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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Oct 02. 2023

잃어버린 흥분

찾아낸 평범함

 벌써 몇 주 전의 일이다. 가을장마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토요일, 오랜만에 대형 백화점을 찾았다. 입구부터 길게 늘어진 주차 행렬에 경미한 불안감이 생겼다. 어린 시절, 나에게 백화점은 말 그대로 신세계처럼 느껴졌었다. 계절이 바뀔 무렵마다 새 옷을 사야 했고 그럴 땐 꼭 백화점에 들렀다. 친구와 손을 잡고 거울 앞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대보거나 입어보며 즐거운 쇼핑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와 함께 나도 변했다. 인터넷 쇼핑에 너무도 익숙해졌다. 스마트폰 화면을 만지작거리면 원하는 물건을 집 앞까지 배송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말할 수 없는 편리함에 스마트폰이 몸의 일부라도 된 듯 익숙해진 터라 오랜만의 백화점 나들이에 조금은 어색하기까지 했다.


 백화점 안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각자 원하는 무언가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었다. 나 역시 살 게 있어 몸소 백화점까지 왔던지라 그 모습이 신기할 것도 없지만 뭔가 딴 세상 구경하듯 넋 놓고 구경했다. 어린 시절, 새 옷과 새 신발이 그렇게 좋았을까. 그러나 지금의 나는 생필품을 제외하면 그다지 살 것이라고는 없다. 아무리 쥐어 짜내 생각해 봐도 딱히 갖고 싶은 게 없다.


 다음 날인 일요일, 오랜만에 소꿉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다. 한 친구는 엄청난 배기음을 내는 스포츠카를 타고 등장했다. 그 친구의 남편은 자동차 관련 업계에 몸담고 있어 이전에도 차를 자주 바꾸는 편이었다. 대부분 퍼블릭한 모델이었지만 그날 타고 온 것은 차체가 낮다 못해 바닥에 붙어있는 스포츠카였고 역대 최고 사양이었다. 처음 그 차를 본 순간,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러나 차를 부러워하거나 갖고 싶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저렇게 눈에 띄는 차를 타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될까. 존재감이 전혀 들지 않는 내 차를 번갈아 보며 나는 절대 살 일이 없는 차종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생각난 대사 한 마디. "더 이상 즐거운 게 없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1번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마음 한켠에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재미거리를 다 경험하고 볼 장 다 본 오일남 할아버지의 무게 있는 한 마디를 나도 어렴풋이 헤아리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흥분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모든 것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옅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그런 변화 속에서 나의 물욕이 줄어들고 일상의 평범함에서 비로소 안정감을 찾게 되었다. 오늘도 이 평온한 일상에 감사하며 하루를 평화롭게 보내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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