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잖아도 사무실에 사람은 부족한 반면 일은 많아진다고 다들 힘들어하고 있던 참이었다. 만약 내가 휴직을 나가면 후임자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할 것이다. 더군다나 내 업무는 나눠서 하기도 어려운 성격의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1명이 내 업무를 통째로 받아야할텐데 아마 그 '1명'은 내가 가장 아끼는 후배가 될 확률이 높았다.
사실 그 동안 그 후배와 나는 3명이서 해야할 일을 둘이서 어렵게 끌고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이젠 그걸 한 사람이 해야한다고? 그것도 어려운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내가 휴직을 나간다는 이유로?
거기까지 생각하자 이게 사람 할 짓이 못되는 것 같은 거다. 적(?)들의 총탄을 막아주지는 못할 망정 후배를 앞세워 후방으로 도피하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나는 그런 딜레마로 인해 함정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렸다. 가뜩이나 우유부단한 사람이 상황조차 여의치 않으니 옴짝달짝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괜찮아. 신경쓰지마. 다 알아서 되게 돼있어.
'괜찮을까?'하고 망설이던 나를 아내가 다그쳤다. 아내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의 머리채라도 잡고 끌어내듯 단호했다.
아내 역시 직장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사회생활과 처세에 대해 알만큼은 아는 사람이었다. 길게 얘기할 것도, 더 이상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하는 얘기를 믿지 않으면 무엇을 믿으랴. 나는 그 다음주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휴직의사를 밝히고 행정절차를 밟았다.
가족에게는 어떻게 말해야했을지부터 고민했을 것 같다. 내가 얼마나 곤란한 상태인지 이해시키는 일부터 해야했을까? 그래, 그래야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는 한정된 예산으로 집안 살림을 어떻게 꾸려갈지 계획표를 짜야했을 것이다. 아니, 그 '한정된 예산'이라는 걸 어디서 끌어와야될 지부터 알아봐야 했을 것 같다.
실제로 휴직계를 낸 뒤 부모님께 이 사실을 밝혔을 때 굉장히 놀라셨었다. 가장 먼저 나와 가족들을 걱정하신 것은 당연했지만, 한편으로는 실망하시는 게 느껴졌다. 아버지에게 '조금 더 참아보면 어땠을까' 하는 뉘앙스를 느꼈을 때에는 내심 서럽기까지 했었다.
04.
그러자 새삼스럽게 아내가 고마웠다. 당장 휴직하라는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내 마음의 병이 30% 정도는 치유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도 미치겠는데 더 미치고 팔짝 뛰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당황스러우면서도 든든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집에 함께 살면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배우자다. 그런 남편 또는 아내에게 '내가 이렇게 힘들다'라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했다면 그 과정 자체도 굉장히 외로운 일이 아니었을까. 만약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지쳐있는 아내에게 그렇게 말해줄 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배우자가 되어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