낸다는 게
의미있는 일인가?

  당시에는 꽤나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내 벌이는 적었고, 부조를 하기에는 애매한 시점이었으니까. 그러고보니 차장님은 마지막까지 나 딜레마에 빠지게 한 셈이다.


  '차장님, 이게 대체 의미가 있는 일이긴 해요..?'




  06.


  고민 끝에 은행 어플의 입금 버튼을 누르고 나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순수한 애도의 표시였다기 보다는 내 마음의 짐을 덜어놓는 값이라고 해야할까? 물론 오랜 기간 함께했던 얄팍한 동료애도 있었고, 갓입사한 햇병아리 주제에 갑질 아닌 갑질을 한 듯한 모종의 죄책감도 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역시 <연민>이었다. 차장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10년 이상 같은 일을 해왔었다. 담당자를 찾아다니며 서류에 정렬된 항목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또 체크하는 일. 엑셀 시트의 수식을 통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일임에도 컴퓨터로 한 번, 하드카피로 또 한 번 확인했다. 


  실상 단순한 업무였다. 그는 결벽적으로 규칙적이었고, 업무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그 이유가 개인의 안위때문인지, 순전히 자신의 예민한 성격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그 업무 하나하나는 그 분의 모든 것이었다. 모르긴 해도 그 분 역시 그것이 천직이라 여기고 매우 만족해 했을 것이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 일을 영원히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 jannerboy62, 출처 Unsplash


그렇게 찾아온 퇴직.



그리고 그 다음엔...




  07.


  지금 내가 너무나 바라는 <퇴사>가 어쩌면 <거대한 상실>로 다가올 수도 있겠구나. 그때 그런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다. 그리고 10여년 전의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었다.


역시
더럽고 치사해도
계속 다녀야 해, 회사.

  허나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는 '렉스턴 차장님의 비극'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10억 만들기, 건물주 되기, 경제적 자유를 위한 조기퇴직 등등의 말들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목표들이 아무리 멋져보인다한들 수단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 나열한 것들은 그 자체로 뭐가 되진 않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어떤 목표가 있고, 그로 인해 어떤 가치와 꿈을 실하고 싶은 것일까?


만약
렉스턴 차장님에게도
그런 게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렇게까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진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감히 해보았다. 마트에서 산 5천원짜리 식물 키우기, 오늘은 500보 더 걸어보기, 자유형으로 어제보다 3미터만 전진 해보기 등 뭐가 됐든 말이다. 모쪼록 계시는 그곳에서는 렉스턴 차장님께서 진정한 행복을 찾으셨길 바란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시 하실 수 있는 일이라도 찾으셨길 바라본다.


  들고 다니시던 것보다 조금 더 큰 가방도 함께 말이다.


© sixstreetunder,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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