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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y 04. 2022

이용자에게 시를 선물 받은 날

대출대에 있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게임의 NPC가 된 것처럼 그 자리에 있으면 어느 날은 용사가 어떤 날은 마법사나 기사가 사서를 만나고 떠나고 나는 정해진 대사를(주로 "대출되셨어요"나 "언제 까지세요" 혹은 "어디에 있어요"라는 간단한 멘트)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이용자들은 간단한 인사만 건네고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인상 깊은 사람을 만나는 날이 있다. NPC인 내게 눌러왔던 분노와 화를 표출하고 가는 용사도 잊기 쉽지 않지만 작은 친절에 더 소중한 보답을 보내주는 이용자들이 특히 더 기억에 남는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며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네고 가는 이용자는 항상 반갑고 반납이 늦었다며 택배로 보낸 책 상자에 동봉된 사탕과 귀여운 손편지는 일하는 중간 미소를 짓게 한다. 도와주어 고맙다며 복지관 수업시간에 만들었다는 조금 울퉁불퉁한 쿠키를 주신 할머니도 계셨고 직접 접은 종이비행기를 선물로 주던 어린이 이용자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용자는 내게 시를 선물한 할아버지다. 우리 기관에서만 발행하는 자료를 열람하러 먼 곳에서 도서관을 찾아 방문하셨었는데 알고 보니 이름이 비슷한 도서관을 착각하셔서 자료를 보실 수 없었다.


 더운 날 제법 많은 짐을 들고 먼 곳까지 걸어서 방문하신 할아버지가 안타까워 이곳저곳 알아보았지만 가까운 곳 중에는 자료를 볼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상호대차 서비스를 신청해드리기로 했다. 책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도착 예정 날짜를 알려드리고 그 이후에 방문하시라고 안내를 드렸다.

그 뒤 할아버지가 나가고 바로 도서 도착 예정일을 살펴보니 내가 날짜를 착각해 말씀드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근무하던 도서관은 회원제 도서관이 아니어서 일반 시민들이 방문해 자료 열람은 가능하지만 대출은 되지 않아 따로 이용자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전화번호가 없어 연락도 드릴  없고 무작정 할아버지가 나간 뒤를 쫓아 달려 나갔다. 다행히  멀리 걸어가고 있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걸음도 빠르시지 어느새 저기까지 가셨을까 하며 할아버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렸다. 겨우 붙잡고 말씀드리니 이런 친절은 처음 받아본다며 고마워하셨다.


 내가 달려왔단 사실이  감동이셨던지  것이 있다며 도서관으로 다시 돌아가자 신다. 어리둥절해 괜찮다는 나에게 이번엔 자신이 데려다주겠다고 하셔 도서관까지 함께 걸어왔다. 자료실로 돌아와 다시 정확하게 안내를 해드리고 인사를 하려는데  한켠에서   편을 내게 건네신다. 본인이 좋아하는 시라며 프린트한 종이에시를 풀이한 설명이 가득했고 본인이 습작하신 글들도 여러  딸려있었다. 방금 보고 오신 영화가 좋았다며  보러 가라고  플랫도 껴서 주신다. 시를 보면 사람이 예뻐진다고  보라는 추천의 말과 함께.

 사람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른   방식도  기분이 좋았다. 평범하진 않지만 그래서  기억이 남는 방식이다.


소소한 만남과 예쁜 마음들을 마주할 때마다 사서로 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서 만난 작은 기쁨들이 내 하루를 채워주는 것이 좋아 나는 사서를 한다. 하지 않았으면 느끼지 못했을 기쁨이다.

나의 노년도 이렇게 여유롭고 소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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