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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Feb 04. 2022

"안 들을 거야~!"

속말을 겉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은 몇 살쯤 가르쳐주면 좋을까요?

동글이는 피아노, 축구, 미술을 좋아합니다. 미술학원은 4살부터 다녔습니다. 아이들 그림을 만져주지 않는 학원을 알아보고 하고 싶은 활동을 하도록 해 주시는 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빠는 동글이가 태권도나 합기도를 배웠으면 했지만 동글이는 강경하게 '그런' 운동은 배우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왜 태권도나 합기도가 배우고 싶지 않아?"

"그건 사람을 때리는 운동이잖아. 그래서 난 싫어!"

"태권도나 합기도는 사람을 때리는 운동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운동이야."

"그래도 싸우는 운동이잖아. 난 싸우는 운동은 배우고 싶지 않아."

"그렇구나. 그럼 어떤 운동을 하고 싶어?"

"나는 축구를 하고 싶어."

"축구? 수영은 어때?"

"수영은 나중에 더 커서 배울래. 난 물 무서워. 축구가 좋아." 


동글이가 원하는 축구를 배우려고 알아보니 처음 시작하는 단계의 친구들을 최소 6명을 모아 반을 꾸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동네 친구들을 모아 축구반을 꾸려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고 1년이 다 되어가는데 한 여름에도, 한 겨울에도 동글이가 선택한 활동이어서인지 재미있게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나 피아노 치고 싶어."

"피아노?"

"응. 나는 BGM 작곡가가 되는 게 꿈이야. 그래서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작곡가가 어떤 직업인지 알아?"

"알아. 내가 게임을 좋아하잖아. 나는 게임에 나오는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가 되고 싶어. 그런 작곡가를 BGM 작곡가라고 해."

"그렇구나. 피아노는 매일 가야 하는데 괜찮겠어?"

"그럼. 난 음악을 좋아하니까 매일 갈 수 있어."


그래서 개인 지도를 해 주는 곳으로 알아본 후 피아노를 시작했습니다. 피아노를 시작하고 9개월이 지나갑니다. 동글이는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스스로 시간을 맞추어 즐겁게 피아노를 갑니다. 바이엘 후반부에 들어서면 슬럼프가 한 번씩 오기도 하, 하기 싫어지는 시기가 있는데 동글이는 좀체 피아노가 싫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매일 즐겁게 피아노를 가고, 집에 돌아와도 심심하고 할 일 없으면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를 칩니다. 혼자 음악 공책에 악보를 그려 넣기도 하고, 누나가 치던 책들을 꺼내 연습해 보기도 합니다. 어느 날,


"동글아~ 지금 피아노, 축구, 미술을 배우고 있잖아? 어떤 게 제일 재밌어?"

"나는 피아노가 제일 재밌어."

"그래?  엄마는 축구라고 할 줄 알았는데 피아노가 제일 재밌구나... 그럼 그다음은?"

"그다음은 똑같아. 축구랑 미술도 재밌어."

"셋 중에 하나를 그만둬야 한다면 어떤 걸 그만두고 싶어?"

"왜? 그만둬야 해?"

"아니, 그냥 물어보는 거야."

"왜? 너무 비싸?"

"아니~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응... 난 그럼 안 그만둘 거야. 다 재밌어."

"그렇구나... 알았어."


궁금해서 했던 질문인데 수업료가 비싸서 묻느냐는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동글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배울 수 있게 된 데에는 앵글이 덕이 큽니다. 앵글이가 작년부터 학원을 모두 접으면서 앵글이에게 들어가던 사교육비가 들어가지 않으니 여유가 좀 생겼습니다. 동글이는 그동안 누나 학원비에 밀려 미술 한 가지만 배우고 있었거든요. 앵글이가 집에서 인강으로 공부를 시작한 후 동글이를 위한 사교육비에 부담이 없어지면서 동글이는 하고픈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 친구들이 너는 왜 학원을 예체능만 다녀?라고 물었는데 예체능이 뭐야?"


동글이가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앵글이와 둘이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가끔 동글이가 알고 있을 것 같은 단어를 묻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무심히 넘겼던 말들을 모르고 있을 때가 있어서 '아차!' 싶을 때가 있죠.


"동글아~ 동글이는 피아노, 축구, 미술만 배우잖아. 그걸 예체능이라고 말해. 예능은 미술, 음악 같은 과목이고, 체능은 체육을 말하거든. 그래서 예체능은 음악, 미술, 체육 과목을 말하는 거야."

"그래? 난 몰랐지. 친구들이 나한테 '좋겠다'라고 말해."

"그래? 왜?"

"친구들은 공부방이랑 영어학원에 다니거든. 그런데 나는 공부하는 거는 안 다니고 놀러 다니는 것만 배워서 좋겠다고 얘기했어."

"응... 친구들 보기에는 예체능 학원이니까 놀러 다니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런데 예체능도 공부하는 거랑 비슷해."

"왜?"

"동글이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거잖아. 배우는 것은 다 '공부'거든. 다만, 좋아하는 것을 배우는 거랑, 좋아하지 않는 것을 배우는 차이가 있는 거지. 만약 동글이가 수학, 영어, 국어 과목을 배우는 게 재미있으면 그것도 놀이처럼 생각될 수 있어."

"나는 그런데 친구들 다니는 공부방이나 영어학원은 다니기 싫어."
"알아. 그래서 안 다니는 거잖아."

"응. 그래서 난 엄마가 참 고마워~"

"엄마가 고마워?"

"응.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라고 하잖아. 그래서 난 엄마가 제일 좋아."

"동글이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엄마도 고마워. 그런데 동글아~ 4학년이 되면 하기 싫어도 공부 조금 해야 해."

"알아. 그래서 나 구몬 학습지 시작했잖아."

"그랬지. 그런데 학교에 가면 공부를 조금 더 많이 하게 될 수도 있어."

"나도 알아. 나도 잘할 수 있어. 아들을 좀 믿어봐."

"동글이를 엄마가 안 믿어주는 것 같아?"

"아니? 앞으로도 내가 알아서 잘할 거라고..."

"알았어..."


학습지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 매주 목요일은 구몬 선생님이 방문하시는 날입니다. 일주일 동안 숙제를 해 놓으면 목요일에 검사해 주시고, 새로운 숙제를 주시고 가십니다. 선생님이 오시기 전 숙제를 하는 일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귀찮아하는 동글이와 매일의 분량을 해 내려면 여러 가지 제안이 오고 가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들에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야 하고, 때로는 무언의 압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 나도 다 생각이 있어. 아들을 좀 믿어봐."


라고 합니다. 아이고... 아들을 믿고 싶습니다. 그런데 한 번 그렇게 믿었더니 목요일 아침이 되어 난리가 났습니다. 숙제가 3일분이나 남아있던 겁니다. 모든 것을 접어두고 몰아서 하려니 동글이도 힘들고 지켜보는 엄마도 힘이 듭니다. 그러다가 겨우겨우 선생님 오실 시간 30분 전에 숙제를 마쳤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동글아, 숙제를 몰아서 하니까 어떤 생각이 들어?"

"아무 생각도 안 드는데?"

"아무 생각이 안 든다고?? 다음부터는 조금씩 매일 나눠서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아?"

"아니?"

"그럼 무슨 생각이 드는데?"

"아무 생각이 안 든다니까?"

"그렇구나... 엄마는 매일매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줄 알았지..."

"그냥... 내가 왜 구몬을 한다고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아코 이런... 동글이는 그런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사실 구몬학습은 최선의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동글이의 연산 능력을 조금 키워서 4학년을 맞았으면 좋겠다는 담임선생님의 조언이 있으셨기에 동글이와 대화를 하고, 동글이가 공부방보다는 집에서 학습지를 하고 싶다고 해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만에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후회가 된다 하니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11살이 된 동글이의 아침 풍경입니다. 뽀로로를 보며 해맑게 웃고 있는 동글이가 보이시나요? 뽀로로를 19년째 보고 있는 제가 언제쯤 뽀로로 졸업을 할 수 있을까요? 아침을 챙겨주고 정리를 하며 동글이에게,


"동글아~ 오늘 구몬 선생님 오시는데 뽀로로를 보고 있으면 어떡해... 오늘 날짜 숙제를 하고 보는 건 어때?"

"아니, 안 들을 거야!"

"뭐? 안 들을 거라고?"

"응. 안 들을 거야!!"


아니... 이런 발언을 하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앵글이가 '빵~' 터져서 깔깔 웃고 맙니다.


"엄마, 쟤는 정말 겁이 없는 것 같아. 나는 저런 말을 할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데..."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네?"


동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뽀로로를 보고 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말이죠.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어봤습니다.


"동글아~ 정말 안 들을 거야?"

"응."

"왜?"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그런 말을 하면 혼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니?"

"안 드는데?"


하하하... 우리 동글이... 정말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앵글이와 둘이서 서로 마주 보며 웃다가 뽀로로가 한 바탕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나고 채널을 바꾸려고 하기에, "오늘 할 일을 하고 보자~"라고 했습니다. 동글이는 한번 쓰윽~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입니다. 이쯤 되면 강수를 둬야 합니다. 그래서 일단 TV를 끄고,


"엄마도, 누나도 같이 공부하자~ 엄마도 다음 주 강의가 있어서 공부해야 하니까 다 같이 공부하자. 공평하게... 어때?"

"그럼, 누나도?"

"당연하지. 누나 고3이잖아. 누나도, 엄마도 같이 동글이랑 앉아서 공부하는 거야. 어때?"

"좋아."

"그래. 그럼 다 같이 공부하고, 다 같이 쉬자! 괜찮지?"

"응. 근데 나 이거 얼마 안 남았어. 수학만 세 장 하면 돼."

"그래? 그럼 금방 끝나겠네..."

"엄마, 나도 다 생각이 있어. 10분만 하면 다 된다니까?"

"그랬구나... 알았어. 어쨌든 같이 앉아서 공부하자?"

"좋아."


평화로운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누구도 홀로 쉬지 않고, 다 같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게 되니 동글이도 곁에 앉아 문제를 풀었습니다. 오전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고 동글이가 먹고 싶다는 로제 떡볶이와 앵글이의 매운 떡볶이,  치즈감자튀김, 김말이, 오징어튀김을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배가 부르니 모두 행복한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덩달아 평화로운 오후를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함께 먹은 맛있는 점심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행복한 고민의 연속입니다. 속에서 붉은 감정이 올라와도 천천히 숫자를 여섯까지 세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을 모아 마음을 정리합니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이 '아이를 사랑해서인지', '내 말을 듣지 않아서인지' 생각하다 보면 대부분 '아이의 생각을 들어주기'보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에 기울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엄마가 한번 숨 고르기를 하면 '언성이 높아'지지 않아도, 모두가 평화로운 시간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감정에 민감한 앵글이를 키우며 많이 연습한 덕분에 동글이는 조금 쉽게 감정의 언덕을 넘을 수 있습니다. 앵글이보다 감정선이 단조롭고, 순진해서 생각을 읽기가 쉽습니다. 조금만 어르고 달래주며 차근차근 설명해주면 이내 맑아지는 동글이라 순간 울컥! 하는 엄마 마음을 6초만 다스리면 누구도 슬프지 않게 일상이 흘러갑니다.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면 마음을 맞추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엄마라서, 어른이라서 나보다 서른 혹은 마흔 살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산 어른으로, 선배로 나도 걸어봤으니 헤아리고 다독이며 같이 살아가면 어느 순간 훌쩍 자란 아이와 마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동글이의 엉뚱한 발언으로 붉은 감정과 마주할 수도 있었지만 하하 웃고 지나갔습니다. 둘째로, 늦둥이로 태어난 동글이의 복인 것 같습니다. 앵글이를 한 번 키워봐서 경험으로 얻은 지혜도 있고, 나이가 주는 여유도 있기에 동글이는 마음을 다치지 않고, 가끔은 '겁 없이'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자랄 수 있는 것이니까요. 가끔 앵글이가 동글이에게 하는 말...


"동글아~ 무슨 말을 할 때 생각을 좀 하고 해!"


입니다. 속말을 겉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은 몇 살쯤 가르쳐주면 좋을까요? 아니... 스스로 알게 될까요?


오늘도 동글이와 함께 크는 로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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