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통령

스페인에서 겪은 대통령 탄핵사건

by 이수현


나는 2016년 6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딱 8개월을 스페인 알리칸테에서 살았다. 그 당시 한국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건으로 떠들썩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시민들의 광화문 촛불 혁명이나 탄핵 시위는 눈으로 보지 못했고 참여하지도 못했다. 그 당시 한국에 있던 가족과 친구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들을 전해주며 역사의 한순간에 있는 소감을 내게 전하느라 바빴다. 이 사건은 해외에 있는 내게도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기도 했다.




한국의 이미지는 대개 해외에서 ‘북한’과 ‘김정은’ 그리고 ‘분단국가’로 대변된다. 한국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을뿐더러 접하는 소식이라고는 뉴스에서 북한 김정은이 핵실험을 했다는 내용뿐이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한류가 지금과 같이 열풍인 시기도 아니어서 보통 스페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국은 그런 이미지였다. 대부분 한국이라는 나라를 거의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연일 스페인 현지 뉴스에서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 나오고 대통령 탄핵에 관해 헤드라인이 뜬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내막을 모르니 한국인인 나에게 자세한 상황을 설명해달란다. 이때처럼 스페인어 실력이 부족한 게 답답한 적이 없었다. 일반 생활 대화도 겨우 하는 내가 한국어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이야기하려니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게다가 외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정말 제대로 설명해주고 싶었다. 그냥 내가 넘어가면 ‘김정은’의 ‘북한’과 우리나라가 비슷한 이미지를 갖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더 안타깝게 만들었닼 나는 평소에 나라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사는 사람응 아니다. 그냥 남들이 가진 정도의 애국심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해외에 있자니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같은 반 일본인 친구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가깝고도 먼 나라란 수식어에 맞게 일본은 우리나라 사정을 그래도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는 많이 알지만 다른 어떤 나라보다 모르는 바로 그런 나라였다. 한국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 촛불을 들었으며 한국은 어떤 역사를 가진 나라인지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어학원 선생님 크리스티나가 이번 달 개인 발표의 주제는 마음대로 정하라고 했다.

레벨이 중급 정도로 올라간 후로 수업에 개인발표 시간이 있었는데 주로 각 나라의 경제, 문화 등을 소개하는 특정 주제를 정해주고 발표를 하게 했었다. 발표시간은 10분 남짓이고 선생님의 수업이 끝난 후 매일 돌아가며 한 명씩 발표를 하고 그걸 채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달 발표의 주제로 나는 대통령 탄핵 사건을 소개하기로 했다.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짧은 시간 내에 임팩트 있는 사건을 간략하게 소개해야 했고 무엇보다 정치 관련 이슈라 단어가 어려웠다. 하나하나 사전을 찾아서 발표문을 겨우 작성해도 일상에서 쓰는 단어가 아니라 쉽사리 외워지지도 않고 입에 붙지도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발표 준비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구글에서 기사를 검색하고 사진도 검색했다. 내가 먼저 이 사건에 대해 이해를 해야 했기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를 정독했다. 정말 많은 사람이 거리에 촛불을 들고 모여 있었다.

광화문은 내 직장 근처였다. 매일 다니던 길에 유모차를 끌고 촛불을 든 사람들이 서있는 사진을 보니 갑자기 한국이 낯설어졌다. 어떤 분위기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몇 번을 발표 리허설을 했는지 모른다.




발표 날 당일, 주제가 한국의 대통령과 탄핵이라고 하니 모두들 관심을 갖는다. 이미 해외 뉴스에 여러 차례 소개가 되어 대부분의 학생들이 들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통 발표 주제로 자기 나라의 음식, 관광지, 패션 등을 소개하는데 대통령과 정치적 상황이라니 관심을 가질 만하다.


진보나 보수 어떤 입장에도 치우치지 않고 설명하고 싶었기에 더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정치색을 드러낼 만큼 내 스페인어 실력이 뒷받침해주지도 않았고 한국을 대표하는 발표란 생각에 최대한 사실만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도 쉽지 않았다.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는 시선과 탄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정말 다르기 때문에 어떤 자료를 기반으로 할지 어려웠다. 결국 영문판 위키백과에 나온 소개를 참조하기로 했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소개대로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선거로 뽑힌 한국의 첫 번째 여성 대통령으로 보수 성향의 대통령이며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후 1963년부터 1979년까지 집정한 박정희 대통령의 첫째 딸이라 소개했다. 최태민의 딸인 최순실의 비선 실세와 국정농단 이슈로 한국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는데 최순실이 대통령의 일정, 연설, 인사조치에 대한 정기적인 보고를 받았으며 북한과의 비밀회담에 대한 기밀 정보도 접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박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생각한 국민들이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들고 탄핵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실제 발표문 표지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어도 내 짧은 스페인어 실력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에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평소의 발표와 다르게 질문이 많은 편이다. 준비해온 발표문도 힘들었는데 질문을 대답하려니 벅차다. 다른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발표가 끝나자 뒤에서 줄곧 흥미롭게 듣던 선생님 크리스티나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왜 한국에서는 독재자의 딸이 다시 선거로 대통령이 되었는지 한국 사람들은 그녀를 왜 뽑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오랜 시간 집권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루어냈다. 한국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치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답을 들은 선생님은 스페인도 비슷한 역사가 있다며 흥미로워했다. 스페인도 프랑코를 아직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한국의 상황이 이해가 간다고 했다. 그 이후로 한참을 선생님은 프랑코와 스페인 역사에 대해 설명해줬다.


1892년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에서 탄생한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1936년 군부세력이 스페인 제2공화국에 반대해서 벌인 내전에서 승리 해 자신이 원하는 법률과 법령을 공포할 수 있는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그 후 40년 동안 스페인은 프랑코 정권에서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민족주의와 권위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들을 펼친다. 정치적 파벌들을 정리하고 지역마다 다른 스페인 언어와 문화를 통일시키고 하나의 스페인을 추구했다. 지금의 하나의 스페인은 바로 군부독재 시절에 만들어졌다.

프랑코가 군부독재를 펼쳤지만 그 시절이 좋았다고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가 어쩐지 이해가 된다. 선생님 설명의 절반 정도만 알아들었지만 세계사 수업시간에 들었던 내용보다 훨씬 흥미롭다.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비교해서 들으니 스페인 역사가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비행기로 12시간이 걸리는 전혀 다른 문화의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일본보다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알게 된 스페인 역사 수업에 흥미를 느껴 바로 다음 달부터 ‘스페인 문화와 역사’라는 수업을 추가로 신청하였다.



문화와 역사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은 이네스(Ignes)였다. 차분하고 자상하게 언제나 모든 학생들의 말을 들어주던 이네스는 특유의 조용한 목소리로 스페인의 문화와 역사를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스페인 문화의 발전, 플라멩코의 유래, 스페인 화가들에 대해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수업 중 스페인 화가 중 빠질 수 없는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스페인 내전을 그리고 있는 이 그림에 대한 소개와 함께 프랑코와 스페인 내전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주제는 흥미로웠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6개월 남짓 배운 스페인어로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내전으로 인해 스페인 땅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시민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지난 시간 프랑코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던 선생님 크리스티나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돌아온 지 4년 정도 지난 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를 보게 되었다. 스페인 내전 직후 독재정권 시대의 소녀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환상동화로 그려낸 이 영화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 영화가 끝나고도 그 여운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한 줄 문장으로 그리고 하나의 그림으로 내가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졌다. 겪어보지 않은 다른 나라의 내전을 가슴 아파 할 수는 있어도 그 역사를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내가 게르니카를 보며 전쟁의 참혹상을 느낄 수는 있지만 스페인 내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6.25 전쟁과 유신정권 시절을 아무리 잘 설명한다 해도 다른 나라 친구들이 마음 깊이 공감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또 그 시절을 겪어보지 않은 내가 그 시절을 정확히 설명할 수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지난 발표에서 모두를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실망감에서 조금 벗어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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