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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May 20. 2024

동물에 대한 애증의 기억과 현재의 고민

화해를 향한 작은 발걸음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변화는 참 놀랍다.

 아기가 100일이 지나면서부터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부쩍 늘었다. 덕분에 외출 빈도도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나는 늘 아기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아기에게 읽어주는 책이나 장난감, 의류 등에는 동물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어서 아기도 동물에 친숙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큰맘 먹고 동물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는 동물원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다. 남편은 아주 신이 났지만, 나는 동물원 방문에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동물과의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나는 동물에 대해 약간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 집은 아주 오래전부터 과수원을 운영해 왔다. 새들은 과일을 쪼아 먹고, 그것도 하나만 먹는 게 아니라 여러 과일을 쪼아놓아 피해를 주곤 했다. 과수원은 우리 가족의 주요 수입원이었기에 새들이 쪼아놓은 과일들은 가족의 생계에 큰 타격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고라니, 멧돼지, 너구리, 오소리 등 야생동물들이 밭의 작물을 파먹고 망쳐놓는 일도 빈번했다.


 연로하신 할아버지께서는 현관문 앞에서 흔히 칠점사로 불리는 까치살무사에 물리는 사고를 겪어 소방 헬기를 타고 인근 도시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극적으로 살아나신 적도 있다. 아빠는 작년에 들개에게 물려 아직도 다리가 불편하시다. 그리고 고양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귀여운 고양이가 우리 집 닭장에 침입해 닭들을 몰살시킨 적이 있었다. 닭장을 철통같이 막아도 시골에서는 고양이나 뱀 같은 동물들을 막기 어렵다.


 이러한 경험들 때문에 나는 동물이라면 치를 떨게 되었다. 우제류, 파충류는 물론이고 강아지와 고양이조차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안 좋은 기억이 너무 많아서다. 곤충들에 대한 언급은 아직 하지도 않았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아기에게는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어 동물원에 갔다. 우리가 방문한 동물원은 일반적인 동물원과는 조금 달랐다. 밀착형 동물원이라 개와 고양이는 자유롭게 모든 구역을 돌아다녔고, 매점에서 먹이를 사서 줄 수도 있었다. 호랑이와 사자 같은 맹수들도 있었지만, 그날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소풍을 온 아이들로 북적였고, 사람이 너무 많아 아기가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다. 결국 입구 주변만 둘러보고 돌아 나오게 되었다.


 바닥에 보도블록이 깔려 있긴 했지만, 유모차를 밀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남편이 아기를 안고 다녔는데, 하절기라 날벌레가 많았다. 한 손으로 아기에게 달려드는 벌레들을 쫓느라 고생을 했다. 남편도 자연과 동물을 좋아한다고 항상 큰소리쳤지만, 야생 앞에서는 한낱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비록 나는 이런 좋지 않은 기억들과 경험들 때문에 동물들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데, 아기에게는 자연과 동물이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물원에 가기로 결심했었다. 이는 단순히 아기를 위한 결정일뿐만 아니라, 나의 기억과 감정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해야겠다. 동물원 방문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아기와 함께 자연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며, 나는 어린 시절의 나쁜 기억들을 조금씩 덮어가고 있다. 이런 과정이 쌓이면 나도 모르게 동물에 대한 시각이 변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아이와 함께 동물을 좋아하는 부모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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