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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Sep 28. 2021

10년 인생 최고의 날

동글이의 고백 "엄마, 내 10년 인생 중 오늘이 제일 행복했어!"

송도 센트럴파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나들이를 간 동글이는 신이 났어요. 지난달에 엄마와 둘이 데이트했 곳에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를 모시고 오게 되니 가이드가 되어 이곳저곳 안내하느라 바쁘네요. 역시 경험했던 만큼 보이는 게 맞는 듯합니다. 식사도 동글이가 갔던 곳에서 하고, 뒤 쪽 카페 정원에서 사진도 찰칵찰칵 찍었어요. 센트럴파크 호수에 나와 멋진 건물들도 소개하고 호수 건너 사슴들이 사는 작은 동물원이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개장하지 않는다고 안내도 해 주네요.


동글이와 둘만의 데이트를 하며 탔던 전동 보트 생각이 난 동글이는 어른들께 함께 타자고 말씀드렸죠. 어른들이 흔쾌히 '그러마' 하시자 마음이 바빠졌어요. 그래서 저는 호수에서 띄우는 전동 보트를 타겠다는 동글이와 함께 앞서 걸으며 티켓을 끊으러 매표소로 향했습니다. 남편은 부모님 보폭에 맞춰 오고 우리는 줄 서지 않고 보트를 타겠다는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어요. 점심 식사 후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얼른 표를 끊어야 하거든요. 걷는 건지 뛰는 건지 모를 발걸음으로 매표소로 향했어요. 다행히 데이트 커플들이 많아서 패밀리 보트는 대기 번호 없이 바로 탑승권을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QR체크와 열체크를 하고 구명조끼와 밀짚모자를 빌려서 선착장으로 향하는데 동글이가


"오늘은 내가 운전할 거야."

"동글아~ 운전할 수 있겠어?"

"아빠. 내가 카트라이더를 얼마나 잘하는데... 아들을 쫌 믿어. 그리고 엄마랑 둘이 타봤어. 그때 엄마 운전하는 거 내가 잘 봐 뒀거든. 오늘은 내가 할 거야. 나 잘할 수 있어."

"그래, 동글이가 운전하고 아빠가 옆에서 봐주면 되지."

"동글아~ 네 손에 어른 넷의 안전이 걸려있구나... 잘해 보렴?"


온 식구의 응원 속에 동글이가 전진 버튼을 누릅니다. 긴장감으로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동글이의 운전실력은 프로에 가깝습니다. 자세도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 곧추 앉은 모양새가 늠름하기까지 합니다.



제법 좌우 공간을 살펴가며 다른 보트와 부딪치지 않도록 핸들도 잘 꺾어봅니다. 운전을 하다가 부딪칠 것 같으면 정지 버튼도 누르고 후진도 해가며 솜씨 좋게 운전을 합니다.


햇살이 가득 들어와 눈이 부신 동글이를 위해 밀집모자 씌워주었어요. 선장님 느낌 나죠?


호수 위에서 바라보는 공원은 산책로에서의 느낌과 사뭇 다릅니다. 한눈에 송도의 세련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세밀히 보입니다.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 표정에는 저마다 웃음이 가득해요. 온갖 시름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즐거움만 가득합니다.


사진 찍기에 진심이신 할머니는 100장은 넉근히 넘고도 남을 사진을 찍으시느라 우리와 수다 떨 새가 없습니다. 사진에 진심이신 할머니께서는 요즘에는 잘 들고 다니지 않는 디지털카메라와 최신형 핸드폰을 번갈아 들고 찍으시면서도 무거워서 DSLR을 집에 두고 왔다며 연신 아쉬워하십니다.



동글이 덕에 어른 넷은 호수에서 한가로이 30분의 시간을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줄만 알았던 동글이가 어느새 자라서 어른들을 태우고도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해 주네요. 오늘의 나들이는 동글이에게 의지 해서 보트를 안전하게 잘 탔던 것이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보트에서 내려 구명조끼를 벗는데 동글이의 밀짚모자 속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집니다. 하얀 티셔츠가 흠씬 젖어 짜도 될 듯하네요. 제 딴에는 땀에 젖도록 용을 쓰고 운전을 했던 모양입니다.


"엄마, 내가 시간까지 딱 지켜서 운전 진짜 잘했지? 아빠보다 더 잘하지 않아?"

"정말 대단했어.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잘하던걸?"

"조금 무서웠지만 네 명 목숨이 달린 일이라 내가 정말 신경을 많이 썼거든.'

"그래서 그렇게 땀이 많이 났구나... 수고했어. 정말 멋있어!"


12시까지 비가 내렸다 개어서인지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깨끗했습니다. 가을의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이 그늘에 있으면 쌀쌀하게 느껴지고, 햇살 아래 있으면 곡식이 무르익을 듯한 쬐는 따사로움이 나들이하는 발걸음을 풍요롭게 해 주었어요.




한참을 돌았는데도 일찍 발걸음을 해서인지 바로 귀가하기 아쉬워하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월미도에 잠시 들렀습니다. 오후 시간으로 접어드니 사람들이 많이 몰려 코로나가 없던 때와 다를 바 없이 느껴졌습니다. 길거리에서 거리공연을 하는 분들이 세 팀이나 있어서 각설이 타령과 함께 섞이니 시끌벅적합니다. 거리두기로 집콕을 했던 사람은 저밖에 없던 듯 세상은 마스크를 쓴 것 말고는 예전과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서해의 일몰


구름이 너무 많아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이 가려졌지만 해지는 기운이 멋집니다. 핸드폰이 구형이라 색을 다 잡아낼 수 없음이 너무 아쉬웠어요. 구형 핸드폰은 야경에는 정말 취약합니다. 해가 많이 짧아져 5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어스름한 기운이 몰려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바닷바람을 쒜러 들른 것이라 바다 구경을 하고 돌아섰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동글이가 말을 꺼냅니다.


"엄마, 내 10년 인생 중에서 오늘이 제일 행복한 날이었어."

"오마~ 그래야~ 뭣이 그리 행복했데?"

할머니의 물음에 동글이는,

"제가 오늘 어른들을 넷이나 태우고 안전하게 배를 운전했잖아요. 그게 너무 뿌듯했어요."

"그래그래. 할머니도 동글이가 운전을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지 뭐니? 아이고 내 새끼... 이쁘다 이뻐."


오늘의 나들이가 동글이 10년 생의 가장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았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 할머니께서 챙겨주신 두둑한 용돈까지 받아 들고 동글이의 하루는 처음부터 끝까지 더할 나위 없는 날이 되었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하루가 소중한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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