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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Jun 19. 2022

붕어빵 비린내에 관한 보고서

빵틀이 문제이지 적어도 빵은 죄가 없다.

   눈치가 빠르다는 사실은 정보력이 탁월하여 전개되는 상황에 능동 대처할 예지능력이 남달리 출중하다는 뜻이다. 반면에 다른 의미로는, 세상 참 험하게 살았다는 증거가 다. 눈칫밥의 서러움을 체험하지 않고도 절간에 꼭꼭 숨어있는 새우젓의 행방을 찾아내는 능력이란 천리안을 지닌 점쟁이가 아닌 다음에야 거의 불가능하다.

  눈칫밥은 그야말로 처절함의 상징 이건만, 이걸 얻어먹고 성장한 당사자의 정보 가공 능력은 도저히 남과 같을 수 없으므로, 험하게 세상을 경험하여 터득한 상황 파악 능력이 눈치라면 썩 과학적인 추론이다. 고로 눈치란 정보력의 순우리말 버전이기도 하며, 영미권에서 소개하Nunchi라는 뜻은 거창하게도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으로 소개되고 있다.

  텍스트를 해석하여 사상적으로 접수하는 감성의 영역도 따지고 보면 눈치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텍스트의 문맥에는 반드시 행간이 있고, 이 행간이 품고 있는 의미를 재해석할 능력이 있다면 조미료로 가미된 세상의 감언이설에 함부로 현혹되지 않는다. 아래의 텍스트를 해석해 보자.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이건 2,000 년대 초 건설사가 시공하는 아파트 광고 카피이다. 이 카피의 시니컬 패러디 버전은 다음과 같다.


 “당신의 닭장이 당신은 보통의 닭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과연 누가 이 닭장을 구매할 것인가? 문장의 구조를 지탱하 문맥의 분위기나 행간의 뉘앙스를 이해하고 있는 카피라이터라면, 저따위 기괴한 카피로 선량한 대중을 현혹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저런 광고를 하는 건설사 브랜드보다 한수 위인 너미안(?)이나 푸르지롱(?) 어쩌고 브랜드의 닭장에 살고 있는 식당 아줌마가 저따위 어설픈 광고 카피를 접하고, 욿다구나! 저곳으로 이사를 해야지!라고 마음먹고 모델하우스 앞에 줄을 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강남의 빨강 바지'가 아니라면, 저런 허접한 광고 카피에 현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득 수준 상위 1프로는 닭장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저따위 광고카피를 만든 카피라이터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본인의 판단으로는 광고 카피가 졸렬하고 저렴하다. 뭔지를 팔아먹으려는 꼬시킴성 마음을 먹었으면 적어도 문맥을 이해해야 하는 사람과 상품을 구입하는 구매자의 입장을 십분 고려해야 한다. 제 나름은 무식함과 신분이라는 쌉쌀하고 찝찝한 반어적 부추김의 컨셉을 앞세운 출중한 카피라고 판단을 하겠지만, 에헤... 그건 광고 카피라이터의 사정일 뿐, 구체적 획득 행위를 선택하는 소비자의 사정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저렴한 광고카피에 현혹 된 사람도 적지 않음이 현실이다.


  연구윤리가 이미 퇴색해서 의미마저 종적을 감춘 지금, 연구 결과의 집약이라 일컫는 논문의 문맥도 사정은 다를 바가 없다. 논문의 표절시비를 시원하게 가려주는 필터링 도구의 대명사인 소위 '카피킬러'라는 소프트웨어에 근본적인 문제점과 두드러진 허점이 있다.

  이 소프트웨어의 허점은, 의미가 동일한 문장을 같은 뜻을 가진 다른 단어로 슬쩍 바꾸고 간결하거나 혹은 다소 복잡하게 문맥을 변형시키면 멍청하게도 이를 표절로 판단하지 않는다. 문맥의 행간을 파악해내는 방법이 아니라 수억 개의 축적된 D-Base를 기반으로 판단하는, 그러니까 아직은 계속 진화 중인 알고리즘이라 살짝 어벙하고 함량 미달인 인공지능의 심각한 약점인 샘이다.

  요는 '카피킬러'라는 소프트웨어가 등장한 이후부터 발표되었거나 또는 작성된 논문의 문장과 문맥 수준은 예전에 비하여 형편없는 추락을 거듭하여 플롯이 조잡하기 이를 데가 없다는 얘기다. 하기사 논문은 창작된 문학작품이 아니므로 절제된 학술용어를 논리적으로 서술해야 하기에 수려한 문장이나 빈틈없는 문맥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객관적인 판단으로 이것은 결코 말이 안 된다.)

  문장의 조잡함이나 창피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형화로 구속된 천편일률적 문맥 따위는 신경 쓸 사안이 아니라 타인의 연구과정이나 조사 결과치를 포함한 아이디어를 차용함에 있어 표절의 흔적을 들키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아무튼, 프로그램의 허점을 이용하여 표절의 근거를 훼손하거나, 아예 남의 연구정보를 교묘히 세탁하는 행위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통하는 흔한 수법이다. 말하자면 이 수법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아니한 꽤나 가치 있는 고단위의 트리키에 속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고질적 행태로 작성 출간된 논문이나 학술 기고문이 문제가 되어 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게 되면 의당 표절로 명시되거니와 다만, 제삼자가 연구윤리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거나 참 재수 없이 매스컴에 추적을 당하여 사회적 거대 이슈로 등장하지 않는 이상 시비를 가르는 위원회는 결코 열리지 않는다. 결국은 그렇고 그런 앱스트랙과 컨클루션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산업쓰레기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응원과 함성 속에 매장되고 이른바 문헌으로서 존재가치를 부여받는다.

    Get me off Your Fucking Mailing List --> 희대의 충격적 논문!


  당연히 여기에는 최종심의 과정이 있고, 엉성한 텍스트의 문맥이 당위성의 시비를 가리는 도구로서 커튼콜로 잠시 등장하지만 연구윤리 차원에서 애매한 불명의 정황이 포착될 망정, 연구자의 소명에 별도로 이의제기가 없는 상황이라면 모든 사실은 흐지부지 되고 만다. 이것은 이 바닥의 고수들이 구사하고 있는 세련된 수법이자, 그보다 앞서 학계와 연구계의 기득권을 움켜쥐고 있는 고수들이 끼리끼리 묻어가는 그들의 무림에서 대적할만한 적수 없이 살아남는 기발한 생존의 기법이기도 하다.

   특권층의 지배논리로 무대의 판을 짠 역시 비겁한 경쟁구도 사회에서 제 스스로 지속 가능하다고 믿는 세습 논리는 더욱 만연하여, 개인이 아무리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집단 광기의 문법을 거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엄격한 연구윤리와 도덕적 틀을 요구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건만, 더러는 눈치도 없이 상식 수준을 벗어난 이해불가의 오류를 종종 범하여 평생 동안 씻을 수 없는 오명의 함정에 갇히기도 한다. 이건 정상적인 망가짐이 아니라 추접망가짐이 분명하다. 자유롭게 망가지되, 적어도 후사를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만 적당히 망가져야 한다. 과연 들키지 아니한 눈치도 실력인가?


  하기사, 노지에서 힘겹게 살아가노숙자가 소화불량이나 코로나(감기)에 걸려 죽었다는 뉴스는 들어 본 적도 없고, 더구나 오뉴월에 빌어먹다 지쳐 스스로 세상을 마감했다는 소식도 접한 적이 없으니, 험하게 터득한 눈치 만으로도 제 몫의 한 세상을 넉근히 살아낼 수 있다.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망정 외줄 타듯 험하게 살고 볼 일이다. 그래야만 야멸차고 잽싼 눈치를 터득할 수 있으니...


노숙자의 항변

"웃기지 마라! 조용히 빌어먹는 나를 뜬금없이 등장시켜 눈칫밥으로 연명한다는 개소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다만 집이 없어 노숙을 할망정 노동력마저 상실한 건 아니다.  다들 고상한 척 하지만, 원래 인간들은 전부 서로에게 빌붙어 빌어먹고 사는 거다. 왕은 왕국이 있다는 술수와 기만으로 다수를 속여왔지만, 나는 왕국의 실체를 느낀적도 본적도 만진 적도 없다. 그건 제도라는 칼의 힘에 불과하기도 하겠지만, 나처럼 지붕이 없는 노숙자가 제공하는 노동의 배려나 적선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선생이 없는 학교는 있을 수 있어도, 학생이 없는 선생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그 범위를 벗어나나와 다를 것이 없다. 지독한 붕어빵 비린내를 연히 끄집어내 서럽고 치사한 눈치를 정보력으로 오해하고 있는 당신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자면, 그 직업은 선생이라는 제목의 옷을 걸친 한낱 옷걸이에 불과하고 똑똑한 척 빌어먹는 고급 거지와 무엇이 다른가? 이런 비린 내음은... 끌끌..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논문을 피인용한 목초지와는 다르다. 빌어먹는다는 행위는 작든 크든 기업도 마찬가지이고, 제도권이라는 껍데기포장된 기관이나 집단도 대동소이하다. 적당한 아양과 겁박이라는 기로 강요된 적선을 요구하는 그들과 단위나 형태의 차이가 있을 뿐, 내가 빌어먹는 행위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이 양반아! 뭘 좀 알고 씨부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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