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저는 이것을
"빈 땅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내 땅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경작금지] 금줄이 드리워져도,
연두색 울타리로 빈틈없이 막아도,
어느새 들어와 씨를 뿌립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땅도 아니면서 남의 땅에 왜 씨를 뿌리냐고 탓할 수도 있지만,
팔순이 다 되어가는 부모님이 텃밭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며 자란 제 눈에는
빈 땅을 보면 죄책감이 밀려오는 그분들의 마음이 읽힙니다.
"아이쿠... 저거 저거 땅이 놀고 있네. 저기다 뭐라도 심으면 좋을 낀데..."
그런 마음이시겠죠. 그런데 여러분~ 텃밭 농사 지어보셨나요?
이게 보통 정성으로 되는 일이 아니에요. 특히 물길이 없는 빈 땅은 더 큰일이죠. 씨와 모종, 퇴비 값은 그렇다 쳐도 매일 물주는 일이 장난 아니랍니다. 자고 일어나면 불끈 솟아오르는 잡초는 또 어떤가요? 손이 가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텃밭은
"차라리 사 먹는 게 몸도 편하고 돈도 덜 들지..."
라는 생각을 불러 모읍니다.
위의 사진 보이시죠?
자세히 보면 사진 속 텃밭에 나름의 질서가 있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구획이 나뉜듯한 모습들이 보이시나요? 각기 다른 임자가 있는 겁니다. 저곳에는 매 해마다 [경작금지] 현수막이 붙지만 봄이 되면 누군가 울타리를 건너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퇴비를 섞어 모종과 씨를 심어 가꾸어갑니다. 물론 남의 땅이지만, 경작물은 가꾼이의 것이라 막상 심어놓으면 함부로 훼손할 수 없기에 누군가는 고민하게 만드는 텃밭이기도 하죠.
2022년 새 해가 되고 작년 연말 2021년 한 해동안 열심히 실행했던 경기도 공동체사업 평가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후, 2022년 계획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천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운영진 회의를 마치고 십여 가지 항목으로 세분화하여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그중 하나가 '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텃밭 가꾸기 사업'입니다.
우리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텃밭가꾸기(어른), 꼬마 농부(어린이) 수업을 듣고 있는 동글이
마을 카페테리아에서 지역 주민들과 아이들이 텃밭 가꾸기 수업을 받았습니다. 모종 심기, 물 주기, 잡초와 벌레 잡기 등에 관한 수업을 듣고 모종 심기에 들어갑니다.
텃밭에 보이는 화분은 마을 주민께서 200개 기증해 주셨습니다. 상토와 퇴비는 마을공동체 이끔이들과 입주자 대표단, 자원 봉사자들이 힘을 보태어 주셨습니다. 흙 작업을 마친 후 화분에 흙을 담아 모종 심기를 했습니다. 어른들은 고추와 쌈채소를 심고, 아이들에게는 각각 토마토 모종 하나씩 선물한 후 스스로 심도록 가르쳐주고 이름표를 달았습니다. 덕분에 아름드리 텃밭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파란색 물탱크는 솜씨 좋은 관리소장님께서 우수관과 연결하여 설치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빗물을 받아 식물들에게 물을 주니 멀리서 물을 떠 오는 수고도 줄어들고, 아이들이 조막만 한 손으로 물조리에 물을 채워 옮기기에 편리해졌습니다. 주민들의 수고로 행복한 아이들의 텃밭이 만들어진 것이죠.
방과 후 친구들과 토마토에 물을 주고 있는 동글이
동글이도 토마토 화분 하나를 득템 했습니다. 매일매일 하교 후 토마토를 돌보러 나갑니다. 4월 하순에 심고 한 달이 조금 지난 요즘 조그맣게 토마토가 열리고 있습니다. 주말과 휴일에도 토마토가 목마를까 쪼르르 달려 나가 물을 주고 옵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참 예뻐서 자기 화분에 물을 주면서 옆에 있는 친구들의 화분에도 물을 줍니다. 물 주다가 마주친 친구들과 마음이 맞아 놀이터 삼매경에 빠져드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죠.
텃밭이 내려다보이는 동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는 창 밖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 때문에 행복감이 높아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생명을 키우고 생명이 자라나는 것에는 신묘한 힘이 있습니다. 키우는 이의 마음에도 푸릇푸릇 생명력이 샘솟도록 만들어주니 말이죠.
아이들의 화분에서 자라는 토마토에는 진딧물도 생기고 잡초도 자랍니다. 아이들은 벌레도 잡아주고 잡초도 뽑아주며 정성껏 키우고 있죠. 물을 주다가 화분가에 붙어있는 곤충을 만나면 아이들마다 의견이 분분해집니다. 며칠 전 동글이는
"엄마, 엄청난 일이 생겼어."
"무슨 일?"
"토마토 화분에 반딧불이가 붙어있는 것 같아. 내가 사진 찍었거든? 한 번 봐줄래?"
"엄마는 반딧불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서 잘 모르겠어."
"엄마, 반딧불이는 천연기념물 아니야? 이게 반딧불이라면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난 거야."
반딧불이고 아니고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신기해하고, 탐색과 관찰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몇몇 모인 아이들과 의견을 나누고, 서로 물어보며 왁자지껄한 오후를 보낸 후 집에 들어선 동글이는,
"엄마, 반딧불이가 아무래도 맞는 것 같아. 그런 어떻게 해야 하지? 천연기념물이니까 신고를 해야 하나?"
"동글아, 반딧불이가 천연기념물이 아니라, 반딧불이가 많이 서식하는 그곳! 거기가 천연기념물이야. 그리고 반딧불이는 깨끗한 곳에서만 서식하니까 아마도 아닐걸?"
"그래? 엄마, 누나 말이 맞아?"
"누나가 맞다면 맞겠지. 우리 같이 찾아볼까?"
앵글이의 말이 맞았습니다.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무주 반디랜드는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되었다고 해요.) 모종이었던 토마토가 키가 커지고 꽃이 피며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이제 며칠 지나면 빨갛게 익어가겠죠? 이백여 개의 화분들이 나란히 나란히 줄지어 함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갑니다. 물을 주며 매일매일 신기해하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과 표정도 함께 밝아지니 일석이조입니다. 땅이 없고, 베란다가 없어 식물 키우기가 불편하다고 투덜댔던 마음이 쏙 들어갔습니다. 동글이와 함께 오늘은 물을 주러 나서봅니다. 햇살이 따사로이 비치는 아름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물 주기가 마음까지 풍성하게 채워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