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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Sep 12. 2023

그 호구가 휴직을 나간다고?

내 걱정은 나만 합시다, 좀

  01.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한들 남자의 육아휴직은 분명 흔치않은 이슈이다. 여성 비율이 많은 회사라서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더 잘 될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회사 내부적 절차는 마련되어 있지만 '설마 그걸 진짜로 쓴다고?' 그런 느낌인 것이다.



© christnerfurt, 출처 Unsplash


  요컨대 아빠가 육아휴직을 낸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 따분해하던 호사가들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분위기에서 내가 급작스럽게 휴직을 나가겠다고 공표(!)했을 때 그야말로 사무실은 뒤집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툰이?
그 호구가?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부서원들의 경악은 그런 정서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무슨 일이든 던져 놓으면 아웃풋이 나오는 사람, 시키면 불평없이 지시한대로 하는 사람. 회사에서 그런 게 호구가 아니면 또 무엇일까? 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의견을 냈는데 그게 육아휴직이라고 한다면 놀랄 법도 할 것 같다.




  02.

  

  그 다음부터는 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 벌이가 완전히 끊기는 건데 괜찮니?


  와이프는 뭐라고 안하니? 허락은 받은 거야?


  나중에 복직하더라도 완전히 찍히는 거 아냐?


  지금부터 빡세게 달릴 타이밍인데 휴직이라니 다시 생각해봐.


  좋아, 다 좋은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 도망치는 것처럼 보여서 모양새가 안좋다.


  네 업무 받아줄 후임자는 있어?


  

  나에 대한 평판과 직장에서의 입지를 비롯하여 내 아내의 기분과 집안 경제사정까지 챙겨주시니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평소 냉철하기만 했던 팀장까지 팔을 걷고 나섰다. 결코 나의 휴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 휴가를 내고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나는 그의 다정한 말투와 따뜻한 배려에 녹아버릴 뻔했다. 


  그렇지만 끝내 거절했다. 나라고 해서 휴직을 내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디 쉬웠겠는가. 나에 대한 그들의 염려(?)가 결국엔 자신들의 안위 걱정과 같다는 것 또한 모를 리가 없었다. 당장 한 사람 자리가 공석이 생기면 자신들에게 영향이 없을 리 만무할 테니 말이다. 


  물론 순수하게 걱정을 해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걱정된다. 나의 현재도, 앞날도 말이다. 나보다 더 내 걱정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까
내 걱정은 나만 합시다, 좀.

© freewalkingtoursalzburg,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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