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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Oct 22. 2021

10살 아들의 첫사랑

사랑은 나이가 상관없습니다.

동글이에게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같은 반이었는데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다 보니 자주 마주치는 밝은 여자 친구입니다. 동글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표정이 심상찮습니다.

"동글아,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엄마의 질문에 동글이의 울음보가 빵~ 하고 터져버렸습니다.

"친구들이 내가 OO 이를 좋아한다고 큰소리로 이야기하고 다녀서 아이들이 놀렸어."

"동글아, OO 이를 좋아했었어? 엄마도 몰랐네?"

"내가 원래 OO 이를 좋아했잖아. 어떻게 엄마가 돼가지고 모를 수가 있어?"

"네가 말을 안 했으니까 몰랐지. 그런데 어떻게 친구들이 알게 됐어?"

"내가 OO 이한테 좋아한다고 말했어."

"오~ 우리 동글이 용기 있는데? 그래서 OO이가 뭐라고 했어?"

"아무 말도 안 하고 뛰어갔어."

"대답을 못 들었어?"

"응, 대답은 못 들었어. 그런데 친구들이 듣고 큰소리로 이야기하면서 놀렸어. 그래 가지고 반 친구들이 다 알게 됐어. ㅠ.ㅠ"

"창피했어?"

"몰라, 나도."

"그래도 고백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건데 동글이는 용기 있는 남자 친구네. 아주 멋진데?"

"그래?"

"그럼, 고백은 아무나 못하는 거야.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거든."

"그런데, OO이가 날 안 좋아하면 어떻게 하지?"

"안 좋아하면 좋아하도록 만들면 되지?"

"어떻게 좋아하게 만들어?"

"친절하게 대하고, 힘들 때 도와주고, 말도 따뜻하게 하면서 네가 좋아하는 마음을 이야기하면 되지."

"그렇게 했어."

"그랬어? 그럼 어쩌면 동글이가 갑자기 고백하니까 부끄러워서 뛰어갔을 수도 있어.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


동글이의 첫사랑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동글이의 사랑을 응원하지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 엄마 마음을 동글이가 눈치챘을까요?





어느 날 동글이가,


"엄마, 내가 OO이랑 같이 천문대 갈 때 같은 차를 탔거든? 근데 걔가 나한테 '밥맛이야!'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응~ 나 밥 되게 좋아해. 밥 잘 먹는다고 엄마가 맨날 칭찬해주셔.'라고 했는데 OO이가 '뭐~래~~?' 하면서 짜증 냈어. 엄마, 내가 뭘 잘못한 거야?"


ㅋㅋㅋㅋ 우리 동글이의 세상에는 '밥 맛이야!'가 칭찬이었던 모양입니다. 딱히 뭐라고 설명하기도 애매해서


"응. 밥은 맛있는 건데.... 그렇지?"

"근데 그 말이 나쁜 말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니, OO이가 말하니까 옆에서 ㅁㅁ이가 욕하지 말라고 했어."

"그랬구나. 너는 그 말을 들으면서 어땠는데? 기분 나빴어?"

"아니? 기분 안 나빴어."

"네가 기분 안 나빴으면 욕이 아니야. 욕은, 들으면서도 기분이 나빠지거든."

"그렇구나. 근데 나는 안 나빴어. 내가 OO 이를 좋아하잖아. ㅎㅎㅎㅎ"


동글이의 순진무구한 세상에는 나쁜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휘력이 딸린다는 앵글이의 구박에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별달리 신경을 쓰거나 상처를 받지도 않습니다. 다행이겠죠?




얼마 전 동글이가 신이 난 듯, 애매한 듯 격양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엄마, 나 아무래도 OO이하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왜?"

"OO이가 나한데 '너 진짜 나 좋아해?'라고 물었어."

"오우~ 그래서 동글이는 뭐라고 했어?"

"주변에 친구들이 많이 있었거든? 그래서 살짝 고민이 됐어. 아무 말도 못 해줬어."

"그럴 때 용기 있게 '좋아해!'라고 말했어야지. 왜 말을 못 했어."

"다른 친구들이 듣고 놀리면 OO이가 곤란할 수도 있잖아. 그래서 나중에 둘이 있을 때 '좋아한다.'라고 얘기해주려고 그랬지."

"그래도 OO 이는 그때 듣고 싶었을 텐데... 아쉽다..."

"그래? 그냥 대답했었어야 해?"

"그렇지. OO이가 동글이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물었을 거잖아. 그럴 때는 씩씩하게 고백을 했어야 해."

"그렇구나."


곁에 있던 앵글이가 버럭~ 화를 냅니다.


"야!! 무슨 남자가 그렇게 용기가 없어! 누나가 교육 좀 시켜야겠다!! 그런 기회가 늘 오는 게 아니란다 동글아~"

"앵글아~ 모쏠인 네가 할 얘기는 아닌 듯한데?"

"엄마, 내가 받아주지 않아서 그렇지 나 좋다는 남자애들은 많거든?"

"그런데 너는 왜 남자 친구가 없어?"

"없는 게 아니고 안 만드는 거거든?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무슨 연애야?"

"그래, 그래... 그렇다고 하자."

"뭘, 그렇다고 해? 엄마! 이래 봬도 나 인기 꽤 많거든?"


동글이의 연애사를 듣다 앵글이에게로 넘어 간 모쏠 이야기로 한 바탕 시끄러운 저녁을 보냈습니다.



범상치 않은 앵글이와 달라도 너무 다른 동글이는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키우는 재미가 있습니다.

10살 동글이는 7살 같은 동심이 있고, 18살 앵글이는 40살 아줌마가 내면을 갖고 사는 것 같습니다.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둘이 어쩜 이렇게 다를까요? 한 편으로는 둘이 똑같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두 아이 모두 엄마를 붙들고 자기 얘기하느라 바쁩니다. 앵글이가 조잘조잘 수다를 떨면 동글이가 훅~ 끼어들어 제말을 하다가 누나에게 핀잔을 듣습니다. 그래도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서 지, 동글이의 성품이 따뜻해서인지 삐지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습니다. 가끔 '엄마, 누나 사춘기 언제 끝나?'라고 묻기는 하지만요. ㅋㅋㅋ 누나의 버럭이 동글이 보기에도 사춘기 변덕처럼 보이나 봅니다. 그래도 10살 동글이의 이해심은 꽤 칭찬할 만하죠?




10살의 사랑도 사랑이 맞습니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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