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툰 Oct 02. 2023

회사랑 연예인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01.


  이번 인사시즌에
부서이동 신청해 줄 수 있을까?

© linkedinsalesnavigator, 출처 Unsplash


  휴직계를 제출 바로 다음 날, 팀장이 나를 불러서 하는 말이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부서장 보고를 받았으며 동의도 했다고 한다. 


  '아니, 럴 새가 대체 언제 있었다는 거지?' 


  잠시 어안이 벙벙했지만 무엇보다 팀장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인사이동 시즌이 우연히 나의 휴직 시기와 겹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때 새로운 사람을 받 시도는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장의 말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자면, 휴직을 나가는 나를 타 부서로 보내고 난 뒤, 그 빈자리에 다른 사람을 받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요원한 일이다.


  한 달 뒤면 휴직을 나갈 사람을 어느 부서가 받아줄까? 첫 단계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어느 부서가 나를 받아준다고 해도 이후 문제 또한 쉽지 않다. 내가 떠나며 생긴 공석에 다른 사람을 받을 확률 매우 낮기 때문이다.




  02.


  길게는 1년 이상 인력부족의 어려움을 겪은 사무실도 있었다. 퇴직, 휴직 등의 사유로 공석이 2자리 이상되는 곳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런 곳들은 그동안 사람을 받기 위해 물밑 작업을 해왔을 테니, 이번처럼 불시에 난 공석을 채워줄 리 만무하다. 그것이 또한 내가 휴직을 5개월만 쓰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 5개월 휴직? 1년도 아니고, 6개월도 아니고 그게 뭐야?


  내 휴직기간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되묻는다. 휴직을 신청했을 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듣고 보니 충분히 이상할 법도 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상한 일에는 분명 닭이 있다는 뜻이다.


  불안증으로 사무실에 붙어있는 1분 1초가 지옥인 상황 속에서 나는 나대로 살아야겠고, 그 와중에 동료들을 두고 떠나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덜고 싶은 이율배반적인 욕심,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요컨대 내가 올해 말까지만 쉬고 최대한 일찍 복직하는 것이 부서원들의 부담을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랬더니 결과적으로 휴직기간이 렇게 어정쩡해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더러 다른 부서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이럴 거면 5개월이 아니라 1년 휴직을 나갔지!'




  03.


  나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현실을 돌아봤을 때에는 이건 어쨌거나 시작자체가 안 되는 발상이었다.

  

  - 제가 이번에 손 드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를 받아줄 곳이 없기 때문에 아마 사람을 못 받으실 것 같은데요. 그래서 죄송스러워했던 것이고요.


  따지고 보면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복직을 하면 인사시즌일 테고, 나는 그때 인사이동 신청을 할 계획이었으니까. 그게 몇 달 빨라지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 사람을 받는 건 우리 사무실에서 노력해 볼 일이지, 뭐. 서과장만 협조해 주면 진행해보려고 해. 그렇다고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정말 편하게 결정해 줘.


  팀장은 그렇게 말했다.


  - 저야 부서에 죄송한 마음인지라 부서에 도움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이동신청 할게요.


  - 그래, 고마워. 부서장님께는 얘기 끝났다고 보고할게. 그리고 이 얘긴 안 하려고 했는데... 


  팀장은 얘기를 끝내고 곧바로 일어서지 않고 뜸을 들였다.


  - 우리 부서에서 서 과장 자리에 오고 싶어 하는 람이 있어. 그래서 그래.


  - ?


  - 김 과장 알지? 내내 승진 때 힘을 받는 자리에 가고 싶어 했잖아. 서 과장 떠나면 그 자리에 가고 싶은 모양이야.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팀장이 왜 이렇게 어렵게 부탁하는지도. 내 자리가 승진자리라고 인식되어서 노리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휴직신청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렇게 치고 들어올 줄이야. 일사천리로 부서장에게 보고한 것도 아마 김 과장의 뜻이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의 기민함과 생존본능에 경탄과 함께 탄식이 나왔다.




  04.


  나는 실제로 부서이동 신청을 했다. 이동 신청을 하면서도 민망했다. 힘든 부서를 나와서 편안한 부서로 가려는 것 아니냐는 눈총과 의심도 받았다. 


  또한 인사이동은 정말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진 모르는다는 진리를 또 한 번 깨달았다. 휴직을 나가는 나를 받아주는 부서가 있었던 것이다. 복직 후 단 몇 개월이라도 같은 부서에서 같은 일을 하게 된다는 게 부담이었는데 차라리 잘 된 일 같았다. 그리고 김 과장의 계략(?)대로 그는 내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휴직을 최대치로 내는 거였는데.'


  내 코가 석자인데 무슨 부서 걱정, 회사 걱정을 한다고 휴직을 아껴서 냈을까. 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졌다. 역시 회사와 연예인 걱정은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내 걱정은 나만 하고 싶다고 하기 전에 나부터 내 걱정에만 집어야 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