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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Apr 22. 2022

초4 아들의 기똥찬 생일파티

4월 15일은 동글이의 생일입니다.

생일 한 달 전부터 내내 생일을 손꼽으며 계획을 세웁니다. 초등학교 입학 첫 해, 돼지열병이 강타하여 소풍 한 번 못 가고 1학년 보냈습니다. 그 후 코시국이 덮쳐 2년 동안 학교를 제대로 가지 못한 동글이에게 올 해는 특별합니다. 친구를 초대하여 생일파티를 할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 정도만으로도 하늘을 날 듯 한 동글이입니다.


"엄마, 나 생일에 친구들이랑 신씨네에서 떡볶이 먹어도 돼?"

"그럼, 엄마가 신씨네에 생일 파티할 수 있도록 예치금 맡겨놓을게..."


우리 동네 떡볶이집 사장님은 센스 만점입니다. 나이 어린아이들이 현금을 들고 다니기 어려운 것을 감안하여 예치금을 넣어두면 장부에서 금액을 제하며 아이들이 자유롭게 배를 채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십니다. 사람을 잘 못 외는 저와 완전 다른 천부적 재능으로 그 많은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까지 모두 외는 사장님은 이름을 부르며 아이들을 맞아주십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하고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네요...


동글이를 위해 넉넉하게 떡볶이집에 예치금을 입금하였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몇 번의 생일 파티를 치르고, 생일 케이크는 가족들 취향에 맞추어 조각 케이크로 대신하였습니다. 가족들의 입맛이 각각 달라 한 종류의 동그란 케이크를 사면 어느 한 두 사람은 구경만 해야 하거든요...



드디어 생일 당일...

새벽 5시에 눈을 뜬 동글이는 TV와 탭을 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들뜬 목소리가 온 집을 들썩입니다. '녀석~ 저렇게나 생일이 좋을까요?'


동글이는 친구를 초대한 생일잔치를 한 번도 못해봤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친구를 초대해서 생일잔치를 해보리라 마음먹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아 4학년이 돼서야 친한 친구들과의 첫 생일을 보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이 날까요?


"엄마, 떡볶이 먹고 놀이터에서 많이 놀고 와도 돼?"

"그럼~ 많이 놀고 어디에 있는지 엄마한테 연락만 해줘."

"알았어."


기대 만땅 채워 등교한 동글이에게 오후가 되도록 연락이 없습니다. 생일 파티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직도 놀이터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난주 동글이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핸드폰을 잃어버렸습니다. 찾으려고 동네를 몇 바퀴나 돌고 지역 카페에 '핸드폰 주우신 분 연락 부탁드려요.' 글을 올렸지만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동글이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어 함께 모여있는 친구 중 제게도 연락처가 있는 OO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OO아~ 안녕? 동글이 엄마야. 오늘 생일파티 재미있었니?"

"네. 동글이랑 같이 놀이터에서 조금 놀다가 학원에 가야 해서 먼저 집에 왔어요."

"그랬구나. 떡볶이는 맛있게 먹었니?"
"아니요? 떡볶이집에 우리 모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부족해서 그냥 놀이터에서만 놀았어요."


아니... 이럴 수가... 생일파티를 위해 예치금도 넣어뒀는데 떡볶이를 못 먹었다니... 그럼 아이들은 생일파티에 초대되어 간식도 없이 놀고 있는가 봅니다... 동글이에게 연락할 방법은 없고, 어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어 마냥 콩닥콩닥 마음 졸이며 기다렸습니다.


5시가 조금 넘어 들뜬 목소리로 집에 들어서는 동글이는,


"엄마~ 나 왔어..."


신이 난 목소리가 거실 가득 울립니다. 빵빵해진 책가방을 내려놓으며 지퍼를 열더니 가방을 뒤집어 거침없이 흔들어대니 가방에서 별별 것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만득이, 볼펜, 지우개, 학용품 세트, 왕딱지... 선물을 풀어놓는 동글이의 얼굴에서 해사한 해님이 방끗 웃는 것 같습니다.


"우와~ 선물을 이렇게 많이 받아왔어?"

"응... 학교에 갔는데 친구들이 아무도 생일 축하한다고 안 해서 슬펐었거든? 그런데 쉬는 시간에 두 명이 선물을 준거야. 완전 행복했어."

"그래? 그런데 선물이 엄청 많은데?"

"그래서... 두 명만 선물을 준비했구나 했지. 엄마가 친구들이 선물 준비를 안 해왔을 수도 있다고 했잖아."

"그랬지..."

"그런데 수업 끝나고 친구들이 엄청 많이 몰려와서 선물을 줬어. 나 진짜 진짜 너무 행복해."


만개한 동글이의 얼굴을 보며 함께 흐뭇해졌습니다. 그중 친구 한 명의 편지를 읽으며 뭉클해졌습니다. 동글이가 학교 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구나... 싶으니 마음도 편안해지고 덩달아 행복해졌습니다.



"동글아~ 이 편지 준 친구는 여자 친구니?"

"아니? 내 찐 절친인데 남자야."

"그래? 남자 친구가 글씨도 너무 예쁘게 잘 쓰고, 편지도 정말 잘 썼네... 감동이야."

"글씨를 잘 써서 알림장 검사받을 때마다 선생님께서 칭찬하셔."


아이의 마음이 가득 담긴 편지를 읽고 나니 코끝이 시큰해졌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동글이의 생일 선물 중에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보였습니다.


"동글아, 이 만원은 뭐야?"

"아~ 이거는 OO이가 준거야."

"만원이나?"

"아니? 이만 원을 줬어."

"이만 원?? 그건 엄청 큰돈인데? 그럼 만원은 어떻게 했어?"

"신씨네에 갔는데, 내가 친구 7명을 데리고 갔거든? 우리가 다 같이 앉을자리가 없는 거야. 친구들이 급식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배 안고프다고 그냥 놀이터 가자고 해서 놀이터로 가서 놀았어."

"그랬구나... 안 그래도 OO 이한테 전화했더니 떡볶이 안 먹었다고 하더라고. 다른 날이라도 친구들 떡볶이 꼭 사줘... 알았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친구들이랑 편의점 가서 음료수 사주고, OO 이는 아폴로 먹고 싶다고 해서 문구점 가서 친구들이 사고 싶어 하는 거 하나씩 사줬어. 그리고 만원은 나 게임팩 사려고 남겨온 거야."


동글이의 말을 요약하면,

생일 선물을 사주려고 돈을 가지고 온 친구에게서 현금 이만 원을 선물로 받아 그중 만원으로 초대한 친구들에게 음료수와 문구점에서 갖고 싶어 하는 학용품 하나씩 사주고 만원을 남겨온 겁니다. 결국, 동글이는 생일에 현금 없이 학교에 간 후 초대한 일곱 명의 친구들에게 미리 준비해둔 떡볶이 파티는 못했고, 선물로 받은 현금으로 인심 후하게 쓰고, 돈을 남겨온 거네요... 하나 가득 생일 선물, 편지와 함께 말이죠...


섭섭하거나 즐겁지 않은 친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잘 놀고, 음료수를 대접받은 것으로 친구들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참 순수합니다. 얕은 계산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은 함께 흠씬 놀이를 한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거죠... 아이들의 마음이 참 예뻤습니다.


온 가족이 모인 저녁,

남편과 앵글이에게 동글이의 하루를 들려주었습니다. 모두들 기가 막히다는 표정입니다.


"동글아... 그건 정말 아니지... 돈 한 푼 안 쓰고 생일파티를 한 거잖아. 너 정말 대박이다."

"동글아... 네가 아빠보다 낫다. 사업수완이 장난 아닌걸?"


저마다 한 마디씩 주고받는데 동글이만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합니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동글이를 위해 생일 초대를 받은 친구들을 위한 답례품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동글아, 친구를 초대해서 우리가 잘 대접했어야 하는데 못했잖아. 그러니까 친구들에게 선물을 해주자."

"왜? 친구들이 괜찮다고 했어."

"그건, 친구들의 마음이 예뻐서 그런 거고, 우리는 선물을 받았으니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지."


요즘 아이들에게 학용품 선물은 너무 흔하고 마음에 감동을 주기도 어렵습니다. 준비물도 학교에서 나눠주니 딱히 필요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로 선물꾸러미를 만들었습니다.


쇼핑백에 선물꾸러미를 담아 등교하는 동글이에게 전해주었습니다. 혹시 선물 받지 못한 친구들 마음이 상할까 싶어 쇼핑백 위를 손수건으로 덮어 내용물이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


"동글아, 생일에 초대했던 친구들에게 전해줄 선물이니까 학교 끝나고 집에 오기 전 전해줘."

"왜?"

"선물을 못 받은 다른 친구들이 섭섭하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집에 오기 전에 조용히 전해줘."

"알았어."

"위에 손수건 덮어놓은 건 선물이 보이지 않게 하려고 덮어놓은 거야. 열지 말고 갖고 있다가 생일에 같이 놀아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하나씩 전해주고 오렴."


풍성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놀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온 동네에 코로나가 한창이라 아이들만의 생일파티를 준비해주었더니 아직 11살은 어린가 봅니다. 엄마와 나눈 계획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죠. 그래도 동글이와 친구들은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그 마음씀도 참 예쁩니다. 작지만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도록 선물꾸러미를 준비하며 동글이와 행복했습니다. 역시 나누고 함께해야 기쁨이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신나게 쇼핑백을 들고 등굣길을 걷는 동글이의 뒷모습이 개선장군 같습니다. 얼마나 행복할까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올 동글이의 모습을 그려보니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갑니다. 모두 모두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아이와 함께 행복을 더해가는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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