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툰 Sep 19. 2023

회사가 나를 배신했다.

회사는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01.


  지난 금요일에는 사무실에 붙어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분주했다. 그날따라 타 부서에 협조 요청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 joselosada, 출처 Unsplash


  그러던 중 몇 년 전,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분을 만나 티타임을 갖게 되었다. 사무실을 나와 돌아다녀야 하는 일은 귀찮은 반면 그런 즐거움도 있는 것이다.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요즘 사는 얘기 나누는 것 말이다. 그 이야기에는 사무실마다 있는 밉상들 뒷담화도 포함됨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분에게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이젠 조직에 상처받지 않으려고 해요.


  그분에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02.


  그는 누구보다도 성실했고, 부서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셨던 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늘 웃음과 위트는 잃지 않으실 만큼 마음의 여유가 넘쳤었다. 업무를 함에 있어서도 남에게 매달려 질질 끌려가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이끌어 주는 타입이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운이 아주 좋으면 이런 사람을 한 번쯤은 같은 부서에서 만나게 된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했던 해에 발생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 분위기는 말 그대로 엄중했다. 회사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그랬다. 거리에는 주말에도 인적이 드물었고, 문을 여는 가게도 없었다. 줄어들 줄 모르는 확진자 수에 더해 신천지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방역수칙 준수에 한층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이 분이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어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보고라인의 승인 없이 어머니 병문안을 갔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회사 내부적으로 특히 '요양병원 방문'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매일 요양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mrthetrain, 출처 Unsplash




  03.


  '미리 보고를 했다면 됐을 일을 왜 크게 만드셨을까. 내가 아는 그분답지 않네.'


  딱한 사정이 이해되면서도 규정은 규정인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말았었다. 그래도 부모님 건강 문제로 급한 사정이 생겨서 그런 것일 텐데 큰 불이익이 있었을 리 없겠지.


  - 그때 별일 없이 잘 넘어가셨죠?


  가볍게 물은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징계를 받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볍다 한들 징계 이력이 있으면 승진심사 시 불이익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 사실 부서장님께 보고하고 간 거였어요. 어느 과정에서 누락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착오가 있었나 봐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제가 무단으로 병원에 간 걸로 처리되어 있더라고요.


  - 아니, 부서장님께서 방어해 주지 않던가요? 부서에서 업무처리가 미흡한 점이 있었고, 무엇보다 부모님 일인데...



© sharonmccutcheon, 출처 Unsplash
절 지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고요.

  - 그냥 다 제 잘못이라고 하고 말았어요. 그때 만약 제가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많이 위험하셨을 수도 있었어요. 그 고비 넘긴 걸로 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자신이 한 가지 변한 게 있다고 했다.


  - 이제 회사에 충성하지 않을 거예요. 사람이 하루아침에 180도 바뀔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요. 상처받지 않을 정도만 하려고요.




  04.


  '더 이상은 상처받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숙연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마음을 바쳤던 회사로부터 얼마나 큰 상처를 받으셨던 것일까. 그리고 왜 아무도 그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했을까? 같이 일한 지가 5년이 넘었는데도 내 취향을 기억하고 믹스커피 대신 아메리카노를 내어줄 만큼 세심하고 배려 깊은 분인데 말이다.



회사는
결코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나는 다시 한번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월급을 주지 않느냐고? 글쎄, 회사는 철저히 사용 가치가 있는 만큼 당신에게 최소한의 대가를 지불할 뿐이다. 아, 그 급여가 상당히 많다고? 그렇다면 자신에 대해 냉정히 평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당신은 당신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합당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회사는 그에 따른 대가를 돈으로 지급할 뿐이다. 그런 회사가 대체 뭐라고 우리는 종종 마음까지 줘버리고 상처받는 것일까? 이제는 그분이 자신이 한 말처럼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길 바란다. 나도, 당신도 역시 그럴 수 있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