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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Aug 23. 2024

내향인 남자의 육아휴직 신청 방법

  ***

  무엇보다 승진을 하면서
부서를 옮기게 되어 기쁩니다.


  최근에 있었던 회식에서 승진을 한 분의 첫마디였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 그럴 것이 서이동을 하게 되는 경우는 보통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승진을 했기 때문에 직급에 맞는 자리에 가기 위해서이거나 혹은 승진을 하기 위해서 평정을 잘 받는 자리로 가기 위해서.

  

  그런데 후자의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잡음이 생긴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고민들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원하는 자리로 갈 수 있을까? 원하는 자리로 간다 한들 점수를 잘 받을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부서 이동을 할 수 있기는 한 걸까? 부서장이 순순히 승인해 줄까?

  

  어휴,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

  하물며 휴직 신청은 어떨까?


  부서 이동 신청만 해도 그렇게 피곤한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순리에 따라 살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 반대의 삶은 지옥까진 아니라도 피곤하기 짝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행히 금은 남성 직원들도 육아휴직을 꽤 나가는 편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별종으로 취급받는 분위기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우리 회사는 그렇다.


  특히 커리어가 완전히 리셋 아니지, 리셋은 <제로(0)>이기라도 하니까 나은 편이다. 통상 평판에 있어서 아예 마이너스가 된다고들 한다.


  나는 일할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만천하에 그런 통보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라고 해야 할까.





  ***


  불가항력적이었요.


  <어떤 용기로 휴직 신청을 할 수 있었냐>는 동료의 그런 물음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 실로 그랬다. 그것은 결코 용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원체 그런 방면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기도 했고.


  나는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잘 길러진 화초나 초식동물 같은 사람이었다. 내게 주어진 케이지와 먹이가 양에 차지 않더라도 애초에 그것이 내게 주어진 몫인 것마냥 불만 없이 살아가는 타입 말이다.


  휴가를 낼 때에도 내게 주어진 일을 다 끝낼 수 있는지, 같은 파트의 사람들과 일정이 겹치진 않는지부터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늘 조직이, 회사가 불편하지 않을지부터 염두에 두곤 했다.


  우습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

  그냥 그러고 싶다고 하세요.

  

  농담이 아니다. 내가 깨달은 휴직신청하는 방법은 그것이 전부다. 휴직뿐만 아니라 부서이동 신청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고 싶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또한 그것이 <자신의 순리>에 따르는 길이다.


  그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을. 왜냐하면 곧바로 이런 물음들이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부서장이 화를 내지 않을까? 동료들이 나를 고깝게 보진 않을까?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이 있는데 너무 무책임한 일인가? 내가 조금만 더 참아볼까? 비록 지금 못 견디게 힘들다고 느껴지지만 조금 더 해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과연 이게 맞는 선택일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고 싶다>고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회사가 아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장담하건대 그 말을 하는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회사는 놀라울 만큼 빠르게 내가 없는 상황에 적응하게 된다는 사실을. 내가 없이도 회사에는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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