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를 꿈꾸는 스페인 친구들

by 이수현


카를로스(Calros)는 취미로 연극배우를 하던 23살 친구로 알리칸테에서 기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비예나(Villena)라는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알리칸테 대학교는 카를로스처럼 대부분의 학생들이 알리칸테 중심지에 살지 않고 근교에서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통학을 했다. 어느 날 주말 스페인 친구들도 잘 오지 않는 작은 동네지만 괜찮다면 주말에 한번 놀러 오라고 초대를 해주었다. 관광안내서나 블로그에 나오지 않는 스페인 작은 소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이 인다. 카를로스는 비예나가 너무 작은 역이어서 지나치기 쉬우니 몇 번째 역에서 내리면 된다고 오기 전까지 몇 번이고 내게 당부를 했다. 렌페를 타고 창밖을 보니 그동안 보던 알리칸테 풍경과 많이 다르다. 넓고 황량한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한국에서는 고개만 돌리면 산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사방이 평지이다. 고속철이 아닌 완행열차라 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표정도 샅샅이 보인다. 책에서는 보지 못한 스페인 사람의 생활상을 보는 것 같아 혼자 타고 가는 열차가 심심하지 않았다. 가르쳐준 역에서 내리니 역사밖에 카를로스가 서있다. 곧바로 그 지역 유일의 관광지라는 성곽 하나로 나를 데려간다. 성곽은 잔해만 남아있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다지 흥미로울 것은 없었다. 널려있는 돌무더기와 관리하지 않아 이끼 낀 돌벽들 그리고 시간마다 종을 울리는 종탑 주위로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버려진 집들이 널려 있었다. 관광지의 깔끔하게 관리된 성곽과 다르다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카를로스의 고향이었고 나는 그곳에 방문한 최초의 동양인일지도 몰랐다. 그는 열심히 신이 나서 성곽의 유래와 도시에 대해 설명했다. 미안하지만 성곽과 도시의 유래에 대해서는 지금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차라리 근처를 방황하던 검은 고양이가 더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와 나눴던 진솔한 이야기들은 성곽의 역사와 도시의 유래보다 더욱 흥미로웠고 그 대화 때문에라도 이 도시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카를로스는 일본어를 전공하고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졸업반 학생이었다. 일본 아이돌을 보고 흥미가 생겨 일본어를 공부했고 최근에는 한류 열풍 덕에 한국 아이돌과 한국어를 공부 중이라고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한국에서 그 나이 또래 친구들에게 할법한 질문을 했다.

“ 카를로스, 졸업하고 나면 무엇을 하고 싶어?.”

그의 대답이 의외였다.

“영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어”



일본이나 동양문화를 좋아하는 그가 갑작스레 “영국’을 이야기하니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는 스페인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일자리가 많지 않고 월급도 적은 편이라 시급이 센 영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2008년에 스페인은 경제위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떠올랐다. 내가 머물던 그 해(2016년) 스페인의 실업률은 19.3%였다. 3년 전인 2013년에는 무려 26.1%에 달했다. 취업에 대한 압박이 느껴질 만했다. 그 해 스페인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무려 99.2%였다. 그동안은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일자리를 구할 필요도 없었고 경제 관련 뉴스를 보거나 들은 적도 없었으며 생산 활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곧 한국으로 돌아갈 학생이자 한국에 직장이 있는 직장인이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스페인에 대한 정보 역시 대부분 긍정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었다. 입장을 바꿔 내가 선생님이어도 스페인어와 문화에 대해 배우러 온 학생에게 자국의 좋지 않은 경제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카를로스는 현재의 스페인에 살고 있는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일본에 가서 좀 더 공부를 하고 싶긴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스페인에 돌아와서 일본 관련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영국에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돈을 좀 모은 다음 일본에 가서 취업을 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했다. 그 나이 또래에 있을 법한 고민을 솔직히 이야기하니 인생의 선배로서 진지하게 조언하게 된다.



“ 하지만 영국은 방세와 생활비가 비싸서 버는 만큼 많이 쓰게 될 거야.”


“나도 알아, 그래서 보통 스페인 사람들은 이곳에 살면서 런던으로 출퇴근을 많이 해. 비행기도 저렴하고 비행 편이 많아서 알리칸테나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출퇴근이 가능해. 런던 사람들도 요즈음 스페인에 집을 사고 비행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아. 런던 집세보다 여기 집값이 훨씬 싸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거든.”


“ 일본으로 가는 것이 최종 목표라면 차라리 일본의 대학 장학금 같은 것을 알아보는 것이 어때?”


“그것도 알아보고는 있어. 하지만 장학금이 나오더라도 일본까지 가는 비행기 경비나 가서 생활할 경비도 필요하잖아. 일본 물가는 스페인에 비해 비싸서 장학금을 받더라도 돈을 조금 모은 후에 갈 수 있어.”


“한국으로 오는 것은 어때? 한국에도 교환학생이나 이런 제도도 잘 되어 있고 스페인어 강사를 해도 생활은 될 것 같은데? 한국으로 온다면 내가 알아보는 데 조금 도움을 줄 수도 있는데.”


“한국도 생각하고 있어. 요즈음에는 한국으로 가는 것이 더 기회가 많은 것 같기도 해. 사람들도 친절하고. 한국으로 가려면 지금보다는 한국어를 더 공부해야 할 거야. 스페인 경제가 좋아질지도 모르겠어. 정부에서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쉽게 나아질 것 같지 않아.”



그는 스페인의 경제상황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몇 년 전 우리나라 경제상황에 대해 ‘헬조선’이라 칭하던 청년들이 떠올랐다.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그 나잇대 청년들에게 취업에 대한 부담은 비슷했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의 영광이 사라진 채 폐허가 된 성곽을 걸으며 스페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레오(Leo)는 역시 모임에서 만난 친구다. 아르헨티나에서 이민을 왔다는 레오는 한국어 공부에 아주 열심히 였고 우리는 매주 학교에서 만나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주었다. 레오가 노트에 빼곡하게 한국어 문장을 적어오면 내가 틀린 부분을 봐주고 첨삭을 해줬다. 내 스페인어 쓰기 과제를 레오가 고쳐주고 조금 더 자연스러운 표현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때 레오가 다 고쳐준 내 글쓰기 과제가 B+을 받은 것은 아직도 의문이긴 하다. (레오가 내 과제를 채점하다가 왜 이것이 정답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한 문제도 몇 개 있었다. 스페인어는 정말 미스터리한 언어이다. )


레오 역시 한국에 와서 취업을 하고 싶어 했는데 원어민 교사를 생각하고 있다며 취업하고 싶은 스페인 학원과 거주할 집까지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상태였다. 하루는 내게 자신이 묵고 싶은 집이라며 건대입구 근처의 반지하 원룸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반지하인 데다 위치도 너무 멀다고 다른 집을 알아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은 집값이 너무 비싸다며 자신의 처지로는 반지하밖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일단 비행기 표랑 한 달 치 방값만 모이면 떠날 것이라고 했던 레오는 일 년이 넘게 돈을 모아야 했다. 레오의 가족은 희망을 가지고 스페인으로 이민을 왔지만 정작 그곳에서 자란 레오는 또 다른 나라에서 희망을 찾고 싶어 했다.



스페인에 꽤 오랫동안 살면서도 이곳을 나는 여전히 여행지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도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나라에 생활하면서 느꼈던 불편함 등도 그저 여행자로서 동경이나 환상으로만 바라본 시선에서 느꼈던 부분들이었다. 이방인이어서 객관적으로 이 나라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표피의 일부분들만 살펴본 채 스페인은 이렇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주위 친구들도 내가 스페인이라는 나라에서 살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바닷가에서 여유를 부리며 ‘올라’를 외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떠올렸고 그래서 부럽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곳에도 취업으로 고민하고 연애로 눈물짓는 청춘들과 회사 재계약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나에게 여행지인 이곳이 이들에겐 치열한 생활의 현장이었고 내게 생활의 현장이던 한국이 이들에겐 꿈의 여행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나는 그곳에 가서야 깨달았다.



나를 비롯한 한국 사람들은 “유럽”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 “유럽’은 “선진국”이라는 동경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와서 보면 한국에 비해 불편한 부분도 많았고 불합리한 점도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스페인에 대해 동경을 갖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스페인 사람들도 한국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부분도 많았다. 실제로 GDP는 한국이 스페인을 앞선 지 오래다 내가 그곳에 있던 2016년 이후로 국가별 명목 GDP 순위에서 한국은 항상 스페인보다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에게 한국은 분단국가에 김정은이 핵실험을 하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 이에 비해 한국에 대해 너무 좋은 감정만을 갖고 있던 레오는 한국에 가면 자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사람은 친절하고 예쁘고 한국은 문화도 다양하고 환상적인 곳이라는 그에게 한국도 단점이 많고 좋지 않은 사람도 많으며 영어 원어민 강사가 아니면 직장을 잡기 쉽지는 않을 거라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레오가 스페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또 다른 희망을 꿈꾸는 것처럼 나 역시 한국에서 채워지지 않던 갈증들은 어느 곳에서도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진리를 나는 스페인에 와서야 깨달았다. 무엇을 하기에 내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는 깨우치지 못한 것이 많았다.



내가 스페인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과 추억들도 내가 이방인으로서 갖고 있는 일부 이미지일 수도 있다. 나는 그곳에 고작 8개월을 살았을 뿐이고 단편의 조각들만 맛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 단편들이 스페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내가 보았던 그리고 느꼈던 그 조각들은 따뜻했고 여유로웠으며 시끌벅적한 즐거움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친절하고 정이 있으며 환상적인 것처럼 말이다. 올리브와 오렌지를 키우는 햇볕과 바다가 있는 스페인도 매력적이었지만 나처럼 현실적인 고민들로 앞날을 걱정하는 친구들이 있는 스페인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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