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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Oct 06. 2023

휴직한 첫날이 가장 지옥 같았던 이유

  01.


  드디어 오늘부로 휴직이 시작되었다. 물론 당분간은 후임자나 다른 동료들로부터 업무 관련 연락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휴가를 나가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휴가 중인 경우라면 통화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까다로운 문제인 경우, 어쨌거나 내가 복귀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업무대행을 봐주는 동료도 그것을 감안하고 어느 정도 선까지만 대응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급할 땐 회사에 다시 들어가는 일까지도 꽤 자주 벌어지곤 한다.


  그러나 휴직 중이라면?


영화 '아저씨' 중
  휴직은 방탄이야!



  02.


  실은 벌써 그런 연락을 한 통 받았다. 나는 급박하지 않은 일상적인 업무임에도 습관적으로 휴대폰으로 연락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당장 자기 일 쳐내는 것만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nordwood, 출처 Unsplash

  일상적인 업무 문의차 전화를 걸었는데 담당자가 사무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 같은 경우에는 상대가 다른 일로 바빠서 부재중임을 짐작하고 다음에 다시 전화를 거는 편이다.


  그럼에도 그런 내 주관과는 달리 요즘의 사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아예 사무실로는 전화도 하지 않고, 곧바로 휴대폰으로 먼저 전화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 것이다. 아니면 대뜸 톡방을 열어 자기 편한 대로만 갈겨쓴 장문의 메시지를 투척하거나.




  03.


  오늘 아침에 전화를 걸어온 사람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자기 일만 세상의 전부인 사람 말이다.


  - 안녕하세요. 서 과장님 맞으시죠? 죄송하지만 업무 문의차 전화드렸습니다.


  '대체 무슨 사명감이에요? 누가 시켜서 이래요? 아니면 원래 일을 이렇게 해요?'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묻고 싶었다. 용무가 '업무'이기만 하면 사정 안 봐주고 이렇게 편하게 전화 걸어도 되는 것인가? 경험상 이런 전화 거는 사람치고 정말 촌각을 다툴 만큼 급한 일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그냥 자기 성격이 급한 것일 뿐. 그러나 이제 이런 내면의 악다구니도 당분간은 안녕이다. 따져 묻는 대신 나는 이 한마디로 그를 무력화시켰다.


  - 사실은 제가 오늘부터 휴직입니다.




  04.


  늘 당당하던 그였다. 평소엔 휴가라고 밝혀도 아랑곳없이 '급한 일이라 빨리 처리해주셔야 합니다'라고 조하게 응대하던 그가 이번만큼은 주춤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거기서부터 조금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 christnerfurt, 출처 Unsplash


  - 휴직이요?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했다.


  - 그럼 언제까지 나가십니까?


  그걸 알아서 뭐 하려고 그러나 싶었지만 이 사람 성격이 이 모양이니 맞춰주는 수밖에.


  - 내년 초까지예요. 미안하지만 앞으로는 후임자에게 연락해 주면 고맙겠어요.


  - 알겠습니다. 후임자분께 연락드리겠습니다.


  내 휴직 기간까지 파악하고 나서야 물러선 그에게 진저리가 쳐졌다. 내가 저 사람 직속 상사였다면 그런 그의 확실한 업무처리에 뿌듯했으려나? 모를 일이다. 그런 한편 는 무슨 암행어사의 마패라도 얻은 것처럼 의기양양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05.


  바로 어제, 마지막 출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서도 마찬가지였다.


© drewcoffman, 출처 Unsplash


  '오늘 출근을 안 해도 되는데 그 이유가 휴가라서가 아니라 휴직이라서? 신난다!'


  막말로 그렇게 기분이 째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이상하리만치 보통의 휴가날보다도 기분이 다운돼 있었다. 첫날이라 실감이 나지 않아서일까?


  저녁 무렵, 싱숭생숭한 마음에 산책을 나왔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왜 이렇게 별로인 기분일까. 남들은 고 싶어도 못는 휴직인데. 그렇다면 내가 상상한 휴직이란 뭘까?




  06.

  휴직 : 일정한 기간 동안 직무를 쉼.  


  인터넷에서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휴직의 뜻은 그렇게 나와 있었다. 그런 사전적 의미 말고 정말 휴직이란 건 뭘까? 이제부터 당분간은 매일매일이 토요일 또는 일요일이 되는 것?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엔 반드시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을 마주하게 되겠지. '그날'을 상상하자 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비록 시한부 천국이라 해도 지옥보다는 나으려나. 애써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오히려 마음이 급격히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무거워지는 것을 넘어서 이미 복직 전날을 맞이한 것처럼 절망감이 몰려왔다. 마치 처음 정신과를 찾아갔을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정말 누가 봤으면 '좋은 날 왜 울어? 웃어.'라는 위로라도 받을 뻔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서 미리 알아두었던 심리상담센터를 검색해서 상담 예약을 했다.


  휴직을 시작하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처럼 좋을 줄 알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나는 의외로 휴직한 첫날이 가장 괴로웠다. 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즐기기도 전에 이 휴직이 시한부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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