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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수명의 도적질

공학의 합리적 의심에 대하여

by 하이경

공학적 차원의 설계수명(Design Life)이란, 어떠한 제품을 설계할 당시 초기에 설정되는 기간으로서 안정성은 물론이고 출력의 품질과 성능기준을 만족하면서 정숙한 운전이 가능한 최소한의 기간을 뜻한다. 엄격하게는 보증수명과 구분이 되지만 동일한 의미로 봄이 타당하며, 정상운전이 불가능한 기술적 제한기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험회사에서 침튀겨가며 설명하는 기대수명과 달리 설계수명은 분야마다 달리 해석이 되어, 한계수명을 뜻하는 용어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이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무슨놈의 수명이 그리도 많은지 마치 보험의 약관처럼 말장난 같기만하다) 가끔씩 설계수명은 시효화 또는 노후화에 기인하여 제품의 경제성을 보증하는 기술적 제한기간의 의미로도 사용되며, 원전의 경우라면 설비나 기계장비의 노후화에 따른 성능 저하 도래시점을 시스템의 보증기간에 따른 설계수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진부화(陳腐化)란 상태가 정상이고 여전히 정상으로 작동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거나 소멸시킬 때 발생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진부화는 미국의 발명품이다. 행위 자체는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용어가 만들어진 건 1932년 경이다. 미국상공회의소에서 발제된 논의로 경기침체를 끝내려면 소비자의 상품에 법적 유통기한을 부여하자는 뜻으로 처음 사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1881년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의 수명은 1500시간, 1920년대 공장 제품은 2500시간이었다. 1924년 제너럴일렉트릭을 비롯한 전구업체들은 전구 수명을 1000시간 이하로 하자며 동종업계와 담합을 했다. 그당시 품질이 월등한 독일제는 수입되지 못했고 수명이 긴 전구 제작과 관련된 특허는 전부 매장되었다.

이러한 진부화의 사기수법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프린터는 인쇄 매수가 1만8000장이 넘으면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칩이 삽입되어 있고, 아이팟 밧데리는 수명이 18개월로 제한되어 밧데리 수명이 다하면 기기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러한 체계적인 사기행각이 버젓이 벌어지는 것은 성장에 중독된 자본주의 탓이다. 제품의 수명이 길면 소비가 둔화되고, 그리되면 제조 공장을 멈춰야한다. 공장이 지속적으로 돌아가려면 제품의 수명이 짧아야 하고 그래야만 재구매로 이어진다. 그런고로 엔지니어 대신 디자이너가 지금의 미국 산업을 지탱하고 있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때가 도래하여 시스템의 작동이 멈추게 되면 소비자는 속수무책이다.

세탁기, 냉장고, 건조기, 텔레비전, 전자레인지, 에어컨, 심지어 자동차까지 주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주먹으로 몇차례 탕탕 치면 다시 켜지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전자제품 수리점, 자전거포, 시계수리 점포. 골목마다 있던 재활용 가게들이 사라진지는 한참 오래다.

진부화의 패악은 마치 암세포처럼 그들의 영역을 스멀스멀 확장하고있다. 휴대폰용 희토류 금속을 확보하기 위해 콩고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중국 신장자치구에서는 투르크계 주민에 대한 탄압이 정당화되고 있다. 대신 폐전자제품들이 이들 나라로 쏟아진다.

진부화는 내구재를 소비재로 만드는 전략을 통칭하는 용어로 진화했다. 기술적 진부화(기술 발전에 따른 기존 제품 폐기), 내지는 심리적 진부화(외관 설계만 슬쩍바꿔 새 상품이라 광고하거나 유행을 만들어 쓸 수 있는 물건을 강제로 버리게 하는일)도 기존 상품을 구식 상품으로 유도하는 전략의 일환이다. 1920년대에 2,500시간이었던 전구 수명은 지금 저전력 LED로 바뀌었지만 1,500 시간 내외이며, 1940년대 스타킹은 워낙 질겨 1년 이상을 신었지만 지금은 자외선 차단제를 첨가하여 올이 나가는 시간을 조절한다. 부패를 빌미로 유통기한을 적시한 식료품 따위도 진부화의 사례로 봄이 타당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전거는 매우 단순하고 간단한 장치로 얕보는 경향에서 사람들은 별거 아닌 것으로 대부분 오해하곤 한다. 그렇지만 자전거에는 기계장치의 기본적인 사상과 구조 안정성의 메커니즘이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기에 결코 만만하지 않다. 자전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힘이 무엇인지, 사람이 탑승하여 적어도 속도가 유지되는 한 자전거는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지 등등의 자전거가 일반화된 지금까지도 한 세기가 넘도록 해결되지 않은 흥미로운 질문들이 많이 있다.

물리학자 및 공학자들은 기하학 및 선형대수학이 개입된 수학적 모델링을 이용하여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고, 또한 흔히 사용하는 것보다 쉽게 균형을 잡고 조종할 수 있는 새로운 설계의 자전거를 실험한다. 세계 최초의 자전거가 18세기 말엽 프랑스에서 등장한 이후 거의 200여 년 동안 새롭게 디자인이 되고 있으며, 21세기인 현재까지 자전거 설계는 과학적 메커니즘의 분석보다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을 거듭해 왔다.

최근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기초공학인 동역학의 주행 저항과 균형 해석을 통하여 자전거의 주요 구성 요소인 바퀴, 프레임 및 스티어링 포크를 설명하는 방정식을 만들고, 이를 사용하여 자전거가 주행 중 최적의 안정성을 얻기 위해서는 앞바퀴와 지면의 접촉점이 조향축 뒤에 있어야 한다는 오래된 기본 가정과는 다소 모순되는 사실을 발견을 하였다.

처음에는 수학으로, 다음에는 공학 기초이론으로, 결국에는 실험을 통하여 앞바퀴와 지면의 접촉점이 조향축과 동일할 경우 자전거가 안정적임을 검증하였다. 그러나 이런 진보된 메커니즘으로 설계를 변경하려면 경제적인 문제에 봉착을 한다. 경기의 기록에 무관심한, 그러니까 흔히 사용하는 일반적인 자전거에 익숙한 보통의 사용자들은 과학자나 공학자와 달리 앞바퀴와 지면의 접촉점이 조향축 뒤에 있건 앞에 있건 일직선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생산자들 또한 마찬가지로 이미 표준화된 자전거의 부품과 양산체제를 변경하려면 금형비용부터 생산공정까지 전부를 뜯어 고쳐야하는 경제적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자전거의 설계수명은 공학적인 수명 데이터를 외면하고 천민자본주의 경제논리와 서로 야합하여, 적당히 시간이 지날 경우 별다른 이유 없이 망가져야만 대체수요가 발현되도록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변질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자전거에만 국한되는 사실이 아니다. 기계의 진부화는 일부러 설계 수명을 조작하여 망가뜨리게 하는 술수이며, 백색가전에서 시작하여 자동차나 생산설비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기법으로 편집된 설계수명을 뜻한다. 이는 본시 19세기 말엽 미국에서 태생하여 유럽으로 전염되고 급기야 전 세계적으로 번진 자본주의의 고질병이다.

아 물론, 없거나 필요하다면 당연히 사야 하고 멀쩡한 게 있어도 사야만 하도록 지독한 프로파간다를 통하여 또 사도록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시스템이 자본주의 근본적인 생리이다 보니 벌어지는 자연스레 발생하는 기막힌 현상이다.

이 사실은 간단하게 여러분의 필통을 검사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필통속에 꽉찬 거의 2/3 이상의 필기도구는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시효 수명이 도래한 쓰레기로 변해 있지만, 보증금도 없이 당당히 필통의 자리를 떠억 점유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대목에서 당신은 망설이지 말고 과감히 필통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또 다른 쓰레기를 가득 채울 수 있으니... (자본주의 만세!)


공학적 견해의 판단으로 좋은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기묘한 논리에 편승하여, 사용자가 싫증이 날 때쯤 일부러 부품이 망가지도록 고도의 지능적인 수법으로 설계수명을 결정하라는 경영자 측의 주문에 저항을 못하는 이상한 기술자들도 없지 않거니와, 한번 구입한 자전거는 적어도 보증된 설계수명 20년까지는 무난히 고장 나지 않도록 제작을 해야 한다는 것이 턱도 없는 본인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를 거부하는 내가 진정 미쳤거나, 적어도 반듯한 B급 공학자는 확실하다는 반증이다.


사전적 의미로서 야합(野合)이란 '들에서 합치다'라는 야한(?) 의미를 내포한 직역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부부가 아닌 남녀가 눈이 맞아 서로 정을 통한다는 본래의 뜻에서 파생되어, 현대에 이르러 좋은 목적이 아님에도 서로의 이해관계로 어울린다는 조소가 섞인 뜻으로 어의가 변질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온전히 제정신을 지녔거나 일말의 양심을 지닌 공학자라면 시류에 야합하지 않는다.

설계수명의 도적질과 천민자본주의의 합리적 의심도 좋지만, 뜬금없이 '설계수명의 연장'이라는 더 어처구니 없는 야합은 슬그머니 용서할 수 있는 문제는 더욱 아닐 것이다. 애시당초 설계수명이란 연장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장이 정지해도 뇌가 살아있다면 얼마 동안이나 생존이 가능할까? 그 반대의 상황이라면 의료법에 근거한 연명조치로 하여금 당사자의 의지로 존엄사를 선택할 권리마저 박탈 당한다.


비정하지만, 올바른 정신과 양심을 지닌 공학 설계자라면 필요충분의 두개 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결함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과감히 사망선고를 내려야만 대중의 안녕을 보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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