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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구 Oct 09. 2024

[EP.05] 가을밤에 든 생각

보고픈 그대 생각 짙어져 가는

#1. 소개

잔나비는 세련되게 스토리텔링하는 밴드다. 이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잊고 있던 추억이 떠올라 아련함에 젖다가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지지해 주는 존재가 생긴 것 같아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곡에는 연령대를 불문하고 공유할만한 감정들이 꾹꾹 담겨 있다. 한 마디로 이 밴드는 EQ가 매우 높다. '가을밤에 든 생각'은 그리움을 모아둔 서랍 같은 앨범 '소곡집 l'에 수록되어 있다.


감상 포인트

마음이 적적할 때 가장 먼저 매만져주는 건 추억이다. 언제나 우리 머릿속 한 켠에는 그리운 것들, 그리고 그리워할 것들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자. 그리고 괜히 쓸쓸한 날이 오면 이 노래를 꺼내자. 따스한 차 한 잔과 함께하면 더 좋다.


 

#2. 머나먼 별빛

갈래야 갈 수 없는 거리에서 별 하나가 메시지를 보낸다. 오래된 그 문장이 이제 내게 한 점 빛으로 도착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되는 게 많다.

간의 소중함, 작은 것에 대한 감사, 실패의 가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 등등.


어릴 때는 시간이 무한할 것만 같았다. 가족과 보내는 순간은 언제든 다시 찾아오는 거였다. 명절이 되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년도 봤고 올해 초에도 봤고 내년에도 볼 텐데... 나는 그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받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마음을 표현하거나 선물하는 게 너무 어색했다. 지금 뭔가를 드려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나중에 때가 되면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나는 그렇게 뭉그적거렸고, 외할아버지는 3년 전 돌아가셨다. 처음으로 소중한 누군가와의 단절을 느낀 순간이었다. 매일 새벽 나를 위해 기도하던 영혼이 한순간에 별이 되어 떠났다.



#3. 보고픈 그대 생각

그는 소아마비가 있어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어린 날부터 그는 절뚝이며 걸어 다녔다. 그 당시 장애는 죄였다. 아버지에게 맞고 혼나며 시장에서 좌판을 깔았다.


그가 누구 손에 이끌려 교회에 간 날이 있었다. 거기서는 다리가 불편해도 차별받지 않았다. 늘 핍박받던 그에게 그곳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나도록 도왔다. 어린 날의 그는 크게 사랑받지 못했지만, 아이들에겐 사랑을 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어린 나는 그에게서 선한 인간상을 보았다.


또한 그에게는 예술적 달란트가 있었다.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는 재능을 살려 사진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어릴 적 그의 사무실에 가면, 백두산 천지 사진이 벽면에 자랑스레 걸려 있었다. 야생화가 잔뜩 피어 있는 봄의 천지. 내게는 아직도 그 사진이 다른 누구의 사진보다도 멋지다. 아픈 시간을 묵묵히 걸었던 그의 스토리가 담겨 있는 것만 같다. 그는 거기에 서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셔터를 누를 때 어떤 심상을 담고 싶었을까?


이제는 물어볼 수도 없다. 그가 떠나기 일주일 전, 병상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내 이름만 부를 뿐 아무 얘기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 왜 가장 먼저 내가 떠올랐을까. 내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그땐 잘 몰랐는데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그가 했던 말들, 그가 남긴 글과 사진, 그리고 그와 보낸 시간.

여전히 따뜻하다.

 





Disclaimer

이 매거진에 소개되는 음악과 그에 대한 해석은 전적으로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 음악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만큼, 이 글이 불편하게 느껴지시더라도 너른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무교입니다. 종교에 대해 잘 모릅니다. 다만 외할아버지가 종교로부터 위로를 받으며 그의 아픔을 이겨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 커버 이미지 출처: UnsplashBund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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