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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Apr 22. 2024

백만 원짜리 미역국

남편이 손수 끊인 미역국


남편은 5년 전부터 내 생일이 되면

백만 원을 봉투에 넣어 준다.

일 년에 한 번 받는 돈이다.

주면서

'생일 축하해.'

말 한마디 없다.

무슨 의무감에서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강아지 밥 던져주듯 나에게 던져주며

자기의 할 일은 다했다는 느낌이

나의 신경을 거슬렸다.

지인들도 서프라이즈라면서

만든 음식을 가지고 와

나에게 생일상을

거하게 차려주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던져준 백만 원이

오늘은 휴지처럼 보였다.

남편에게 나 이돈 가지고 싶지 않으니

"미역국 끓여줘."

하면서 남편에게 돈을 반납했다.

남편은 후회할 텐데 하더니

미역을 내놓으란다.

뜻밖이었다.

물 한잔도 제대로 떠먹지 않는 사람이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미역국을 끓일 수 있는 재료를

챙겨주고 부엌에서 나왔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남편을 보면서

그래 날마다 밥과 국과 반찬을 해주니

쉬운지 알았지 어디 한번 해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골탕을 좀 먹어 봐라 하는

속셈으로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 미역국 다 끊였으니

나와서 먹으란다.

미역국을 떠서 먹어보니

맹물에다 미역과 파를 몽땅 넣어

끊인 탓에

미역보다 파맛이 훨씬 강했고

소금은 한 수저 넣었다고 했으나

짜서 먹을 수가 없었다.

아니 국간장을 내어 놓았는데

소금을  이리도 많이 넣어 짤까?

냉장고를 다 뒤져서 파란 파는

 쓸어 넣었나 보다.

ㅠㅠ

나는 남편이 볼세라

남편이 끓인 미역국을 조금 떠서

재빨리 사골 국물과

소고기 다시다를 넣고 끓이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그리고는 남편은

남편이 끓인 미역국을 떠주었다.

내가 군소리 안 하고 먹는 모습에

"짜고 맛도 없는데 맛있게 먹네."

"당신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끓인 미역국인데

맛있게 먹어야지."

나의 말에 남편은

나는 도저히 못 먹겠다.

돈 버는 게 쉽지 음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며

미역국을 내 앞으로 밀쳐 놓았다.

최선을 다한 남편의 모습이 안 돼 보여서

조금 전에 내가 먹었던 미역국에 넣은 것처럼

소고기 다시다와 사골 국물을 넣고

살짝 끓여 주었다.

남편은

" 와! 요술 손이네.

어떻게 했는데 이렇게 맛있냐면서

한 대접을 뚝딱 비웠다.

밖에서 들어온 딸에게 까지

아빠가 미역국 끓였다고 자랑을 했다.

"백만 원짜리 미역국 먹어볼래."

남편의 말에

영문도 모르는 딸아이는

신기한 듯 아빠를 쳐다보며

"이제 김치만 담그면 되겠네."

"그럼 그럼."

모처럼 식탁의 온도는 봄으로

치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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