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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Apr 08. 2022

공부 안 하고 잘 사는 방법은 없어요?

11살 아들의 소원

오늘은 구몬 학습지 선생님의 방문이 있는 목요일이다.


"동글아, 오늘은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니 수업 마치면 피아노 학원에 들러서 집으로 와~"

"알았어!"


당차게 대답하고 등교를 했던 동글이에게서 1시쯤 전화가 왔다.


"엄마, 나 학교 끝났고 지금 피아노 학원으로 가는 중이야."

"그래? 우리 동글이 엄마랑 약속도 잘 지키고 예쁘네? 얼른 하고 조심조심 와~"

"알았어. 엄마 사랑해!"


귀염귀염 우리 동글이는 애교 만점이다. 어쩜 그리 애교가 넘치는지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도 얼굴 가득 만개한 꽃같이 미소가 지어진다.


체기가 있어 아이가 아프다는 앵글이의 담임선생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앵글이를 데리러 갔다. 앵글이를 데리고 병원에 들러 약을 처방받고 점심을 먹지 않은 앵글이에게 간단한 요깃거리를 먹인 후 돌아오는 길 동글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은 2시 30분!


"엄마, 나 지금 놀이터거든? 피아노는 구몬 하고 나서 가려고..."

"뭐?? 아까 네가 피아노 학원 가는 길이라고 전화했었잖아."

"그랬는데... 내가 너무 놀고 싶어서..."


이런... 너무 놀고 싶었단다. 피아노 학원으로 가는 길에 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와 놀이터로 방향을 틀었다는 이야기일까?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니 웃음이 나왔다.


"아니, 피아노 학원 가는 길이라고 전화까지 해놓고서 어떻게 놀이터로 갈 수가 있어?"

"미안~ 정말 미안~~~ 엄마, 내가 너무 놀고 싶어서 그랬어."

"그럼 처음부터 놀고 싶으니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온다고 이야기했어야지..."

"그러니깐... 정말 미안해 엄마!"

"그래서 몇 시에 들어온다는 말이야?"

"응. 친구가 2시 40분에 집에 간다고 해서 나도 그때 가려고..."


2시 30분에 전화를 걸어 10분 뒤에 돌아올 예정임을 알리는 11살 아들의 당당함에 오늘도 나는 지고 말았다. 곁에서 듣고 있던 앵글이가,


"쟤는 뭐지? 어떻게 저렇게 당당할 수가... 집에 들어오기 10분 전에 이실직고하는 거야? 지금? 엄마가 안전을 위해 행선지를 밝히고 다니라고 얼마전에도 이야기 했던것 같은데...?"

"그러게... 야단을 쳐야 하는데 웃음이 먼저 나와버렸어..."


둘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들어온 후 5분쯤 지났을까? 동글이가 현관에서 우렁차게 외쳤다.


"엄마! 나 왔어..."


조금 전의 미안함은 다 잊고 신나게 거실로 들어서는 동글이다. 선생님이 오시기 20분 전!


"동글아, 혹시 학습지 다 못 푼 것 있으면 풀면서 선생님 기다리자."


가방을 뒤지던 동글이가,


"앗! 엄마!! 학습지를 교실에 두고 왔네?"

"풀기는 다 풀었어?"

"응. 조금 못 풀었는데 집에 와서 하려고 했지."

"그럼 학교에 가서 가져와야지."

"지금?"

"응. 학습지를 가져와야 수업을 들을 수 있잖아. 지금 가서 가지고 와."

"그냥 학교에 두고 왔다고 하고 다음 주 숙제받으면 안 돼?"

"안돼지. 너 혹시 숙제 안 해서 그냥 두고 온 건 아니야?"

"엄마, 아들을 왜 그렇게 못 믿어. 진짜 깜박 잊은 거라니까?"

"그래. 알았어. 깜박 잊은 거로 하고 얼른 가서 가져와."

"깜박 잊은 거로 하는 게 뭐야... 진짜 잊은 거라니까..."

"그래... 알았어. 얼른 다녀와!"


둘의 실랑이 끝에 동글이는 학습지를 가지러 학교로 갔다. 곁에서 듣고 있던 앵글이가,


"엄마! 아이들이 하는 말에 속이 다 보이는걸 나 지금 알았어."

"뭐??"

"난, 저 나이 때 엄마가 정말 속는 줄 알았거든... 근데 동글이를 보니까 엄마가 그동안 알면서 속아준 거였네..."

"당연하지. 애들 속이 훤히 보이는데 그냥 봐주는 거지."

"그러게? 그걸 여태 몰랐네? 생각해보니 엄청 부끄럽다... 저게 다 보이는구나..."

"너는 모르겠지만 네가 하는 말과 행동도 다 보여."

"지금 보니 그렇네. 난 왜 여태 몰랐을까? 엄마가 진짜 모르는 줄 알았어. 연륜은 속일 수가 없구나..."


동글이가 학습지를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살펴보니 밀린 숙제가 방긋방긋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이 오시고 동글이는 숙제를 하지 않은 채 이번 주 수업을 들었다.


동글이를 한숨짓게 하는 학습지


학습지는 공부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시작했지만 동글이는 놀기에도 부족한 하루라 학습지에 시간을 쏟는 것이 퍽 귀찮고 번거로운 일로 여기는 것 같다. 매일 30분, 정해진 분량을 풀어내는 것이 엄마의 시선으로는 별 것 아닌 듯 여겨지지만 재미있는 놀이가 천지에 널린 듯 느껴지는 동글이 입장에서는 그 30분도 아까운 듯하다.


공부가 참 그렇다. 안 하고 살 수도 없고, 하겠다고 맘먹는다고 해서 마냥 즐거울 수도 없는 것이 공부가 아닐까?


동글이가 물었다.


"엄마, 공부 안 하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어?"

"글쎄... 엄마 생각에는 없는 것 같은데?"

"100년쯤 지나면 그런 세상이 될까?"

"100년이 지나도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 같아. 공부를 잘해서 1등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해야 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이렇게 학년이 올라가려면 기본적인 건 알아야 하니까..."

"내가 미술이나 음악을 직업으로 하면 수학 같은 과목은 못해도 괜찮은 거 아니야?"

"미술이나 음악을 직업으로 하려고 해도 학교는 다녀야 하잖아. 학교에 갈 수 있을 만큼은 해야 음악, 미술을 직업으로 할 수 있겠지?"

"그래? 나는 공부하는 게 재미없어."

"아마 많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걸 재미없어할 거야. 그래도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그런데 동글이가 미술이나 음악을 직업으로 하고 싶으면 고등학교를 예술 고등학교로 가면 조금 덜 힘들 수도 있어."

"그런 고등학교도 있어?"

"저기 창밖에 보이는 학교도 예술고등학교야. 예술고등학교에 가면 은찬이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미술과목을 조금 더 많이 배워서 누나처럼 공부하는 고등학교에 가는 것보다는 재미있을 수 있어."

"그래? 그럼 나는 예술 고등학교에 갈래."

"그래. 그러니까 예술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은 우리 공부해 볼까?"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11살 아들의 눈높이에서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설명해주려고 애를 써본다. 공부를 안 해도, 못해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나도 꿈꾼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이 나도 꿈꾸는 세상이다.


동글이가 그린 자화상 (셀로판지화)
동글이가 작곡한 메들리 모음
지난달부터 시작한 데생


동글이는 그림 그리기, 피아노 치기, 혼자 악보 그리기, 축구, 그리고 컴퓨터 게임을 잘하고 좋아한다. 엄마 마음으로는 좋아하고 잘하는 것만 하며 살게 해 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고, 어려운 공부도 해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삶의 무게는 더없이 무거워질 게다. 넉넉히 그 무게를 지고 가려면 조금씩 원하지 않는 것도 받아들이고 견뎌내야 하는 게 세상 살이다. 동글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게 되면서, 지금은 귀찮고 하기 싫지만 공부도 해 가며 꿈을 향해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되도록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해 주면서 말이다.


오늘, 동글이의 임기응변식 거짓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조용하고 담담하게 동글이가 어떠한 것들을 잘못했는지 돌아보게 해 주었고, 어떠한 이유에서도 거짓말로 상황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아이들에게 언성을 높이고 매를 들며 훈육하지 않아도 납득할만한 사실로 대화를 나누면 아이들은 받아들인다. 앵글이 때도, 동글이 때도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다. 동글이는 본인의 잘못을 스스로 찾아내고 반성하였다. 그리고 야단을 맞더라도 거짓말은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조용하고 담담한 대화였지만 잘못을 깨달은 동글이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를 안아주었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와 나눈 진심의 대화는 아이를 한 뼘 더 성장시켰을 것이다. 더불어 나도 한 뼘 자랐다.


오늘도 아이와 함께 자라난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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