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자베스(Nujabes)'는 일본의 프로듀서로, 본명은 '세바 준(Seba Jun)'이다. Nujabes는 그의 이름을 거꾸로 쓴 예명이다. 그는 주로 재즈 힙합, 로파이(Lo-fi) 힙합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감성적이고 편안한 멜로디 라인과 고전적인 재즈 샘플을 사용한 비트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4년 발매한 애니메이션 Samurai Champloo의 OST 작업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래퍼 '싱고투(Shing02)'와 협업한 작품인 Luv (sic) 시리즈는 그의 대표적인 트랙으로 손꼽힌다. 이 트랙은 사랑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누자베스는 2010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후 동료들이 이 시리즈의 3개 파트를 완성했다. 2013년엔 마지막 파트 'Grand Finale'가 발매됐다. 그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음원에동료들이 '재회'를 주제로 작업하여 최종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비하인드 스토리가 Luv (sic) 시리즈를 명반으로서 더욱 빛나게 한다.
2. 감상 포인트
Luv (sic)은 총 6개의 파트로 이뤄져 있다.
각 파트의 스토리를 알면 듣는 재미가 배가된다.
[시리즈 구성]
- Part 1 (2001년): 사랑에 대한 첫 만남의 설렘을 표현한다.
- Part 2 (2003년): 첫 만남 이후의 감정을 다룬다. 평화로운 심상이 녹아 있다.
- Part 3 (2005년): 관계가 깊어짐과 함께 생기는 다짐을 얘기한다.
- Part 4 (2011년): 누자베스 사후에 발표된 곡이다. 이별의 아픔과 그로 인한 상실감을 담고 있다.
- Part 5 (2012년): 이별 후의 회복 과정을 그린다. 삶의 의미를 되찾아 가는 내용이다.
- Grand Finale (2013년): 재회를 통한 완성을 표현한다.
이중 특히 파트 2의재즈샘플과 비트, 가사가 돋보인다.처음 감상할 땐 편안하고 감성적인 음에 집중하자. 그리고 가사를 음미하자. 마지막으로 음과 가사를 함께 들으며천천히 곡을 소화하하는 걸 추천한다.
Luv (sic) Part 2.
The ryhmes will heal cause I believe in music In times of need I won't be leaving you sick The beat plus the melody's the recipe Your vibe surely brings out the best in me
- Luv (sic) Part 2 가사 중
싱고투는 9.11 테러 이후에 파트 2의가사를 썼다고 한다.
보편적 사랑이라는 주제의식이 담겨 있어 더욱 빛나는 곡이다.
3. 시대정신
이 곡을 들으며 현대의 시대정신(Zeitgeist)에 대해 생각한다.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공동체가 죽어가고 있다.
요즘은 '공동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꽤 많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오래된 가치에 피로감을 느껴봤기때문이다. 유교 문화는 규율과 합이 잘 맞으니,이런 기조가 강화되고 지속됐을수밖에.
시간이 흘러개인주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개인주의가 곡해되는 것이다. 개인주의에 소비주의, 이기주의가 결합되며 나의 성공만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부상한다.미디어의 전파력이 높아져 이런 의식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기도 하다. 마치 산불이 난 것과 같다.
과시하는 문화가 디폴트다. 과시할 수 있다는 건 성공의 암시이며, 허영심은 돈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젠 어느 SNS를 켜더라도 곧바로 스노비즘을 목격할 수 있다(이런 주제로 글을 쓰는 나 자신도 그 사례일 수 있고). 다른 누군가의 아픔, 고통은 종종 가십거리가 될 뿐 깊은 관심이 없다.
4. 보편적 사랑
공동체가 죽으면 안 된다. 왜일까.
그게 아름답다거나 정의로운 것이라는 등, 그런 무지성 옹호가 아니다.
공동체가 있어야건전한개인주의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앞서 짚은 것처럼, 개인주의는 왜곡되고 극단화되기 쉽다는 고질병이 있다. 개인주의가 강화되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약해진다. 경쟁이 가속되면서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한다. '쟤보다는 내가 낫지', '쟤는 저렇게 잘하는데 나는 왜 이렇지' 등 비교대상 없이는 사고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판단 기준으론 오로지 '나의 안위'만이 남는다.
그런데 타인의 안위가 없으면 내 안위도 없다.
로마 제국의 붕괴는 공동체 의식 없는 귀족층으로부터 시작됐다.
모두가 내 안위를 위한 선택만 하면 결국 내가 서있는 토대가 무너진다. 경제 구조가 망가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진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그랬고, 1998-2002년 아르헨티나 경제 침체가 그랬다. 소련 붕괴 후 과도한 사유화가 진행되며 올리가르히(oligarch)들이 국가 자산을 장악했다. 쓰러져가는 사회에서 건전한 개인주의를 추구할 수 있을까?쉽지 않다.
내가 더 잘 살기 위해 공동체가 살아야 한다.
보편적 사랑이 공동체를 살리는 처방이다.
보편적 사랑은 특정한 대상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사랑이다.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분류한 사랑의 유형 중 '형제애(Brotherly love)'에 해당하며 이해, 공감, 연대 등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다. 가족, 친구, 연인, 사회 전체, 심지어는 스스로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인간이 서로 연결되고 지탱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보편적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실천적 사랑'인데, 그 핵심은 경청이다. 상대의 말에 집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서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차츰 벗어나게 된다. 임계치를 넘어서면 나를 둘러싼 넓은 세상이 보인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채는 것부터, 단 한 번도 교류한 적 없는 이들의 감정까지 공감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런 상태에서 개인주의를 추구해야 건전하다. 나를 오래 지킬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타인을 존중하고 도우면 된다. 배경을 모른다면 섣부르게 재단하지 않고 다시 경청하려 노력하면 된다.
결국 '보편적 사랑'은 '내가 발 디딘 공동체를 위해, 또 다른 구성원인 네게 기꺼이 내 시간을 쓰겠다'는 태도이자 행동이다. 나 또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인데,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타인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쓰려고 노력한다. 이런 보편적 사랑의 관점에서 Luv (sic)의 두 번째 파트를 듣는다. 그 마음이 당신에게도 전달됐으면 좋겠다.
우리 시대정신이 그 무엇이든,
보편적 사랑은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Disclaimer
이 매거진에 소개되는 음악과 그에 대한 해석은 전적으로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 음악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만큼, 이 글이 불편하게 느껴지시더라도 너른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