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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Oct 02. 2024

손은 들었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이의신청설 냈건만

 다음 날 나는 신청서를 보내기 전에 인사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했다.“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요. 이런 일은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또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인사팀장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얘기를 하면서 잠깐 스친 생각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만 둘까라는 생각도 살짝 올라왔고 더 이상 참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도 동시에 밀려 들었다. 하지만 이미 내 뱉은 말, 남루하지만 시도하는 걸로 했다.그동안은 내 개인 실적은 증명할 데이터가 없었지만 부서장은 다르다.  일 잘한다고 내 입으로 떠들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데 공신력 있는 평가결과가 있지 않은가?  연초에 수많은 평가지표가 내려오고 일 년 동안 부서원들과 부지런히 실적을 쌓았고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우수부서로 인정되었고 연말에 대대적인 시상이 이루어졌다. 근거는 어디에든 있었다. 더구나 성과금 평가에서 성과평가가 45%의 평가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데 반영조차 되지 않는다니 평가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이의신청서에 평가방식에 대한 부분도 제고가 필요하다고 썼다. 부서평가와 개인평가를 이원화 한다면 성과급제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원래의 성과급 취지는 일반 기업처럼 성과를 통해 보상을 지원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격려가 포함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수부서로 선정된 부서의 과장이 하위 등급이라는 얘기는 부서장은 형편없는데 부서원들이 훌륭해서 성과를 이끌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 부서원들은 훌륭하다. 하지만 그것은 함께 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동시에 나온 결과인 것이다.

요즘 주말에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2014년도에 제작된 드라마인대 원래 웹툰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직장생활, 엄밀히 말하면 무역회사의 애환을 그린 내용이었다. 아마 그때 우리 애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TV를 볼 여유가 없었는지 보지 못했고. 한참 지나서 만화책으로만 보았다. 그러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서 시청을 하게 되었는데 왜 그 당시에 화제가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특히 거기 나오는 오성식 과장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사람이지만 동료에 비해 승진이 늦다. 일은 많이 하는데 결정적인 성과에서는 밀리는 타입이랄까. 그 과장도 오과장 나도 오과장, 오씨 성을 가진 과장들은 일은 소처럼 하지만 성과는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운명으로 타고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김과장, 이과장, 박과장 수많은 성씨가 있는데 왜 하필 작가는 오과장으로 했을까? 엉뚱한 생각을 하며 드라마를 본다. 물론 일반 회사가 공무원 조직은 많은 차이가 느껴졌다. 공무원조직은 저런 위험 부담을 안고 하는 일은 드물다. 다만 업무 매뉴얼을 다루는 방식이나 보고체계의 준수, 소통의 방식 등등 사람과 관련된 부분은 거의 비슷하다. 드라마지만 배울 점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5화에서 그려지는 여성 직원들의 일과 가정의 불균형이 특별히 와닿았다. 90년대 애를 둘이나 낳았고 육아휴직은 감히 쓸 줄도 몰라 단 2개월의 출산휴가만 쉬다가 나오면서 애들의 얼굴조차 들여다 보지 못한 채 세월을 지나왔다. 그 과정에서 다른 남자 동료에 비해 많이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교육, 승진, 성과급 등 거의 모든 부분이 그랬다. 부러 찾아가 말을 비추기도 하고 은근슬쩍 불만을 내비쳤지만 결과는 늘 참고 견디라는 거였다. 매년 똑같았다.  며칠 후 결과가 나왔다. 변함은 없었다. 게다가 인사팀장 말대로 윗사람들로부터 불편한 말을 들었노라고 했다. 이미 예상한 거라 놀랍지도 않았지만 헛 웃음이 나왔다. 내 연봉은 끝내 B등급이었다.

며칠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아무런 상관없는 직원들에게 공연히 짜증 섞인 말투로 업무지시를 하고 작은 민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은연중에 나는 B급 상사니까 이거밖에 안된다며, 부서원들이 알 필요도 없는 정보를 간접적으로 흘렸다. 마치 당신들이 일을 못해서 부서장인 내가 B급으로 전락했다고 억지를 쓰고 있었다. 물론 며칠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너무 좀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까지 남의 평가에 신경을 쓰고 있었나 하는 반성과 생각보다 남들은 다른 사람과 성과평가에 관심이 없었다. 부서장이 B급이든 S급이든 그들은 한결 같이 나를 과장으로 대해줬다. 일찍 출근해서 앉아 있으면 혼자 슬그머니 자리로 돌아가던 직원들이 부러 찾아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나의 성과등급과 상관없이 그들의 마음은 나를 향해 조금씩 향하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경계를 모르고 날뛰는 나의 오만함을 바닥으로 내렸다. 늘 뒤늦게 깨닫게 되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스러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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