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앵글이가 출근과 등교를 한 후 한참이 지나서야 주방으로 나왔다. 각자 아침을 챙겨 먹고 대충 얹어놓은 그릇들이 즐비한 주방은 엉망이었다.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의욕이 없었다. 슬쩍 바라보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TV 시청을 하던 동글이가 이내 다가와,
"엄마, 내가 설거지해 줄까?"
"동글이 설거지해본 적 없잖아. 그리고 동글이가 하기에는 설거지가 너무 많은데?"
"나 지난번에 누나가 설거지할 때 도와줬었잖아. 그때 누나한테 배웠어. 혼자도 할 수 있어."
"정말?"
"그럼... 엄마가 아프니까 내가 도와줘야지."
"그래도 너무 많은데? 큰 그릇들만 엄마가 해줄게."
"아니야. 이쯤은 나도 할 수 있어. 엄마는 그냥 쉬어."
주방에서 동글이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뭉클해졌다. 마음은 좌불안석이다. 슬쩍 다가가 보니, 우와~ 설거지 실력이 보통 아니다. 역시 동글이는 기질적으로 나와 비슷하다. 가지런히 정리된 그릇들은 물이 잘 빠지도록 엎어두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성격은 어디 안 가는 모양이다.
"동글아, 정리를 너무 잘해 놓았네? 그릇 이렇게 두는 건 어떻게 알았어?"
"이렇게 놔야 물이 빠지지."
"그러니까... 아빠랑 누나도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를 못하는데 우리 동글이는 말을 안 해도 잘하고... 정말 대단하다..."
"엄마, 걱정하지 말고 아프니까 그냥 가서 누워있어. 내가 혼자 잘할 수 있어."
"엄마가 사진 찍어서 아빠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그럼 멋지게 찍어줘."
누나의 코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동글이는 물컵과 국그릇을 분리해서 설거지를 해 놓았다. 컵은 개수대 물받이에 정리하고, 그릇들은 식기세척기 안에 단정히 줄을 세워두었다. 다 해놓고 뿌듯해하는 동글이를 보자니 감동의 물결이다.
"동글아, 정말 고마워. 동글이 덕분에 열이 내리는 것 같아."
정말 아픈 것이 씻은 듯 낫는 느낌이었다. 조금 전까지 괴로왔던 열감이 온데간데 사라졌다. 입맛이 없어 내내 굶고 있다가 과일이라도 먹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동글이를 위해서라도 얼른 나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겨났다.
"엄마, 내가 왜 설거지해주고 싶었는지 알아?"
"왜?"
"엄마가 내가 아프니까 계속 나 챙겨주느라 잠도 못 잤잖아. 엄마가 나 도와주느라고 아픈 거라서 너무 미안했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대박 곱창이랑 와플도 사줬잖아. 딸기도 씻어주고, 한라봉도 까주고... 엄마가 챙겨줘서 너무너무 고마웠어."
"동글아, 그건 동글이가 아프니까 당연히 해줄 수 있는 것들이었어."
"그래도, 엄마가 나 챙겨줘서 정말 고마워."
"동글이가 도와줘서 엄마도 너무 고마워." "엄마, 나는 엄마를 정말 정말 사랑해." "엄마도 동글이를 많이 많이 사랑해."
지난주 금요일 학교에서 e알리미가 왔다. 담임선생님과 두 명 학생의 확진 소식이었다. 동글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후 결석한 친구가 있는지 물었다. 2명이 있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느 분단에 앉은 친구인지 물었다. 동글이의 앞에 앉은 친구들이었다. 그때부터 마음의 준비는 했다.
주말이 되고 동글이는 평소와 같이 잘 지냈다. 일요일 밤... 낮에 놀이터에 나갔다가 함께 놀았던 친구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등교를 위해 자가검진을 했는데 큰아이가 확진이라는 소식이었다. '아~ 더 이상 피해 갈 수는 없겠구나.' 싶었다.
월요일 아침, 자가검진을 했는데 음성이었다. 동글이는 조금 기운이 없어 보였다.
"아픈 데는 없어?"
"응. 그런데 힘이 없어."
"학교에 갔다가 계속 힘이 없으면 전화해. 데리러 갈게."
10시 30분쯤 동글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친구들이 13명 학교에 안 왔어. 나도 힘이 없고 목이 아픈 것 같아. 그리고 코로나 걸릴까 봐 불안해. 집에 가고 싶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동글이는 1교시만 하고 하교를 했다. 집에 도착한 동글이에게 자가검진을 했고 여전히 음성이었다.
오후 2시쯤 되니 동글이가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신속항원검사 전담 병원인 동네 소아과에 갔다. 사람이 엄청 많았다. 신속항원검사를 했으나 여전히 음성이었다. 이후 두 시간을 대기한 후 약을 처방받고 약국에서 30분여를 대기한 후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서 이미 39도를 찍었던 동글이는 집에 돌아온 후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약을 먹이고 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불을 덮을 수가 없이니 집안 온도와 습도를 높여주었다. 동글이는 꼬박 이틀 동안 열과 씨름을 했다.
역시 아이의 회복력은 놀라웠다. 편히 쉴 수 있게 해 주고, 시간 맞춰 약을 먹인 것 밖에 없으나 차차 나아져 목요일이 되니 기력이 좋아졌다. 약간의 미열이 있지만 기분도 좋아 보인다. 다행이다.
동글이의 회복세를 보며 안심했지만 어제부터 나의 컨디션이 무너졌다. 열이 38도를 웃돌기 시작했고, 목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며 배가 고프지 않아 졌다. 미각 상실 이라기보다는 입맛이 없는 것에 더 가깝다. 그나마 먹기 편한 과일로 끼니를 대체 중이다. 자가검진으로는 음성이다.
동글이 친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큰아이에 이어 작은 아이들도 양성이라는 소식이다. 함께 놀다 동글이도 감염된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지금은 누가 누구에게 옮고 옮기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미안해하지 말라고 해주었다. 동글이 친구 엄마는 신속항원검사의 정확도가 떨어지니 밀접접촉자로 해서 PCR 검사를 받으러 가자고 했다. 동글이와 함께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운전하기 어려운 상태여서 고민하고 있었다가 도움을 준다고 하니 감사한 마음으로 덥석 호의를 받았다. 참 고마운 친구다...
오늘 아침, 동글이의 생의 첫 설거지는 그저 설거지가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것, 아이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 엄마가 아플 때는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배워가고, 성장하고 있다는 표현이라서 정말 고맙습니다. 한 뼘씩 자라고 있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불쑥 자라 있는 늦둥이 아들에게 뭉클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