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가을 하면 나는 제일 먼저 플라멩코가 떠오른다.
가을에 간 그라나다에서 처음 플라멩코를 봤기 때문이고 처음 본 무희의 안무와 노래가 어딘가 모르게 가을의 쓸쓸함의 정서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이 서린 듯하면서도 비장해 보이는 무희의 표정에서 가을이 보였다. 그래서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한번 플라멩코를 보러 세비야에 갔다.
10월에야 그라나다로 여행을 떠났던 것은 여름의 40도에 육박하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스페인 관광엽서에서 자주 보이는 세비야 대성당이나 플라멩코 모두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유래했기에 여행자라면 한 번은 꼭 들르는 지역이지만 40도를 넘는 여름 더위가 꺾이길 기다리느라 그 지역 여행을 좀 미뤄 뒀었다.
플라멩코(스페인어: flamenco)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전통적인 민요와 향토 무용, 그리고 기타 반주 세 가지가 일체가 되어 형성하는 민족예술로서, 보통 '정열의 나라 스페인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이 지방의 개성적인 민족 감정과 기백이 풍부하고 힘차게 표현된 민족예술이다.
플라멩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플라멩코는 춤(Baile)과 노래(Cante)와 기타(Guitarra)로 구성된 민속 예술이다. 주로 집시들과 가난한 하층민들이 즐기던 음악이었는데 지금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예술이 되었다. 흔히들 플라멩코 하면 빨간색 머메이드 드레스에 머리에 꽃을 단 스페인 여자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나 역시 검은 머리에 빨간 드레스를 입은 무희의 복장과 활의 현처럼 얼굴 주위로 들어 올린 손동작이 내가 떠올린 플라멩코의 이미지의 전부였다. 특별히 좋아하던 장르는 아니었지만 스페인 전통 무용을 한 번쯤은 보고 싶다는 마음에 플라멩코 공연이 펼쳐진다는 식당을 예약했다.
식당은 무대와 식사 공간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입구 좌측에 검은색 단 위가 무대였고 무대 바로 옆에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공연을 보는 구조였다. 공연 중간에 까마레로(Camarero, 웨이터)들이 돌아다니며 음식을 서빙하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무대 가운데 앞좌석에 앉게 돼 공연팀 하나하나의 표정까지 세세히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되자 무대 오른쪽 네 개의 의자에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차려입은 네 명의 악사가 앉아서 연주를 시작했다. 여성 무희의 의상에 대비되는 단조로운 의상이었다. 무대와 의자 모두 검은색이라 악사들은 흡사 무대의 일부 같았다.
악사들에 뒤이어 등장한 무희는 내가 인터넷 사진 속에서 보던 플라멩코 무용수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의상은 생각보다 빨갛지 않았고 나이도 더 지긋했다. 빨간 드레스가 아닌 검은 드레스에 보라색 숄을 두른 그녀의 모습에 약간의 실망감이 밀려왔다. 식당에서 하는 공연이라 전문 공연은 아닌가 보다 하고 있는데 전주가 나오자마자 나는 그 공연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공연은 스페인에서 본 플라멩코 공연 중 최고가 되었다. (물론 그 이후로 세비야 플라멩코 박물관에서 본 플라멩코 공연이 내가 실제로 본 공연의 다였지만 어떤 공연을 봤더라도 내 생각이 변함없을 것이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용수는 춤을 추는 내내 한 번도 미소를 짓지 않았다. 오히려 결연한 표정으로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춤은 생각보다 격렬했고 몸짓 하나하나와 자세에 힘을 줘 온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플라멩코의 역사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했고 그 무용수가 얼마나 오랜 기간 춤을 춰왔는지 알지 못했지만 음악에 집중해 음악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몸짓과 춤에서 한국 춤에서만 느낄 수 있다는 '한'이 뿜어져 나왔다. 한국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무용수가 표현하는 삶의 고난과 힘듦이 내게도 밀려들었고 테이블에 서빙된 음식은 이미 보이지 않은 지 오래였다.
공연 중간에 슬쩍 본 창밖의 가을밤 바람이 쓸쓸함을 더 하게 했다. 그날 밤은 비가 내리는 밤이었고 플라멩코의 쓸쓸함이 가을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결실의 가을이 아닌 쓸쓸한 가을이었다. 뜨거운 한여름은 지나고 해도 지고 삶의 고난에 지쳤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말리고 밤의 빗속에서 삶의 힘겨움을 떨쳐내려는 집시 여인이 하나 보였다.
처음 무대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춤을 추는 여자 무용수뿐이었다. 연주는 모두 그녀를 향해 있었고 그녀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조명을 만끽하며 춤을 추었다. 하지만 첫 번째 공연이 끝나고 박수로 장단을 맞추던 남성이 갑자기 일어나 여성 무용수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두 무용수는 발로 박자를 맞추며 한 몸이 된 듯했다 멀어지며 그렇게 춤을 췄다.
가끔 서로 미소를 짓기도 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하면서 춤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느낌이 전해졌다. 저렇게 춤에 몰두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예체능과 거리가 먼 나는 예술을 하며 무아지경에 이른 그 모습이 멋지기도 하면서 부럽기도 했다. 그렇게 매력에 빠져들 때쯤 합무는 끝나고 남성 무용수의 독무대가 이어졌다. 화려한 의상도 없이 검은색 의상만 입고 추는 춤이었지만 큰 키 때문인지 동작이 눈에 확 들어왔다. 동작이 크고 절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더 고독해 보였다. 하지만 춤에 몰입해있다는 점은 두 무용수 모두 똑같았다. 그의 춤에서도 가을이 느껴졌다. 여자의 춤이 처연한 가을이라면 남자의 춤은 고독한 가을이었다.
감상에 젖어 있으려니 이번에는 악사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춤이 없는 플라멩코는 처음이다. 생각해보니 사진이나 방송의 단편적인 영상을 제외하면 플라멩코 공연을 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플라멩코는 구성이 풍부한 종합예술이었다.
검은 무대처럼 느껴지던 악사들이 이번엔 조명을 받고 연주와 노래를 시작하자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알 수 없는 노랫말로 구슬피 부르는 노래 역시 가을의 쓸쓸함을 담고 있었다. 가사의 뜻은 알 수 없었지만 독특한 억양의 그 노래에도 삶의 고단함이 담겨있었다.
한 시간 남짓한 공연을 보며 난 플라멩코에 홀딱 빠지고 말았다. 돌아와 플라멩코를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강습을 찾아보기도 했다. 플라멩코가 내게는 지켜야할 전통 스페인 전통유산이라기 보다는 현재에도 살아있는 매력적인 예술이었다.
현지 친구들에게 물으니 플라멩코 가사는 현지인들도 알아들을 수 없다고 했다. 플라멩코를 보거나 배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이라고 나의 플라멩코에 대한 관심을 놀라워했다. 우리나라 전통음악 역시 마찬가지란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신청했던 전화 스페인어 선생님은 한국에서 플라멩코 강연을 한다고 했다. 플라멩코로 유명한 카디즈(Cádiz) 출신이라던 그녀는 내게 그 지역 출신의 유명 플라멩코 댄서 Sara Baras(사라 바라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를 추천해주었다. 그녀는 플라멩코는 단순히 전통예술이 아니라 현재에도 사랑받는 예술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사라 바라스의 춤은 내가 그라나다에서 봤던 무용수와는 다르게 활기있고 젊은 춤이었다. 세비야 플라멩코 박물관에서 보았던 무용수의 춤은 또 둘과는 다른 흥겹고 유쾌한 춤이었다. 플라멩코는 무용수와 지역별로 여러가지 종류의 음악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후로 가끔 스페인이 그리울 때면 유튜브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찾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한 무용수의 공연을 찾아봐도 그때 그 식당에서 봤던 가을밤의 플라멩코 공연의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그날 밤의 분위기, 열정, 음악과 표정은 직접 봐야 알 수 있다. 가을이 오면 나는 그날 밤 그 공연이 그리워진다. 플라멩코를 통해 느꼈던 삶의 처절함과 쓸쓸함이 떠오른다.
기회가 된다면 가을의 플라멩코를 경험해보길 바란다. 가을의 스페인과 플라멩코 모두 분명 마음에 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