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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Nov 18. 2021

킥보드 타다가 하늘을 날았다

동글이와 함께 킥보드 사고가 났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 자유로운 외출과 여행이 어려워져 10살 된 아들이 매일 집에만 머무는 것이 안쓰러웠습니다. 초3 남자아이가 집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게임하고, 탭 보고, 케이블 방송 보고, 게임하고, 탭 보고, 케이블 방송 보고'의 무한 반복입니다.


"동글아, 우리 공원 가서 킥보드 탈까?"

"그래, 좋아."


아래층 동생과 두 아이, 그리고 동글이를 데리고 호수공원에 갔습니다. 처음에는 형과 킥보드를 잘 타던 지완이가 금세 싫증이 났습니다. 킥보드를 손으로 끌고 걷고 있는데 동글이가 제안을 합니다.


"엄마, 나랑 시합할까? 근데 엄마 킥보드는 탈 줄 알아?"

"그럼, 엄마 킥보드 엄청 타. 엄마 운동 잘하거든?"

"그럼 누가 빠른지 시합해. 어때?"

"나중에 졌다고 울기 없음. 알았지?"


그렇게 시작된 킥보드 빠르게 타기 시합은 동글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신나게 킥보드를 타며 전진, 전진, 전진을 합니다. 둘레길로 한참을 가다 보니 얕은 내리막이 보였습니다.



"동글아, 내리막은 위험하니까 내려서 끌고 걸을까?"

"별로 안 내리막인데? 이 정도는 탈 수 있지 않을까?"

"위험할 텐데... 괜찮겠어?"

"엄마가 무서운 거 아니야? 나는 괜찮을 것 같은데?"

"좋아. 그럼 타 보자!"


약간의 스피드가 생기며 재미를 끌어올리는데 내리막이 한몫 단단히 했습니다. 동글이는 무서워하는 듯했지만 막상 끝까지 내려오니 재미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마주 보이는 경사로는 왠지 더 가팔라 보입니다. 그런데 동글이가 제안을 합니다.


"엄마, 이번에는 내가 졌으니까 한 번 더 해! 다음에는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동글아. 그런데 저쪽은 좀 더 경사가 급해 보이는데? 위험하겠어."

"아니야. 괜찮아. 할 수 있다니까?"

"그래? 좋아... 그럼 속도 조절하면서 할 수 있지?"

"오케이... 내가 그것도 못할까 봐?"


둘이 경사로 끝에 나란히 섰습니다. 그리고 요이~ 땅~~~!!



경사로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조금 급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이는 경사와 막상 킥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경사는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속도에 가속도가 붙으며 킥보드가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동글이의 킥보드는 세발, 제가 탄 킥보드는 두발입니다. 그리고, 동글이의 몸무게는 30kg, 저는.... 비밀입니다... 둘이 킥보드를 타고 내려오는데 아무래도 몸이 더 무거운 제 킥보드가 앞서 나가기 시작합니다. '어~~ 어~~~~ 어~~~~~~~' 속도가 빨라지며 겁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풀싸!! 동생네 3살 배기 아기가 제가 내려오는 방향으로 자박자박 마주 걸어오기 시작합니다.


"어~~~~ 어~~~~ 안돼!!!"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시도하며 아기가 마주오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핸들을 살짝 틀었더니 킥보드 뒷바퀴가 들려 오르며 나뒹굴어지면서 제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하늘로 새처럼 나르는 그 짧은 찰나에 '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는걸?'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되도록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풀숲으로 날자'는 생각으로 몸을 비틀며 번쩍 뛰어올라 갓길 쪽 풀숲으로 몸을 날렸습니다. 그러고 한 바퀴, 두 바퀴... 핑그르르 돌아서 슬라이딩 세이프~!!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니 동글이도 넘어져있었습니다.


"동글아, 괜찮아? 너는 왜 넘어졌어?"

"엄마가 하늘로 날아올라서 엄마 보며 깜짝 놀라 멈추려다가 넘어졌어. 엄마 괜찮아? 엄마가 죽는 줄 알았어. ㅠ.ㅠ"


동글이는 울고, 제 양쪽 손바닥은 아스팔트에 갈려 피범벅이 되었습니다. 청바지는 찢어지고 그 속에서 살갗이 다 벗겨져 피가 나고 있었고, 얼굴을 뺀 전신이 찰과상으로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동글이는 그나마 살짝 넘어져 팔꿈치와 손바닥, 무릎이 까지는 정도였는데 그 역시 집에서 소독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동생네 아이들을 태우고 함께 왔으니 바로 병원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속으로 '핸들은 잡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아기들이 놀랄까 봐 아픈 것을 참고 일단 킥보드를 끌고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운전석에 앉으려는데 피범벅이 된 무릎을 굽히려니 통증이 밀려오고, 핸들을 잡으려니 손바닥 전체가 피로 엉망이 되어 동생네를 집에 데려다주고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될 듯했습니다. 그래서 손가락 끝으로 겨우겨우 운전을 해서 동글이가 다니던 가까운 병원에 먼저 들렀습니다. 동생네 세 식구를 주차장 차 안에 두고 동글이와 내려 승강기에 올랐습니다. 아... 우리 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그 촉촉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주 다니던 병원(이비인후과)이라 동글이랑 둘이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의사 선생님 눈이 동그래지시며,


"사고 나셨어요?"

"아니... 동글이랑 킥보드를 타다가 내리막에서 넘어졌는데 좀 심하게 다쳤죠?"

"아휴... 엄청 아프시겠는데요?"

"동글이 진료가 있어서 먼저 들렀어요. 진료 마치고 피부과로 가야겠죠?"

"아니에요. 제가 소독해 드릴게요. 항생제 좀 드셔야겠는데요?"


선생님 보시기에도 딱하셨는지 치료비도 받지 않으시고 동글이와 함께 살뜰히 소독해 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과 앵글이가 보고 난리가 났습니다.


"여보, 이 정도 다쳤으면 119를 탔어야지..."

"엄마, 장난 아닌데? 신발도 다 찢어졌어. 어떻게 넘어지면 이렇게 돼? 동글아! 넌 괜찮니?"

"누나... 엄마가 하늘을 날랐어. 엄청 무서웠어. 엄마가 죽는 줄 알았어... ㅠ.ㅠ"


집에 오니 놀란 마음이 가라앉는지 동글이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눈물바다를 이룹니다. 동글이를 다독이고 약국에서 구입한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 있는데 동글이가 일기를 써서 다가옵니다.


동글이의 그림일기


제목 : 동생이랑 킥보드 타다가 다친 날.

오늘은 동생이랑 킥보드 타면서 놀았다. 집에 가다가 '할렐루야' 하고 천국 갈 뻔했다. 다음부턴 조심히 타야겠다.


동글이에게 인상적인 하루를 남긴 9월의 어느 날,

그날 이후로 킥보드는 현관 팬트리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능 좋은 것으로 벼르고 별러 마련한 킥보드였는데 너무 성능이 뛰어나 피를 보고 말았네요.


반성을 많이 하게 된 영광의 상처였습니다. 아이들더러 조심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해놓고 어른인 제가 주의 부족으로 벌어진 사고였습니다. 순간의 안전불감증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법한 일을 만들어버렸죠. 머리로 떨어졌으면 더 큰일이 났을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킥보드가 이렇게 무서운지 몰랐네요."

"킥보드 때문에 사고가 많이 나죠. 오토바이와 다를 바 없어요. 요즘 전동 킥보드 타는 사람들이 많아서 늘 걱정입니다."


수동 킥보드도 사고가 나니 이렇게 위험한데 전동 킥보드는 어떨까요? 사고는 아차 하는 순간 일어난다는 것을 비싼 값과, 영광의 훈장을 달아가며 배웠습니다. 안전을 지키는 것은 지나쳐도 모자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안전 수칙을 잘 지키기로 약속하는 로운입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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