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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Oct 03. 2021

임신 14주차 이야기 -
익숙함이란 참

아빠의 출산일기

임신 14주차 되었다. 아내는 이제 입덧은 거의 하지 않는다. 물론 강한 향은 아직 싫어한다. 지금도 자동차 방향제 냄새나 돼지고기 냄새는 학을 뗀다. 임신 전에 그렇게 잘 먹던 삼겹살은 이제 쳐다도 보기 싫단다. TV에서 지글지글 익고 있는 삼겹살을 보면 채널을 바로 돌려버린다. 원래 채널을 돌리다 홈쇼핑이 나오면 습관적으로 멈추게 되는 버릇이 있는데, 돼지고기 관련 상품은 예외가 되어 버렸다. 나는 소고기 보다 돼지고기를 훨씬 좋아해서 지금은 입맛만 다시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이런 부분들을 제외하고 나면 임신 전과 같은 상태와 비슷해졌다. 퇴근이 아내보다 늦어도 저녁식사는 그동안 내가 준비했는데, 이번 주는 아내가 모두 준비해줬다. 아내 임신과 맞물려서 내가 새로운 곳으로 발령을 난 상태라 회사 일을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집안일이 조금 힘들게 느껴졌었다. 회사 일도 아예 처음 하는 업무라 8시 30분에 자리에 앉아서 정신없이 6시까지 일을 하면 진이 다 빠진다. 그런데 아내가 집안일을 거들어주니 한결 낫다.


아내가 이제 임신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익숙해진다. 아내가 임신을 한 사실이 점점 편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편안함이 마냥 좋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바쁘다는 이유로 신경을 덜 써줄까 걱정이 조금 된다. 이번 주는 특히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집에 오면 녹초가 됐다. 그래서 아내가 차려준 밥을 정신없이 먹고, 샤워하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내도 일 하고 나서 장거리 운전 후에 저녁까지 준비해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파김치가 돼서 아내의 노고를 달래주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이런 것들에도 임산부에게는 서운함이 될 수 있다. 차려준 저녁이 연신 맛있냐며 물어보는 아내에게 좀 더 격한 반응이 못해준 게 마음에 걸린다.


아기에게도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아내는 아빠가 아기에게 계속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엄마의 목소리는 계속 듣기 때문에 아빠의 목소리를 인식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태담 태교"라고 한다. 보통 동화책을 사서 읽어주는 태교이다. 14주 차에 태담태교는 아직 이른 단계이긴 하지만, 아내는 수시로 아기와 대화를 시도한다. 아내가 계속해서 내게 태담을 요청한다는 것은 내가 태담을 잊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조금 더 신경을 쓰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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