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이 만든 "소시지 채소볶음"
싱크대 문 여닫는 소리, 냉장고 여닫는 소리와 함께
"동글아~ 아빠랑 요리할까?"
"뭐~어~~~? 아빠가 요리를 한다고?"
"아빠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엄청 잘해."
"아빠는 라면밖에 못하잖아."
"아니야. 안 해서 그런 거라니까..."
"음... 그래!!"
두 남자의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서 주방으로 나갈까 방에 있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래. 한 번 해 봐라.'라는 마음으로 한가로이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웹툰을 읽었죠.
"엥? 아빠! 그거 바나나잖아."
"바나나 맛있지~ 그러니까 넣으면 맛있지 않을까?"
"우웩~"
"한 번 먹어봐. 엄청 맛있을 거야."
스멀스멀 수상한 기운이 올라옵니다. '바나나? 혹시 바나나를 볶는다는 건가?' 궁금했지만, 궁금한 걸 못 참으면 주방은 오늘도 제 차지입니다. 꾹 참고... 버티기 시작!!
"아니~ 아빠... 거기에 바나나를 넣으면 어떡해."
"기다려봐. 아들~ 아빠 못 믿어?"
"안돼~~~~~~"
"아이참. 맛있을 거라니까..."
"나는 안 먹을 거야. 아빠 혼자 다 먹어."
투닥투닥, 두 남자의 실랑이 소리가 멎어갈 즈음 주방으로 나와봅니다. '음...' 생각보다 그림이 괜찮습니다. 이참에 아들 사진도 담아보고, 남편 사진도 담아봅니다.
남편은 썰고, 동글이는 볶고, 뜨거울까 그릇에 담아내는 건 남편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아들! 오렌지 주스 줘?"
"당연하지. 오렌지주스가 있어야 식탁이 완성이야."
'무슨 소리지? 소시지 야채볶음과 밥, 오렌지 주스가 식탁의 완성이라고?' 기묘한 조합입니다. 김치나 깍두기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정말 이걸로 끝이라고?'
"여보, 이거 우리 둘이 만든 거야. 맛있겠지...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어주지?"
남편의 소원대로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오~ 아빠~ 이거 엄청 맛있어. 그런데 소시지에서 바나나 냄새가 나는데?"
"그러니까 맛있지. 바나나 향이 얼마나 좋아?"
"난, 바나나는 안 먹을래. 아빠가 먹어."
"그래."
알콩달콩 깨가 쏟아집니다. 둘이서 한바탕 아침을 먹고도 '소시지 채소볶음'은 반이나 남았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제가 한 숟갈 얹어야죠. 한 입 넣어보니... 음... 생각보다 괜찮은 맛입니다.
"여보. 맛있는데?"
"그렇지 그렇지... 맛있지...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한번 하면 엄청 잘해."
"그러네. 보기보다 맛있어."
"나 요리에 소질 있는 거 아니야?"
"근데 바나나는 나도 쫌... 바나나랑 구운 계란은 여보가 먹어줘."
정체불명의 '소시지 채소볶음'에 들어간 재료는
수제 소시지, 수비드 닭가슴살, 구운 계란, 양파, 애호박, 바나나입니다. 신기한 조합이며, 신묘한 맛입니다. 이게 맛있다고 하기에는 뭔가... 묘한 맛이고, 맛없다고 하기에는 생각보다 맛있어요. 아!! 원래 각각 다 맛있는 거라 그런 걸까요?
주방에 가보니, 사진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개수대에는 허물 벗은 채소의 흔적들과 조리도구들이 설거지의 손길을 기다리고, 가스레인지 옆으로 기름 튄 흔적과, 미처 볶음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애호박과 양파 조각들이 널려있었죠... '괜찮아요. 뭐, 치우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부글부글...
'여보... 요리는 마무리까지 마쳐야 완성이야!'
라는 속말을 꾹 누르고 정리를 합니다. 그래도, 부자가 둘이 마음 맞춰 뭔가를 만들어 먹는 게 어디예요? 동글이가 11살쯤 되니 불도 사용할 수 있고, 아들이 자라니 남편도 아들과 함께 무언가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여보~ 휴일 아침은 아들과 함께 챙겨보는 건 어때?"
"아니? 괜찮아..."
"뭐가 괜찮아?"
"그냥 괜찮아..."
"엄마, 나도 괜찮아..."
저 '괜찮아'의 의미는 뭘까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아이가 자라는 속도, 가끔은 늦추고도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