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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Oct 02. 2024

성과급제 공정한가

B급이라구요?

 “괜찮아, 괜찮아, 릴랙스, 릴랙스”


 설마 잘못 보았나? 노안이 와서 모니터를 보면 가끔씩 초점이 흐려질 때가 있다. 다시 한번 확인해 보자. 난시가 심한 왼쪽 눈을 몇 번 더 깜빡인 후 다시 쳐다보았다.  “이런 젠장” 무슨 말인들 못하랴.  렇게 하지 않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간절히 릴랙스를 찾았지만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갑자기 찾아온 갱년기 증상처럼 잠깐 사이 아주 뜨거운 열이 솟구쳐 올랐다. 그나마 옆에 아무도 없는 게 다행이었다.


이듬해 3월 성과연봉 책정 등급이 통보되었다. ‘B’였다. 한마디로 남들 8백만 원 받을 때 나는 3백만 원을 받게 된다는 얘기다. 돈도 돈이지만 완전 저성과자로 낙인이 찍혔으니 자존심이 뭉개졌다. 허둥대며 담당자 전화번호를 뒤지고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마치 내 전화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저편에서 여유로운 낮은음이 들렸다. 몇 마디 하지 않았지만 상대는 굉장히 긴장하고 있었다. 짧게 단답형의 대답만 하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미세하고 떨리고 힘이 없었다. 설명하는 내내 침을 꼴딱 삼키는 소리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유는 장황했지만 논리적이지 않았다.


 평가의 기준은 세 가지였다. 일 년에 두 번 실시하는 근무성적 평정 중 근무실적 부분 45퍼센트, 전년도 부서 업무평가 45퍼센트, 나머지 10퍼센트가 기관장 평가(시장, 부시장)로 이루어져 있다. 업무평가가 성과급 결정에 중요한 변수이기에 거의 모든 부서장급들이 평가항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조바심을 내며 한 해를 보냈었다. 마침 운이 따랐는지 연말 부서평가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은근히 나의 성과등급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 상태였다. 그런데 ‘B등급’이라니. 그것도 거의 바닥 순위, 여차하면 한 푼도 받지 못하는 ‘C등급’으로 전락할 뻔했다고도 한다.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럼 부서 업무평가는 뭐하러 하는 건가요? 호전적인 질문에 담당자는 대답을 못했다. 뭐가 문제인가요? 나는 집요하게 물었다. 평가표를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 판단할 수 없지만 성과급의 취지를 들먹이며 사장된 부서평가의 결과를 반복해서 들려줬다. 그는 이미 부서평가의 결과를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중언부언 알 수 없는 말들만 되풀이했다. 그는 한때 나와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었다. 항상 반듯하고 강직한 그가 궁한 답변을 찾느라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요한 내 질문에 답변이 궁했는지 다른 평가항목에서 점수를 못 받았다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업무평가 점수가 높았지만 다른 두 개의 점수, 근무평정에 산정된 실적 점수와 기관장 점수를 받지 못해서 하위권으로 떨어진 거라는 얘기다. 아니, 성과평가인데 왜 근무실적점은 낮은 것이며 기관장의 평가는 왜 못 받은 것인가?


 결국 부서평가는 시상으로 끝났고 부서장은 그와는 별개로 개인으로만 평가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부서 평가와 상관없이 근무경력이나 연령으로 보겠다는. 연봉제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답변이었다. 업무평가는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를 위해 외부 민간인이 섞여 있다. 그래서 결과를 마음대로 조정하기가 어렵다. 하나 근무평정이나 기관장은 평가는 순전한 내부 간부들 소관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업무평가를 뒤집을 수 있는 키를 가지고 있다. 평가대상 중 나는 유일한 여성이고 비교적 나이도 적었다. 이런 불길한 느낌은 경험에서 오는 익숙함이다. 당연히 ‘B등급’은 처음이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치가 떨렸다. 부서장이 되어도? 부서 성과를 보여줘도 나는 그저 B급인 거였다.     


다음날 나는 이의 신청서를 제출했다.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 그리고 점수별 편차 배분에 대한 불합리성, 혹여라도 여성 부서장에 대한 편견, 지난해 부서평가 결과 통보 공문까지 세 장을 꽉 채워 담당자 이메일로 보냈다. 곧이어 인사팀장의 전화가 왔다. 첫마디는 위로였지만 그다음 문장은 ‘뭐하러 그러세요?’였다. 성과등급 결정 후 이의신청을 하면 성과급 심사위원회를 통해 재심사를 한다. 심사과정에서 상위등급으로 바뀌면 예산을 고려하여 추가 지급을 하게 되어 있다. 지급 지침은 그렇게 되어 있다.  결과는 뻔 했지만 여태까지 이의신청을 받은 적 없다는 말에 혹시나 하는 기대심도 있었다.


 인사팀장은 아쉬운 결과지만 어쩌겠 냐고. 이미지를 생각해서 참고 견디는 것이 낫다는 말로 나를 위로했지만 실상은 노련한 회유였다. ‘항상 이러지는 않겠지요.’라고 했지만 좀 더 팩트를 체크한다면, ‘여태 그래 왔는데 뭘 새삼스럽게’ 였다.

 

오기가 생겼다. 지금까지는 그래 왔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흐르는 것은 안되는 일이다. 갑자기 토마 피케티(Thomas)의 문장이 떠올랐다. ‘인류의 진보는 결코 자연적 진화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과정과 특정한 사회적 투쟁의 결과물이다.’ 누군가가 싸우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는 저 문구가 시대를 바꾸고 사람을 바꿔왔다. 내가 뭐 이 문제를 가지고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리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액션이 필요했다. 전화를 끊고 바로 성과연봉에 대한 지침을 찾았다. 이의신청이 가능했다. 지침 뒷면에 첨부된 신청서 양식을  컴퓨터 바탕 화면에 깔아놓고 문서를 열어 작성하기 시작했다. 소속, 이름, 그동안  부서운영을 통해 성과를 이뤄왔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첨부했다.  사실 이의신청서를 작성하면서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했다. 괜히 제출했다가 더 눈 밖에 나면 어떻하나?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내 입으로 내가 한 일을 떠벌리는게 맞는 것인가?  두어시간 후 서류 작성을 끝냈다. 그리고  문서 저장을 하고 보내지는 않았다.


기회가 잘 닿지 않았다. 좋은 상급자를 만났어도 누구 나 가고 싶어하는 부서에 있었어도 늘 구석지고 그늘진 자리가 내 것이었다. 중요한 평가에 한 자리수로 있었던 때가 거의 없었다. 늘 뒤로 빠져있다 앞에 누군가가 자격을 잃어 빈 자리가 생겼을 때 어부지리로 내 차지가 되곤 했다.  그것 이나마 억수로 좋은 운이기는 하다. 급한 마음에 버스표를 샀는데 내 자리는 지만 이미 매진 상태에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누군가 버스에서 내리게 되고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을 미처 피하지 못한 기사가 마지못해 올라 타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내 차지가 되는 경우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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