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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Nov 26. 2021

음식을 안 먹는 아이

고형식을 먹지 않는 아이 키우기 정말 힘들어요.

앵글이가 13개월 되었을 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폐렴이 걸렸습니다. 이대목동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장염에서 폐렴으로 오가며 증상이 쉬 사그라들지 않아서 3주 정도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었죠. 아직 젖을 뗀 상태가 아닌데 열나고 토하기를 반복하니 수액치료만 하고 젖을 먹이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3주 동안 어거지로 젖을 먹지 못한 앵글이는 퇴원 이후 음식에 대한 관심까지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 36개월이 될 때까지 고형식을 전혀 먹지 않아서 매일 흰 우유 2000ml를 마시는 것이 끼니의 전부가 되었죠.


음식을 먹이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요리활동도 하면서 흥미 유발도 시켜보고, 빕스를 한 주에 세 번 이상 다니기도 했습니다. 뷔페에 가면 뭐라도 하나 집어먹을까 싶은 마음에서였죠. 그런데 뷔페에 데리고 가면, 방울토마토 3알, 소프트 아이스크림 한 번, 모닝빵 하나 정도 먹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커피 옆에 있는 설탕 스틱을 보게 되었습니다.


"엄마, 이게 뭐야?"

"응, 설탕이라고 해. 커피에 넣어서 먹는 거야."

"이거 나도 먹을 수 있어?"

"그럼, 먹어볼래?"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이상해 보였을 것입니다. 무슨 애 엄마가 뷔페에 아이를 데리고 와서 설탕을 먹일까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스크림 용기에 설탕을 하나 잘라서 담아주면 엄마가 식사할 동안 티스푼으로 조금씩 설탕을 떠먹으며 너무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테이블 곁을 스치는 다른 손님들은 음식은 먹지 않고 설탕만 먹고 있는 기이한 현상을 보며 저와 아이를 힐끔거리기 시작합니다. 가끔은 못 참고 다가와 한마디 거드시는 어른들도 계셨습니다.


"아니, 새댁. 음식이 이렇게 많은데 설탕 그게 몸에 좋은 것도 아니고, 애한테 설탕을 먹이고 있어?"

"네... 한 개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서요..."


멋쩍게 웃으며 얼버무리지만 속으로는,

'저도 알고 있어요. 아무것도 먹지 않으니 이거라도 먹어주는 게 감사해서 그냥 두는 거랍니다.'

라고 답하고 있었습니다.


안 먹는 정도가 어느 정도였냐면요, 음식물 섭취를 너무 안 하다 보니 물만 조금 덜 마셔도 급성 탈수가 와서 119를 타야 하는 정도였습니다. 주변에서는


"아니, 음식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 좋아하는 거로 이것저것 좀 해주지... 아니면 요리학원이라도 다니던가..."


요리학원도 다니고, 베이킹도 배우고, 아이들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요리책이 산처럼 쌓여있어도 먹지 않는 아이, 음식에 관심 없는 아이에게 음식을 먹일 방법은 전혀 없었습니다. 안 먹는 아이는 사탕, 초콜릿도 먹지 않습니다. 함께 장을 보다 시식 코너에서 뭐라도 하나 받아먹고 맛있어하면 너무 반가워 사게 되죠. 집에 돌아와 똑같이 해 주어도 먹지 않습니다. 그렇게 쌓인 먹거리와 간식이 집안 가득 있어도 음식 곁으로 다가오지 않는 아이였죠. 잔치가 있어 한 상 가득 맛난 음식이 차려져도, 고급 식당에서 진귀한 음식이 가득 놓여도 테이블 구석에서 동화책을 읽거나 종이퍼즐을 맞추며 몇 시간이고 기다리던 아이가 앵글이었습니다.


한 번은 어른들이,


"애가 안 먹으면 달라고 할 때까지 하루 이틀 굶겨봐. 지가 배고프면 먹겠다고 하겠지. 뭐든 먹었으니 안 먹는 거 아니겠어? 아이 아까워서 벌벌 떨지 말고 굶겨. 몇 끼 굶는다고 죽는 거 아니니까..."


정말 그럴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려보자 하고 음식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반나절 동안 물도 마시지 않았죠. 달라고도 안 했지만 찾아 먹지도 않았던 아이는 낮 12시쯤 되자 바닥에 누워서 놀기 시작했습니다. '피곤한가?' 생각하며 지켜보는데 아무래도 수상한 기운이 스치며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앵글아. 괜찮아?"


아이가 대답이 없습니다. 고작 아침에 깨어 5시간 정도 아무것도 안 먹었을 뿐인데 축 늘어져 힘이 없는 아이를 보며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119를 불러 대학병원으로 갔더니 탈수 수치가 7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안 먹는 아이를 굶기면 죽으라는 것과 같습니다. 굶겨서 먹게 하는 아이는 잘 먹다가 투정을 부리고, 편식이 지나치게 심할 경우 시도해 볼 수 있는 민간요법이죠. 앵글이의 경우는 음식을 먹는 것에 아무 관심이 없기 때문에 엄마가 힘드셔도 수시로 음식을 챙겨 먹여야 합니다. 지금 탈수 수치가 위험 수준을 넘었습니다. 조금 지켜보도록 하죠."


앵글이는 이틀이 지나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잘 안 먹는 아이를 키우는 아이 엄마가 있다면 많이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엄마가 정말 힘들거든요.


어떻게 해도 먹지 않고 위험한 상태가 거듭되는 앵글이를 키우며 아이가 잘못될까 두렵고, 모두가 내 탓인 듯한 생각에 괴로왔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발 한 입이라도 먹어달라고 사정하다 넋 놓고 울음이 터진 적도 있었죠. 어찌할 방법을 못 찾다가 죽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남의 일일 때는 스치듯 무심하게 한 마디씩 할 수 있지만 아이 엄마에게는 생사를 오가는 중대한 일이기도 하죠.


앵글이를 먹이려다 보니 음식 솜씨가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먹겠다고 하는 것이 있으면 사진 속에 나오는 음식일지라도 어떻게든 해 내고야 말았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어느 날,


"엄마, 선생님이 마카롱이라는 걸 주셨는데 엄청 맛있어. 나 그거 사줘."

"그래? 그러자. 사러 가자!"


잘 안 먹는 앵글이가 먹겠다고 하는 게 있으면 지구 끝까지도 갈 엄마입니다. 앵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키 118cm, 몸무게 16kg이었습니다. 전교에서 제일 작은 아이이고, 잔반 없는 학교를 다니게 되어 전교생이 모두 급식을 먹고 집으로 하교한 이후에도 급식실에 끝까지 남아 배식받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앵글이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죠.


마카롱을 사러 갔더니 한 개에 2,500원씩이었습니다. 4개만 사도 만원. 그래도 사줬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하다가 생각하게 됐습니다.


'만들어볼까?'


마카롱을 만들고 또 만들고 계속 만들다 보니 잘 만들게 되었습니다. 생각처럼 잘 안 만들어져서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조금 덜 달고, 꼬끄에 버터크림 대신 아이스크림을 넣어서 만들어주었죠. 잘 만들게 되니 주변에서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정말 팔아볼까?'


밀려드는 주문에 100세트(한 세트에 10개) 정도 만들어 팔았을 때쯤,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취미로, 가족들 먹거리로, 선물로 만들 때는 너무나 재미있고 신이 나서 만들었는데 장사를 하게 되니 생각처럼 예쁘게 만들어지지도 않고, 돈을 받는다는 부담감에 '재미'가 없어진 것이죠.


로운이 잘 만드는 비장의 베이킹 : 마카롱과 딸기롤케이크

 

앵글이가 잘 먹어서 생롤케이크(도지마롤) 달인으로 만들어 준 케이크입니다. 연유 향과 바닐라빈을 듬뿍 품은 생크림은 사랑이죠. 딸기까지 넣으면 금상첨화. 부산에서 살 때 친구 사귀기 위해 수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생롤케이크 덕분에 외로운 타지에서 수월하게 친구를 만날 수 있었죠. 제가 애정 하는 딸기 롤케이크를 사진으로 소개해봅니다.


뭐 하나 순탄할 게 없던 육아였습니다. 그런데 잘 안 먹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유치원 아이들의 급식에 조금 더 마음을 쓰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을 레시피대로만 만들 것이 아니라 기도와 사랑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왕이면 잘 먹도록 맛있게 만들어주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음식에 마음을 다하니 원아모집이 잘 되었습니다. 엄마들의 마음은 다 같은 거였죠. 잘 먹이고, 잘 챙겨주는 곳! 그런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 지잖아요. 보통의 아이들처럼 앵글이가 자라주었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작은 것 하나까지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앵글이 덕분에 재주도 많아졌습니다.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엄마의 모든 것을 쏟아붓게 됩니다. 본인의 삶이 망가지는 것은 보이지 않죠. 오직 아이만 생각하고 아이에게 온 신경을 집중시켜 '내'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라고 여유가 생긴 지금, 아이 엄마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줍니다. 말벗이 되어주고, 고민 상담을 해줍니다. 이제 갓 출산해서 손길이 못 미치는 엄마에게는 밑반찬도 만들어주고, 가끔씩 들러 아기도 돌봐줍니다. 겪어봐야 속을 아는 것이니까요. 나눔이라는 것은 바로 곁에 있는 가족과 내 주변 사람에게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 같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픈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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