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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May 23. 2022

초4 아들이 생각하는 좋은 친구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흥이 넘치는 동글이의 하루는 단조롭다.

아침 6시면 눈을 뜬다. 잠든 엄마가 깨지 않도록 슬금슬금 거실로 나가 TV를 틀고, 탭을 열어 오늘의 보상을 받는다. TV로 유튜브를 시청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TV에 스마트 기능이 있다는 걸 모르고 지내다가 우연히 알게 된 후 동글이의 손은 온통 스마트 세상이 되었다. 볼륨은 최대한 줄여놓고 TV, 탭, 핸드폰을 모두 켜고 함께 시청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7시가 되면 엄마를 부르러 온다. '밥' 때문이다. '오늘은 어떤 메뉴를 주문할까?' 생각하고는 이내 방으로 달려와 온갖 애교 섞인 목소리로 주문을 한다.


"엄마, 오늘은 어떤 국 있어?"

"육개장?"

"육개장은 안 먹고 싶은데... 그럼, 만두는?

"만두는 있지."

"식빵은?"

"식빵도 있고..."

"음... 그럼, 만두는 찌고, 초콜릿 잼 빵이랑, 계란 프라이 반숙으로 해줘."


초콜릿을 좋아하는 동글이를 위한 누텔라 잼은 언제나 항시 대기 중이다. 어느 날 문득, 'ABC초콜릿을 잼 대신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토스트기에 식빵 두 개를 넣어 굽고, ABC 초콜릿 5알을 준비한 후 구워진 식빵에 초콜릿을 얹고 나머지 식빵 한 장으로 덮은 후 30초 대기! 노곤 노곤해진 초콜릿을 넓게 펼쳐 주면, 동글이가 좋아하는 초콜릿 잼 빵 완성이다.  

누텔라잼 대신 ABC 쵸콜릿
누텔라 대신 ABC 초콜릿을 사용하면 좋은 점.

누텔라 잼보다 덜 달고, 덜 불편하다. 유리병에 든 누텔라 잼은 상온에 보관하기는 찜찜하고, 냉장고에 넣어두면 단단해져 불편하지만, ABC초콜릿은 그 두 가지의 불편요소를 모두 해결해주어 참 좋다. 맛은 ABC 초콜릿이 더 나은 것 같다.(개인적 소견이다.)


아침을 먹고, 등교 준비를 시작한다. 이 닦고, 세수하고, 로션을 바른 후 옷을 입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이다. 온통 TV와 탭에 시선이 가 있어 5분이면 될 것 같지만 뭉그적거리느라 30분이나 걸긴다.  또한 엄마 마음에 쏙 들진 않다. 이는 대충 가그린으로 헹구고 닦은 척하는 날이 많고, 물만 대충 축이는 고양이 세수를 해 놓고 씻은 척 로션을 덕지덕지 바르고 나오기도 한다.


"동글아~ 씻는 게 그리 귀찮니? 어차피 들어간 거 엄마 같으면 깨끗이 씻고 나을 텐데, 잔머리 굴리는 시간에 그냥 씻는 게 어때?"


씻었다고 우기고, 안 씻은 게 뻔한 나날의 연속이지만, 귀여우니까 모르는 척 봐주는 날이 더 많다.


등굣길, 학교 가다 말고 전화 오는 날도 허다하다. 어떤 날은 실내화 주머니 없이 등교했다가 중앙현관에서 없다는 걸 그제사 깨닫고 되돌아오기도 하고, 마스크 없이 승강기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 집으로 들어왔다 가기도 한다. 꼼꼼하게 현관 앞까지 배웅해 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4학년이 되고는 거실에서 인사하고 보낸다. 실수하고 놓치는 부분도 스스로 불편함을 느껴봐야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부터 헐레벌떡 뛰어와야 할 상황이 되면 먼저 전화를 하기도 한다.


"엄마, 나 실내화 주머니를 안 갖고 왔는데 가져다주면 안 돼?"


이럴 때는 시간을 먼저 확인한다. 빼박 지각일 때 동글이는 학교에서, 엄마는 집에서 동시에 움직여 중간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등교시간보다 늘 일찍 나서는 동글이는 두 번 왔다 갔다 해도 대부분 시간이 넉넉하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준비를 해야지. 아직 시간 넉넉하니까 집으로 뛰어와. 승강기 앞에 나와 있을게."


어쩌면 그냥 가져다주는 게 더 쉬운 방법일 수 있지만, 매번 엄마가 모든 부분을 채워줄 수는 없다. 아직은 초등학생이니 조금 지각을 해도 용서가 되는 시기이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스스로 감당해내야 할 몫이 커지므로, 지금은 불편함을 스스로 해결하고, 늦을까 쫓기며 가슴 뛰는 경험도 필요하다.


3학년까지는 동글이가 책가방을 챙겨두면 자기 전 검사를 해줬었다. 4학년이 된 후에는 이 또한 해주지 않는다. 숙제를 제출하지 못할 때도 있고, 물병을 넣지 않아 하루 종일 물을 못 마셔서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런 날이면 하교 후 집에 돌아와 벌컥벌컥 물을 마시기도 한다. 앵글이도 그렇게 키웠는데 동글이가 앵글이와 다른 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다. 같은 상황 앵글이었다면 울음이 터졌을만한 상황에도 동글이는 괜찮다.


"동글아, 오늘 물이 없어서 목마르지 않았어?"

"목말랐지."

"학교에서 물을 마실 수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했어?"

"그냥 참았지. 급식 먹을 때 국이 있어서 괜찮았어."


후회도 불평도 없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이 없어서 불편했어도 지나고 나면 쉬 잊고 다른 대안을 찾거나 없으면 없는 채 사는 동글이다.


토요일 오후, 동글이 친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글이 엄마, 동글이가 놀이터에서 울다가 혼자 집으로 갔다는데 무슨 일 있어요?"

"동글이 집에 안 왔는데요? 동글이가 울었어요?"

"아니, 우리 애들이랑 같이 놀자고 전화가 왔거든요. 아이들이 나갔는데, 동글이가 울고 있어서 다가갔더니 동글이가 말도 없이 그냥 집 쪽으로 갔다고 해서 걱정이 돼서요."

"그래요? 제가 확인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놀이터에 나간 동글이에게서 전화를 했다.


"엉엉엉~ 어ㅁㅁㅏ, ㄴㅏㅈ ㅣ 그 ㅁ... 엉엉엉~"

"동글아, 울지 말고 엄마한테 이야기해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동글이가 놀이터에서 울게 된 사연.

놀이터에서 뾰족이를 만났고, 뾰족이가 형들과 딱지치기를 하고 있기에 구경을 했다. 다가오는 동글이를 보며 뾰족이가,

"같이 놀고 싶으면 집에 가서 딱지를 가지고 오던지 아니면 저리 꺼져!"

동글이가 볼 땐 한쪽에 쌓여있는 딱지가 많았고, 형들이 빌려줄 테니 같이 놀자고 했음에도 뾰족이가 계속해서 딱지를 가지고 와야만 함께 놀 수 있다고 해서 속이 상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전화해서 함께 놀자고 했고 친구를 기다리며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뾰족이가 다가와 동글이의 발을 세게 밟고 지나갔다. 동글이가,

"너 왜 발을 밟아. 네가 밟았으니 사과해!"
"아니? 난 네 발을 밟은 적이 없는데?"

약을 올리며 지나갔고, 동글이는 발도 아프고 사과받지 못해 속이 상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뾰족이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고, 뾰족이는 본척만척 딱지놀이를 계속했다.


아주 사소한 일 같지만 거의 2년째 뾰족이만 만나면 벌어지는 일이다.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다. 도와줄 수 있는 방법도 없어 답답하다. 뾰족이 엄마와는 안면도 없다. 몇몇 엄마들에게 물었지만 뾰족이 엄마와 교류하는 엄마가 없었다.


나름 중재.

전화로 동글이를 달랜 후 뾰족이를 바꾸라고 했다. 동글이가 뾰족이에게 '엄마가 전화받으래.'라고 했지만 '싫다'며 깐족대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동글이는 더 크게 울었고, 놀이터에서 뾰족이와 함께 놀던 형들이 다가왔다. 스피커폰으로 바꾼 후 그 형들에게 동글이의 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형들은 뾰족이에게 사과하라고 했고, 뾰족이는 밟지 않았다고 우겼다. 하지만 역시 형들은 형들이다.

"그래도 얘가 아프다고 하잖아. 네가 사과해야지. 그래야 다시 놀 수 있어. 네가 말하지 못하겠으면 형이 불러주는 대로 따라 해. '동글아, 발 밟아서 미안해!' 얼른 말해!"
"동글아, 발 밟아서 미안해."

뾰족이의 사과를 억지로 받게 해 준 형들에게 '고맙다'라고 인사를 했다.

요즘 동글이는 고민이 있다. 작년부터 동글이와 성격, 놀이 방법, 좋아하는 것들이 맞지 않아 자주 부딪치는 뾰족이 때문이다. 3학년 때는 같은 반, 같은 모둠이라 함께 할 때가 많았은데 그 친구가 보기에 동글이가 좀 만만한 대상이었나 보다.


"동글아, 뾰족이와 친해지고 싶니?"

"응."

"왜?"

"귀여워서..."

"귀여워?"

"응. 걔가 좀 작거든? 엄청 귀여워."


작년에 뾰족이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가 대차게 거절당했던 적이 있다. 친구에게 거절당한 경험이 없던 동글이는 집에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엄마 생각으로는 다른 친한 친구들과 함께 놀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계속 부딪치면서도 뾰족이와 놀고 싶어 하는 동글이에게 달리 조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후, 함께 천문대 수업을 하게 되면서 아이들의 갈등은 더 커졌다. 네 사람씩 한 모둠으로 이동하는데 동글이와 두 명의 친구는 성격이 비슷하다. 뾰족이 시선으로는 세 명의 아이들이 답답하게 느껴지거나, 어수룩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6개월이 넘도록 이동하는 차 안에서 3:1로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뾰족이의 압승이다.


"동글아, 넌 왜 뾰족이에게 네 생각을 잘 이야기 못하니?"

"뾰족이가 말을 너무 잘해. 당해낼 수가 없어."

"아~ 그래서 동글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뾰족이가 앞서 말을 하니 답답해서 울음이 나오는 거구나?"

"응. 말을 하려고 하면 듣지도 않고 더 말을 많이 해. 내가 이길 수가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몰라."

"동글아, 4학년이 되고는 뾰족이랑 반도 다르잖아. 그런데도 뾰족이랑 많이 부딪치니?"

"걔가 맨날 우리 반에 들어와."

"정말? 선생님이 계시잖아."

"선생님은 8시 40분에 오시는데 걔가 그전에 들어와서 나를 맨날 약 올려."


4학년이 되고 뾰족이와 반이 달라 안심했었다. 그런데 반이 바뀌었는데도 뾰족이는 동글이 교실로 자주 찾아오나 보다. 어떤 날은 포켓몬 카드를 들고 오고, 어떤 날은 띠부씰을 들고 와 자랑을 하듯 허세를 부리며 동글이를 놀린다고 했다.


"넌, 이런 것도 없냐?"

"너네 엄마는 안 사주냐? 돈 없어?"


같은 말로 동글이에게 상처를 준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동글아, 다른 반 친구가 동글이 반에 들어오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야. 앞으로 뾰족이가 동글이 반에 찾아와 놀리거든 담임 선생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엄마에게 이야기해 주겠니?"

"그럼 어떻게 되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도와주실 거고, 선생님께서 엄마에게도 연락을 주실 거야. 그렇게 되면 엄마도 동글이를 도와줄 수 있어."

"정말?"

"그럼. 혼자 걱정하지 말고, 동글이가 선생님과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면 돼. 알았지?"


동글이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 중 속상하고 나쁜 일은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재밌었던 일, 좋아하는 친구, 함께 학교 앞 떡볶이집에서 한턱 쏜 일처럼 즐거웠던 일만 전해준다. 그래서 동글이가 잘 지내는 줄 알았다. 뾰족이와 작년부터 부딪치기는 했지만 동글이가 상처를 꾹꾹 누르고 있는 줄은 몰랐다. 놀이터 이야기도 친구 엄마가 전해주지 않았으면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동글이에게 일어나는 속상한 일들은 담임선생님이나 친구 엄마들, 동글이 친구들에게서 전해 들을 때가 많다. 집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동글이가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동글이 마음으로는 엄마에게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고 싶은 모양이다. 동글이의 배려가 고맙지만 엄마 마음은 아프다.


2022년 4월 17일

제목 : 내가 생각하는 좋은 친구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친구는 크게 4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잘 놀아주는 친구다. 나는 맨날 심심해서 그렇다.
두 번째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다. 나는 고민이 좀 많은 편이다.
세 번째는 잘 챙겨주는 친구다. 내가 준비물을 놔두고 오거나 사라졌을 때 같이 빌려주고 봐주는 친구다.
그리고 네 번째는 보디가드처럼 지켜주는 친구다. 내가 왕따를 당하거나 학교 폭력을 당했을 때 지켜주는 든든한 친구다.


동글이가 생각하는 친구는 잘 놀아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챙겨주고, 지켜주는 친구인가 보다. 아이가 공책에 적어놓은 글을 읽으며 동글이의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동글이가 늘 밝고 흥이 많아서 스쳐 지나갈 때가 많았다. 그런데 아이는 좀 외로웠나 보다.


아이가 자랄수록 엄마의 역할은 줄어든다. 학교생활도, 교우관계도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할 몫이 커진다.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려 애쓰지만 그것으로 내 아이 전부를 안 다할 수는 없다. 특히 교우관계는 더 그런 것 같다. 엄마의 시선으로 보는 친구와 동글이 스스로 생각하는 친구는 기준부터 다르다. 이런 부분에서는 성별이 같은 앵글이 보다 동글이가 더 어렵다.


행동과 말이 거칠고, 어른의 시각으로 봤을 때 예의가 없는 아이를 마주하게 되면 머뭇거리게 된다. 동글이가 성향이 비슷하고, 우애 있게 잘 지낼 수 있는 (엄마가 생각할 때) 안전한 친구만 사귀었으면 싶은 생각이 불쑥 올라온다. 하지만, 저학년 때부터 함께 놀던 아이가 사춘기를 맞으며 갑자기 달라지기도 하고, 어울리는 친구가 어떠하냐에 따라 그 무리들이 눈총을 받기도 한다. 어느 날 남편에게,


"여보, 동글이가 지금은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있는데 혹시 동글이 친구 중 술, 담배를 하고 학교 생활도 성실하게 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춘기를 맞으면서 동글이가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친구가 그렇게 될 수도 있잖아."

"그럼, 이민 가야지."


대답하는데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민을 간다고?"

"이민을 가든, 이사를 가든,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있어? 계속 한 동네에 있으면 어울릴 수밖에 없잖아. 그 아이를 바꿀 수 없으니 우리가 피해야지."


동글이가 고학년으로 갈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남의 아이가 하는 행동은 내 아이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늘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살아간다. 에둘러 가지 않고 지름길로 걷길 바라는 엄마 마음을 동글이도 알까? 아이와 더불어 사는 것은 참 어렵다.


5월 4주 보글보글 이야기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보글보글과 함께하고픈 재미난 주제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제안해주세요.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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