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한 마음을 담아
베토벤의 Sonata Pathétique는 한 인간이 비장하게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을 그려낸 곡이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그는 청각 상실 증상을 겪고 있었다. 그는 덜컥 찾아온 고통에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고통을 받아들이며 고요해졌다가, 결국 모든 걸 극복하고 일어선다. 이 소나타에는 그 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운명의 목을 죄어 주고 싶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운명에 져서는 안 된다.
- Ludwig van Beethoven
그는 어떻게든 운명에 맞서 싸우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고전적 형식 안에서도 항상 자신만의 목소리를 드러냈으며, 음악적 전통에만 얽매이지 않고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했다.
단어 의미상, 곡의 맥락 상 Pathétique는 '비장한'으로 해석하는 게 맞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비창 소나타의 '비창(悲愴)'은 슬픔을 강조한 단어다. 이 곡의 부분적인 감정에만 집중해 번역한 것이다.
우리는 이 곡이 슬픈 소나타가 아닌, 비장한 소나타임을 기억하자. 슬픔에 잠겨있는 게 아니고 슬픈 감정을 참고 이겨내는 것이다. 각 악장은 '고통 - 인정 - 극복' 서사다. 곡을 듣다 보면 거대한 시련을 이겨내고 대담하게 운명의 목을 움켜쥐는 한 인간을 마주하게 된다.
- 1악장) Grave. 매우 느리고 무겁게, 엄숙하게
강렬하고 무겁게 시작하여 드라마틱한 감정의 서막을 연다. 특히 비장함과 고통이 두드러진 이 악장은 베토벤이 겪는 내적 갈등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 2악장) Adagio cantabile. 차분하게, 노래하듯이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멜로디가 전개된다. 비통함 속에서도 상황을 인정하며 위안을 찾으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악장은 마치 무거운 현실 속 잠시 찾아오는 위로의 순간과도 같다. 여운을 남긴다.
- 3악장) Rondo: Allegro. 주제 멜로디가 반복되는 구조로, 빠르고 활기차게
앞의 두 악장에서 느꼈던 비장함과 서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난다. 고통을 극복하며 해방감을 느끼는 악장이다.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하다.
Classic,
Authentic.
베토벤은 음악을 통해 고통을 마주하고 이를 극복해 내는 여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위의 두 단어를 특징으로 갖는다. 이 가치를 이해하는 이들에게는 묵직한 아우라가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객관적으로 2024년 상위 50%의 삶은 100년 전 상위 5%의 삶보다 낫다. 주거, 식생활, 보건/의료, 교통, 정보의 접근성, 즐길거리 등등···. 수많은 항목에 점수를 매겨보면 우리의 삶은 꽤나 풍요롭다. 시간을 조금만 투자하면 노력 대비 큰 쾌락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하루하루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얻는 게 너무 쉬워졌다. 성취 없이 얻는 편리함이 생각보다 크다는 말이다. 이게 우리를 길들이며 천천히 정신을 좀먹는다. 원래 세상은 이렇게 편안한 것이고, 내 삶은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혹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편한 것만 지속하게 된다.
이런 삶은 틀리거나 실패할 일이 없다. '편안함'이 목표이니 도전을 할 필요도, 싸울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모든 상황에 순응하며 하루를 보내다가 밤이 되면 포근한 침대에 누워 자면 된다. 대신 편안함을 대가로 '고뇌'를 잃는다. 고뇌는 인생의 프리즘이다. 삶을 다양한 측면으로 나누어 보여주며 그 안에 담긴 다양한 감정과 의미들을 여러 색으로 분산시킨다. 우리가 고뇌하면서 무언가를 해결하고자 할 때에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베토벤은 고뇌를 통해 불멸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삶이 괴롭다는 건 열정 있음의 방증이다. 열정을 불태우는 과정은 늘 처절하고 고되다. 그래도 이렇게 고뇌하는 시간은 삶의 깊이, 진정성 그리고 품격을 만들어 준다. 이 과정을 거친 산물만이 고유한 클래식이 된다.
잘못된 음을 연주하는 건 대수롭지 않다.
그러나 열정 없이 연주하는 건 용납될 수 없다.
- Ludwig van Beethoven
이 매거진에 소개되는 음악과 그에 대한 해석은 전적으로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 음악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만큼, 견해가 다르더라도 너른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 커버 이미지 출처: Unsplash의Tom Barre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