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가 남긴 교훈
이과적 사고와 샤머니즘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도 더 이상 MBTI 유형 이야기는 하기 싫었다. 하지만 나의 성격 유형을 이해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점이 될수 있기에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논리를 중시하고 분석적인 성향을 지닌 'T발C야'에 속한다. 한 술 더 떠 나는 뼛속까지 이과적 사고방식으로 무장해 있어, 지인들이 쏟아내는 하소연에 감정을 배제하고 이해관계를 따지고 들어 종종 빈축을 사기도 한다.
우리 집안은 4대에 걸친 골수 모태신앙 가정으로 깊은 신앙심 이데올로기를 자랑한다. 즉 미신이라면 고개를 젓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남편이 샤머니즘에 관한 책을 출간한 적 있었다. 나도 레퍼런스 조사로 상당 부분 집필에 참여하게 되었고 남편의 강력한 주장에 힘입어 판권지에 편집인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가족 중 누구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갔지만, 분명한 것은 그다지 반길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눈쌀이 찌푸려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남편은 공과대학교 출신으로 남편의 지도 교수님의 소개로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어 결혼까지 이어지게 되었는데, 그도 근본적으로 논리적이고 분석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는데 흥미를 느끼는 이과형에 가깝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학과는 서로 베타적인 영역인 초자연적 현상과 토테미즘, 샤머니즘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어 이제는 나조차 과장 조금 보태면 반점쟁이라고 자부할 만큼 그 방면에 잡지식이 늘었다.
남편의 이러한 흥미의 원천은 어린 시절 경험한 일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공과대학교 교수였던 이웃이 어느 날 남편의 집 마당에 들어와서 밍기적 거리며 걷고 있었더랬다. 코흘리개 남편이(진짜 코를 흘리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아저씨 뭐해요?"라고 물었더니, 손에 쥐고 있던 걸 보이며 "이게 바로 수맥이란다."라고 했단다. 남편은 5살에 불과했지만 7살 수준의 덧셈뺄셈이 가능했었고 수맥이 뭔지 쯤은 인기 프로그램 'TV속 이야기 속으로'에서 익히 봤던 터라 교수님의 손에 들려있던 철사가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어서 자기 집은 이제 어떡하냐며 비통함에 빠졌었다고 했다. 참고로 '이야기 속으로'를 어린 아이가 시청해도 적절한 지에 대한 문제는 그 당시로서는 별로 문제의 소지가 없었단다. 남편이 자란 동네에는 매 맞은 아주머니들이 한집 건너 한집이 있을 정도로 흔했고 골목길을 쏘아 다니는 똥개 조차 등 줄기에 문신 한 두 개 정도 그리고 있어도 이상할 것 없을 만큼 거친 지역이었다(마누라 패는 아저씨는 30년 전 우리 동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지금 같으면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을 장식할 사건들이 시시각각 벌어지던 찬란한 시절이었다.
그 시절 아저씨들은 예삿말로 '소주 한잔' 먹자고 하는 것은 '내일은 출근해야 하니까, 간단하게 인 당 두 병 정도씩만 마시자'라는 걸로 간주할 수 있었다. 비단 특정 지역의 문제만이 아닌게 공중파 드라마에서도 술집, 당구장이 자주 나왔고 걸핏하면 주인공이 소줏병을 쥐고(가끔은 맥줏병으로)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을 남발하던 때였다(그런데 그 시절 소주 도수가 얼마였더라?) 어떻든 그런 와일드한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 학식 깊은 공대 교수님께서 살았던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분은 꽤 넓은 지하실이 있는 단독 주택에 거주했었는데 지하에는 수맥, 음양오행 등 풍수지리에 관련된 책이 적게 잡아도 수 천 권은 꽂혀있었다고 한다. 남편은 그 분에게 큰 인상을 받았고 훗날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최근에 극장가에서 최민식 주연의 영화 '파묘'가 화제를 끌고 있다. 당연히 남편은 흥분하며 극장가로 나를 밀고 가서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나는 박스오피스를 지나기 전부터 이미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훤히 그려졌다. 실제로 영화는 예상한 대로 전개되었지만, 무척 재미있었다. 스릴러 소설을 다시 읽는 듯한 재미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한편 기독교 집안인 우리 가족은 묫자리 명당을(굳이 그렇게 입에 올리지는 않지만) 물색해 두는 게 의례적인 일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이라 종교적 신념과는 무관하게 그저 조용하고 안락한 곳에 눕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영화 '파묘'의 이야기는 반일의 색채도 진하게 베어있다. 이야기란 으레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기울기 마련이고 모처럼 영화 구경을 왔던 터라 딱히 불편한 기색없이 재미있게 관람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고 싶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일본은 풍수가 없는 나라다. '신또'라는 무속에 가까운 종교가 거의 국교로서 행사되며 대부분의 인구가 신또를 숭배하는 국가이지만 일본에서 풍수라는 건 전무하다. 이는 중국의 사정도 마찬가지. 문화를 떠나서 지리적으로도 풍수를 적용하기에는 곤란하다. 일본은 고도 2,000m 이상의 장엄한 산이 즐비하고*봉오리 기준 약 200개 추산, 한국은 0개 중국은 산은 차치해 두고도 드넓은 평지로 뒤덮혀 있어서 풍수를 대입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재미있게 봤다면서 뒷북치며 영화 속 고증을 걸고 넘어지자는 게 아니다. 단지 팩트가 그렇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그런 쪽에는 나도 남편을 잘 두었던 덕택에 공부를 좀 해두었던 터라 영화를 보며 고증이 이러쿵 저러쿵 따지고 들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렸다(그래..., 난 T발C였지).
극중에 우리 동네가 간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하여서 약간 뜨끔하기도 했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되도록 열린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며 성장해 나가고자 한다. 뻔한 이야기지만 그렇게 뻔하지 않고 아주 그럴싸한 영화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