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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May 30. 2022

아빠 찾아 삼만리

울릉도 현지민 체험기

동글이가 10개월쯤 되었을 때 남편은 울릉도 [안용복 기념관] 마무리 작업을 위해 배에 올랐다.  울릉도에서 집까지 쉼 없이 달려와도 꼬박 8시간, 주말마다 오겠다고 했지만 한 달 한 번도 벅차 보였다. 현지 사정을 알 수 없던 아이들주말마다 아빠가 오기만 기다렸다. 한 달이면 된다던 남편은 두 달이 되고, 세 달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앵글이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반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찾아 나섰다. 무모하고 용감한 '아빠 찾아 삼만리'가 시작된 거다.


이제 겨우 15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서울에서 묵호항까지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묵호항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울릉도행 여객선에 오르기 전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이들이 멀미로 고생할까 염려되어 서울에서 미리 병원 진료를 받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기가 24개월 이전에는 멀미를 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앵글이와 내가 먹을 멀미약만 처방해 주셨다. 배에 오르기 전 미리 멀미약을 먹었지만 4시간이 넘는 뱃길은 멀미약 따위로 견딜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포기란 없었다. 꾸역꾸역 멀미를 견뎌가며 뱃길을 이겨냈다. 다행히 아이들은 멀미를 하지 않았고, 나만 죽을 맛이었다.


주렁주렁 아이 둘을 끌고 간 울릉도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섬이었다. 항구에서 보이는 시내 풍경은 낡고 낙후했지만 실망하기도 전 눈에 들어온 자연경관은 감탄을 불렀다. 시선이 머무는 곳곳마다 조물주가 내린 작품 그 자체였다. 바닷물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맑았다. 푸른 하늘, 초록이 풍성한 산과 나무, 수평선 너머까지 탁 트인 시야는 도시에서만 살던 내게 선물과도 같았다. 울릉도에서 없는 단어는 미세먼지가 아닐까? 이곳의 깨끗한 자연은 인간의 손길이 머물지 않아서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 듯했다.



울릉도에 가 보지 않고 마냥 남편을 기다렸다면 불평불만이 하늘을 찔렀을지 모른다. 육아에 찌든 나를 내버려 두고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모진 남편으로 낙인찍을 뻔했다. 오죽하면 아이 둘을 끌고 울릉도까지 쳐들어갔을까...


현장에서 작업할 자재가 바지선을 통해 들어오면 5~7일 이내에 거진 소모되고 다시 자재가 들어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섬 마을 공사였다. 공기를 맞추기 위해 남편은 자재를 보내라는 독촉 전화로 일과를 보냈던 모양이다. 현장을 모른 채 서울에서 일정 체크만 했다면 애먼 사람만 잡았을 수 있는 상황이다.


2013년 여름.

우리가 울릉도에 있을 때 공사 중이던 일주도로는 서울로 돌아온 후 2년 뒤에야 개통되었다. 같은 공사가 서울에서 진행되었다면 1년 정도면 마칠 수 있었을 테지만 섬이라는 특수성은 공기를 잡아먹는 악조건이 되었다. 남편이 투입된 '안용복 기념관'의 공기도 2010.07.~2013.10까지 3년 넘는 시간이 걸렸으니 섬에서 진행되는 공사가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일이다.  



남편은 안용복 기념관 '4D 영상관' 설치에 참여했다. 우리가 갔던 8월에는 10월 개관식을 앞두고 테스트 상영을 했었다. 두 아이와 4D 영상으로 '안용복 일대기'를 보았다. 박물관에 전시된 모형들과 체험관을 둘러보고, 박물관 옆 공터에 놓인 컨테이너 현장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찌는듯한 8월 무더위를 에어컨 없이 선풍기 하나로 보냈다.  


여행객을 위해 갖춰진 펜션에서도 지내기 힘들 만큼 한낮의 더위는 기승을 부렸다. 컨테이너 실내보다 그늘진 실외가 더 시원했지만 모기와 갖은 벌레들 때문에 밖에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한낮에는 세숫대야에 얼음을 가득 채워 두 아이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얼음을 만지고 먹으며 더위를 식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하다. 계획된 여행이 아니었고, 남편을 찾으러 떠난 길이었기에 간편하게 몇 가지 짐만 꾸려 울릉도에 갔던 것이 문제였다. 


현장이 그토록 열악한지는 도착해서야 알았고, 2~3일 정도 계획했던 여정이 3주로 늘어났다. 공기를 맞추기 위해 남편은 열심히 일했지만 마무리 작업은 더디 진행되었다. 배에 오르는 것도 수월치 않았다. 울릉도의 날씨는 조물주 마음이다. 파도가 잔잔하고 날이 맑아야 배가 떴다.


배가 뜨지 않으면 선착장 근처에 관광객이 넘쳐난다. 순차적으로 배에 오르기 때문에 일정을 마친 관광객도 배가 뜨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이 또한 울릉도가 주는 귀한 체험이다. 관광객이 탑승하고 여석이 생겨야 우리 가족이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배를 기다리며 좁디좁은 시내 허름한 여관방에서 아이 둘과 네 식구 구겨져 보냈던 며칠도 세월이 흐르니 추억 한 자락으로 남았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아이들은 불평이나 투정도 없이 즐겁게 지내주었다. 여름 더위에 엉덩이 마를 새 없던 동글이는 하의 실종 상태로 3주를 보냈다. 기저귀를 채우기에 컨테이너의 열기는 혹독했다.


설상가상 찌는 듯한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급기야 동글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무섭게 열이 올라 인근 보건소를 찾았더니 아기가 복용할 약이 없다고 했다. 안내받은 대로 시내에 위치한 종합병원으로 쫓아갔더니 그곳도 열악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아기에게 처방된 약은 해열제가 전부였다. 마음은 분주하고,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열이 나는 와중에도 동글이는 잘 놀아주었고, 3일 정도 지나니 열을 이기고 거뜬히 일어섰다.


우리 가족의 '울릉도 생존기'는 매일같이 치열했다. 그래도 짬짬이 인근 관광지를 다니며 추억을 쌓았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 싶어 많이 찍었다. 3주나 있을 예정으로 떠난 여행이 아니어서 서너 벌의 옷을 매일 빨고 말려가며 지냈던 터라 사진마다 행색이 초라기 한량없다. 자주 갈 수 있는 울릉도가 아닌데 예쁜 사진 한 장 변변히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사진을 고르고 있는데 앵글이가 다가왔다.


"엄마, 뭐해?"

"울릉도에서 찍은 사진을 고르는데 맘에 드는 사진이 없네."

"엄마, 우리 거기서 정말 거지같이 살았던 거 알지? 예쁘게 나온 사진이 있을 수가 없지.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데..."


깜빡 잊고 있었다. 컨테이너 옆에 간이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지만 냉수밖에 나오지 않았고, 문도 덜렁대는 합판이어서 한 사람은 밖에서 망을 봐야 씻는 것이 가능했다. 어린 동글이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 섞어가며 씻겨야 했고, 조금 컸던 앵글이는 두 눈 질끈 감고 물을 단숨에 끼얹어가며 씻겨주었다. 정말 무인도에 갇힌 듯한 체험이었다. 울릉도의 물은 정말 얼음장같이 차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여보, 좋은 생각이 났어."

"무슨 생각이요?"

"온수가 나오는 곳이 생각났어."

"어딘데요?"

"박물관 옆 공중화장실인데 거기는 온수가 나와."

"그 이야기를 2주나 지난 지금 하면 어떡해. 진작 생각했어야지... 동글이 씻기기 정말 힘들었는데..."


우리는 공중화장실을 향해 신나게 걸었다. 그런데, 개관 전이라 문이 잠겨있었다. 살짝 열린 환기창으로 몸을 구겨가며 들어가 문을 열고 아이들을 씻긴 후 문을 잠그고 환기창으로 다시 나왔다. 씻기 위한 도구도 쓸만한 게 없어서 국그릇으로 물을  끼얹어가며 아이 둘을 씻기다가 우리 둘의 눈이 마주쳤다. "하하하 깔깔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살면서 이런 체험은 돈 주고도 사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여보, 갑자기 좋은 생각이 또 났어."

"무슨?"

"컨테이너가 너무 덥잖아. 낮에는 박물관에 들어가 있는 거 어때?"

"아~ 좋은 생각!"


말할 수 없이 추레한 몰골이라 사진을 올릴 수는 없지만 깔고 덮던 이불 하나를 박물관 로비에 깔아놓고 아이들을 놀게 했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박물관은 시원했다. 아무렴 쇳덩이 컨테이너에 비할까... 아쉬운 건 울릉도 3주를 거반 컨테이너에서 보내고 떠나기 마지막 이틀만 호사를 누렸다는 점이다.



울릉도에서의 하루하루는 고되고 힘들었다. 갖춰진 주방도 없어서 휴대용 가스레인지 하나, 양은 냄비 하나, 일회용기 약간이 전부였지만 밥도 짓고, 국도 끓여가며 느리게 살았다. 일부러 캠핑도 하는데 이 정도 불편함 쯤이야 싶겠지만 실상 그곳에서의 생활은 생존 그 자체였다. 숙소만큼이라도 인근 펜션을 얻었다면 살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 수백 명의 관광객이 오가는 울릉도에서 예약 없이 숙소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우리는 요즘도 가끔 울릉도 이야기를 한다. 방송에서 울릉도를 우연히 보거나, '여행'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울릉도다. 관광지가 아닌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유통기한이 훌쩍 지난 먹거리가 그대로 진열되어 있다. 수급이 제 때 이뤄지지 않으니 아쉬우면 그것이라도 사야 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구멍가게 장보기는 유일한 낙이었다. 4학년 여름방학 때 울릉도에 갔던 앵글이는 그곳의 생활을 '거의 난민 수준'이었다고 기억하면서도 자연경관과 바다는 울릉도가 최고였다고 손꼽는다.


내 기억 속 울릉도도 그렇다. 지금도 뱃멀미는 여전히 무섭지만 다시 한번 울릉도를 찾는다면 그때 우리가 밟던 곳 하나하나까지 되살아나 마음을 간질일 것 같다. 몸은 힘들었지만 고단한 기억이 아니라 함께 깔깔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된 것을 보면 울릉도에서의 고된 3주도 꽤 괜찮았었나 보다.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해 준 울릉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보글보글 5월 5주 "노래로 떠나는 여행"에서 함께 나누고픈 노래는 미스터 트롯 Top7이 부른 "울릉도 트위스트"입니다.


미스터 트롯 Top7이 부른 "울릉도 트위스트"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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