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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Apr 01. 2022

비매품으로 살아 남기

자존심은 과연 자살심 일까?

  판매하지 않겠다는 뜻을 지닌 비매품의 본 뜻은 일반인에게는 팔지 아니하는 물품이며, 특정한 사람에게 무료로 배부하거나 견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만든 물품을 이른다. 그렇다고 하여 상품성이 없는 불량품 이거나 함량 미달의 반제품 더욱 아니다.

  다만, 거래의 객체가 되는 금전을 요구하지 아니하는 무상증여나 수량을 제한하여 한정된 공급량을 제공하는 말짱한 품목이다. 고객에게 정식으로 판매하는 이른바 '판매품'의 반대 개념이지만, 아무리 고가를 지불한다 해도 팔수 없는 물건이라는 수상한 의미로도 쓰인다. 쓰고 남은 여분을 칭하는 잉여품(剩餘品)과 더 이상 사용성이나 필요성이 결여된 불용품(不用品)은 제품의 한계 수명에 따른 비매품의 다른 변형이다.


  자태는 팔되, 향기는 절대로 팔지 않는다는 재미있는 반쪽의 비매품이 있는데, 이는 눈 속에서 꽃을 피운다는 매화를 칭한다. 한평생 추위에 떨어도 매화는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의 '매한불매향(梅寒不賣香)'은 퇴계 이황 선생의 좌우명으로도 유명하다.

  이른바 봄꽃의 대표 격인 벚꽃과 큰 차이점은 향기의 유무에 있다. 코를 쥐어박고 애써 킁킁 맡아야만 겨우 찾을까 말까 하는 정도로 벚꽃에는 향기가 거의 없지만, 매화에는 은은하고 아릿한 향기가 있다. 

  매화의 엷은 향기를 여기에서 감히 서술로 표현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많다. 언어적 표현의  한계성과 저마다 지니고 있는 향취의 기억에 관하여 각인된 느낌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생김새(자태)는 물론이고 속에 품고 있는 향기까지 그냥 덤으로 팔면 오죽 좋으련만, 굳이 향기만은 절대로 팔지 않겠노라고 50%를 당당하게 흥정하고 있는 교교한 심뽀가 뭔지 도통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근 300여 년 전에 울타리 컨셉으로 설립된 대학은, 세기를 몇 번이나 거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문과 지식의 전당이라는 장막을 무기로 막대한 기득권을 누려왔다. 하지만 세기를 거듭한 지금, 그동안 누려왔던 명예와 기득권은 점차 망가지고 있다. 시대가 흑막의 근세를 벗어나, 담벼락이 투명한 정보화로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명예가 찬연하던 스칼러쉽은 어지간히 돈을 지불하면 아무나 소유할 수 있었던 중세의 면죄부마냥 남발에 따른 가치 하락으로 학위공장에서 찍어낸 대량 생산품으로 의미가 퇴색하였고, 그간 독점 해오던 고급정보의 생산이나 제한된 정보의 배포 방식에 따른 그들 만의 인센티브는 붕괴된지 오래다. 폐쇄된 울타리는 더 이상 보호막이 될 수 없었.

  교육의 질은 시시때때로 변하기 마련이지만, 대학 커리큘럼이나 스칼러쉽의 코스웍 만큼은 찌질이 낙후되어 양적 유지만을 고집하고, 질적인 차윈의 발전은 철저히 배제되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수는 명예로운 학자일 망정, 학생은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강의를 청취한다.  인문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문을 하여 채집한 사실에 근거하자면, 교수가 학생에게 전달한 지식의 범위가 Google 검색 이상의 정보를 제공했는지를 질의했을 경우 야릇한 답변을 하였다. 요지는, 리포트(숙제)를 포설할 경우 디지털 정보를 차단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대학은 일반 사교육장이 아니기에 학생 스스로 학문을 탐구를 해야 하므로, 교수의 지도방법은 제도권 밖의 학원 강사와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크다.

  그러나 지적 탐구의 동기부여와 학점 부여의 권한 행사는 보편타당하고 또한 정의로워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피교육자에게 다음과 같은 언어도단의 겁박을 준다는 것은 법리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나는 여러분이 제출하는 보고서의 내용에 구글링 흔적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리포트를 조사해서 만약 구글링 흔적이 있다면, 학점을 0점 처리하도록 할 테니 주의하도록 하세요!'


  허튼 정보일 망정 쉽게 접근 가능한 정보검색의 소스까지 차단하여 베리어 게이트를 치겠노라는 갑질 갑질이 아닐 수 없다. 비매품인지 잉여품인지 불용품인지  정의에 대하여 다시 한번 숙고해 볼 내용이 아닌가 싶다.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전문가 바보에게 사사받은 학생의 편협 무쌍한 지식들은 불쌍하게도 팔자에 없는 바보짓을 강요당할 것이 뻔하다. 향기는 팔지 않겠노라는 매화처럼 당당하게 흥정하는 심뽀가 절실하고, 비매품이 아닌 판매품 쯤으로 변신해야 생존이 가능한 시기가 온것이다.

  250여 년 전 평양 기생 황진이를 그 당시 잘 나가던 양반들이 하게 대접했던 이유는, 향기는 팔되 적어도 자태는 팔지 아니한다는 기묘한 50%의 흥정에 있었다고 짐작한다. 이것은 금전이 만능이라는 천민자본주의와 달리 재화가 으뜸이 아니었던 조선의 지배계급이었던 양반사회의 알량했던 도덕과 그들만의 리그에서 통하는 일종의 도그마가 그 이유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도덕적 레시피의 속성을 지닌 당시의 도그마는 금 시대에도 절실하다. 금전이 만능의 권위를 지녔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아무리 고가를 지불한다 해도 팔수 없는 물건이라는 의미의 비매품은 어쩌면 요원한 사항이 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공연히 졌다는 기분이 다.

  모름지기 엔지니어(기술자)라면 직업윤리관은 기본 요소이고, 독특한 자존심의 향기를 지녀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가 혹시 미쳤을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도덕은 양심의 문제와 별개이고, 자존심은 자살심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온전히 비매품으로 생존이 불가하다면?  비매품 이라도 고려해야 한다.

  큰일이다! 당장 내일 정신과에 들러 정신감정부터 의뢰 해봐야 할 일이다. 다행히 초기 증세라면 어서 빨리 입원을 해야 한다. 내가 미치고 말았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가고 나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듯, 모든 자연은 그렇게 떠나며 보내며 산다. 하찮은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리하여 비워두라, 언제 다시 그대의 가슴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 채근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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